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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중국 반도체 실력, 만만하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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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용석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김용석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반도체는 흔히 ‘산업의 쌀’로 비유된다. TV·스마트폰·자동차·컴퓨터 등 생활에 필수적인 전자기기 대부분에 핵심 부품으로 들어간다. 또한 항공우주·양자컴퓨터 등에도 쓰이는 민·군 겸용 기술이다. 미국이 반도체를 놓고 중국을 상대로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제재할 수 있는 것은 그만한 막강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설계 툴, 제조 장비 부문의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중국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14나노 아래의 미국산 장비와 소프트웨어·설계 등을 미국 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 중국 기업에 공급하지 못하게 했다.

미국, 패권 경쟁 차원서 중국 압박
중국은 시장 크고 기술 발전 빨라
한국은 설계 역량 더욱 키워가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특히 7나노 아래의 공정에서 필요한 극자외선 노광 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이 독점 공급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중국 판매를 막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10나노 아래의 초미세 공정기술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효과적인 제재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에서 10나노 아래의 하이테크 공정을 사용하는 비중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미국의 제재를 피해서 성숙 기술, 즉 구형 공정(레거시) 장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 1위의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SMIC(中芯國際)는 2019년 14나노 공정 기술을 확보했다. 14나노 공정 기술이면 휴대전화의 핵심 부품인 중앙처리장치(AP) 정도를 빼고는 모든 칩 개발이 가능하다. 상용화된 대부분의 전자기기·자동차·민수용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중국 2위의 파운드리 기업인 화훙(華虹)반도체는 40나노 공정 이상만 사용한다. 10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 제품은 만들 수 없지만, 수요가 많은 14나노 이상 제품은 중국 내부 수요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자급자족률이 더 올라갈 수 있다.

메모리 분야에서 D램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낸드 플래시는 YMTC(長江存儲)가 2019년 64단 양산을 시작했고, 향후 중국 중저가 휴대전화에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를 2000여 개나 보유하고 있고, 질적으로 우수한 팹리스도 제법 많다.

유니SOC(紫光展銳)는 지난해 세계 AP 시장 점유율이 삼성을 꺾고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세계 3위 이미지센서 기업(Will Semi)도 있고, 전력 반도체와 아날로그 IC에 특화된 기업도 많다. 시스템반도체 설계 역량이 상당하고, 파운드리는 구형 공정의 제조 역량을 키우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지금은 중국이 미국에 맞설 카드가 없지만, 미국의 집요한 견제 와중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미·중의 반도체 기술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오히려 10나노 이상의 공정에서는 반도체 제조 역량이 강화되는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다.

막강한 제품(세트) 시장을 기반으로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잇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고, 미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산업 제품과 부품 경쟁력도 갖추게 될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특히 취약한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위협적이다.

한국의 대응은 큰 틀에서 봐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1등 하는 메모리 반도체를 잘 키우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리고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제품 경쟁력 관점에서 봐야 한다. 지금 중국보다 가장 열세인 팹리스를 키워야 한다. 팹리스 없이 파운드리의 성장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의 3나노 반도체 양산은 반가운 소식이다. 대만 TSMC와의 파운드리 경쟁에서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삼성은 최첨단 미세 공정에서 초격차뿐 아니라 구형 공정 개선이나 증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반도체 인력 양성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앞으로 10년간 15만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숫자가 터무니없이 적다. 인력 양성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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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