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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왜 지금 라면 먹는 사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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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지난 12일 서울 강동성심병원. 서해 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모친 김말임 여사의 빈소가 차려진 곳이다. 조문하러 온 필자를 고인의 부인 권영미씨가 맞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남편이 월북자가 아니었다는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오명을 벗었나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 이름을 공개했고, 저도 얼굴을 드러냈거든요. 그런데 민주당이 또다시 몹쓸 짓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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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씨는 갓 스물 아들 걱정이 태산이다. 아들은 군인이 꿈이었다. 고교 입학 뒤 육사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월북자’ 오명을 쓰고 숨지자 꿈을 접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7급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며 독서실에 틀어박혔다.

“아들이 2020년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교 2학년이었습니다. 아들 친구들은 올해 다들 대학생이 돼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고 있죠. 그런데 아들은 어두운 독서실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억장이 무너집니다.”

아들은 2년 전 문재인 대통령(당시)에게 “아버지가 잔인하게 죽임당할 때 나라는 뭘 하고 있었느냐”는 편지를 보냈다. 대통령은 “직접 챙기겠다”는 답을 줬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뵙고 싶다”는 유족들 요청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족들이 제기한 정보공개청구 소송에 졌는데도 불복하고 항소했다. 아들의 가슴엔 피멍이 맺혔다. “거짓 편지 한장 쥐여주고 벼랑 끝으로 몰았다”며 문 전 대통령의 답장을 청와대에 돌려줬다.

권영미씨 회고다. “아들이 처음엔 대통령의 말을 믿었어요. 순진한 아이니까요. 나도 그땐 대통령에 속아서 아이에게 ‘믿고 기다려보자’고 했어요. 그러나 모든 게 연기였음이 드러나면서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하더라고요. 저런 사람을 대통령이라 믿고 2년을 허비한 게 안타깝습니다. 양산에 내려간 문 전 대통령이 우리의 고통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라면 먹는 사진 올렸더라고요. 딱 우리를 겨냥하고 올린 것 같아요. 왜 굳이 이 시점에 올렸을까…”

아들은 최근 또 한 번 편지를 보냈다. 민주당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월북인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한가” “북한에 굴복한 이미지를 만들려는 신색깔론”이라고 하자 “당신의 소속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지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아니다”며 비판하는 편지를 자필로 써서 보낸 거다. 우 위원장은 고인의 친형 이래진씨를 만난 자리에서 “답장을 보내겠다”고 했으나 보름이 지나도록 답장을 받지 못했다는 게 유족들 전언이다.

권 씨의 말이다. “우 위원장은 2년 전에도 ‘(이 씨의 죽음이) 왜 국가 책임이냐’는 등 남편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땐 참고 넘어갔는데, 이번엔 ‘신색깔론’‘정치보복’ 같이 더 심한 말을 하더군요. 비대위원장이면 당의 지도자 아닌가요. 아들이 너무 분노해 편지를 보내겠다고 하더라고요. 화를 입을까 봐 말렸는데 싫다고, 밀어붙이겠다고 하더라고요. 민주당에서 ‘누가 대필해줬을 것’이라 뒤집어씌울까 봐 아들이 직접 손편지를 썼고, ‘못 받았다’고 할까 봐 내용증명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답장이 없군요.”

더 딱한 건 고인의 열 살배기 딸이다. 딸은 지금껏 아빠의 사망 사실을 몰랐다. 엄마가 어린 마음 다칠까 봐 “아빠 외국 가셨다”고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고인 뉴스가 연일 언론을 타면서 딸은 ‘진실의 순간’을 맞았다고 한다. 권 씨 말이다.  “아이가 TV 채널 돌리다 남편 뉴스를 보고 제게 ‘사람들이 왜 아빠를 월북자라고 하냐’고 묻는 거예요. 아이가 한자 공부를 해서 월북이란 말뜻을 알더라고요. 내가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라 하니까 ‘왜 아빠를 오해하냐’면서 분해하는 거예요. 낮에는 참다가도 밤 되면 아빠 찾으며 울어요. 아이 가슴에 못이 박혀 혹여 비뚤어질까 봐 두렵습니다. 민주당 의원들도 집에 가면 아이 키우는 부모일 텐데 어떻게 나라 위해 일한 공무원을 월북자로 몰고, 가족들 가슴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문 전 대통령도 고인 부부와 똑같이 아들딸이 하나씩 있다. 문 전 대통령에게 두 자식이 소중한 것처럼, 고인 부부의 아들딸 역시 소중한 존재다. 이 아이들의 아픔을 철저히 외면해온 문 전 대통령의 그간 행보를 생각하면 “‘챙기겠다’던 약속 지키지 않은 것 사과하시라”고 요구해봤자 씨도 먹히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한가지만은 부탁하고 싶다. 고인의 사망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을 때까지만이라도 제발 라면 먹으며 활짝 웃는 사진 올리는 것만은 자제해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