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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트가 시상식 후보 오른 건 처음, 다들 신기해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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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 2월 미국 SAG 시상식에서 ‘최고의 스턴트 앙상블’ 상(아래)을 받은 ‘오징어 게임’의 무술팀은 지난 13일 미국 에미상 ‘최고의 스턴트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사진 넷플릭스]

지난 2월 미국 SAG 시상식에서 ‘최고의 스턴트 앙상블’ 상(아래)을 받은 ‘오징어 게임’의 무술팀은 지난 13일 미국 에미상 ‘최고의 스턴트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사진 넷플릭스]

지난 13일 발표한 미국 에미상 후보 리스트 중 ‘최고의 스턴트 퍼포먼스’ 부문에 한국 스턴트 배우 4명이 이름을 올렸다. 임태훈(35)·심상민(39)·김차이(34)·이태영(35)씨다. 한국 작품 최초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후보에 오르면서 이들도 한국 스턴트 배우로는 처음으로 에미상 후보가 됐다.

‘오징어 게임’ 무술을 담당한 ‘베스트 스턴트 팀’의 박영식(47) 무술감독과 임태훈 무술팀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스턴트 배우는 기본적으로 ‘카메라 앞에 등장하지 않는 배우’다. 국내에서는 스턴트 배우에게 주는 상이 없다.

지난 2월 미국 SAG 시상식에서 ‘최고의 스턴트 앙상블’ 상을 받은 ‘오징어 게임. [사진 트위터 캡처]

지난 2월 미국 SAG 시상식에서 ‘최고의 스턴트 앙상블’ 상을 받은 ‘오징어 게임. [사진 트위터 캡처]

임태훈 팀장은 “스턴트로 20년, 30년 하신 분도 시상식 후보에 오른 적은 없어서 다들 신기해한다”며 “화면에 내가 부각되는 것보다 배우가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을 최대한 멋있게 대역을 해서 결과물이 빛날 때가 제일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촬영 전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한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 액션에는 이 팀의 배우 36명과 다른 스턴트 팀 배우를 합해 85명이 함께했다. 이정재·박해수·정호연·허성태 등 주요 인물은 얼굴형과 체격이 비슷한 배우가 전담하고, 그 밖의 인물은 촬영마다 다르게 배분했다. 임 팀장은 주연인 이정재 대역을, 심상민 배우는 박해수 대역을 전담했다. 황동혁 감독은 “캐릭터에 가장 잘 맞는 액션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고, 무술팀은 캐릭터의 현재 감정과 육체적 능력까지 고려해 액션을 만들었다.

후보 오른 건 4화 ‘쫄려도 편먹기’ 편 

박영식 무술감독

박영식 무술감독

‘오징어 게임’ 스턴트 배우들이 후보에 오른 건 4화 ‘쫄려도 편먹기’ 편이다. 고공 줄다리기, 숙소 결투가 담긴 회차다. 임 팀장은 “외국에 비해 국내 스턴트 장비나 시스템이 부족하지만, 최대한 리얼하면서 안전하게 하려고 궁리를 많이 했다”고 돌이켰다. 마지막 회차에서 박해수·이정재가 빗속 싸움을 하는 장면은 3일 정도 찍었다. 임 팀장은 “비를 맞으며 촬영해야 하고, 분량도 많아서 시간이 꽤 걸렸다”며 “이정재·박해수 배우가 경력이 있다 보니 액션 소화력이 좋아서 생각했던 그림대로 거의 구현됐다”고 밝혔다.

임 팀장은 고교 축제 때 우연히 격파 공연을 하면서 무술에 흥미를 갖게 됐다. 이태영 배우는 고교 동창이다. 그는 “유도·합기도·태권도 하는 친구들과 체력단련부 활동을 했는데, 학교 축제 공연을 하지 않으면 체력단련부가 없어진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싸움·격파로 구성한 공연의 호응이 너무 좋았다”며 “이런 쪽으로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고, 부모님 반대로 한동안 다른 일도 했지만 결국 스턴트 배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에미상 후보에는 배우 4명만 올랐지만, 지난 2월 미국 SAG 시상식에서는 팀 전체에 상을 줬다. 박영식 감독은 “무술과 시각효과를 합쳐 감독에 주는 상은 있지만, 스턴트 배우에게 주는 상은 거의 없어서 다들 처음엔 어리둥절했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줄다리기 장면’을 가장 공들인 장면으로 꼽았다. 열 명이 다닥다닥 붙는 장면이라 위험하지만, 인형을 쓰지 않고 연기했다. 그는 “한두 명씩 추락하는 장면은 안전하게 해본 경험이 많은데, 열 명은 안전사고 위험이 너무 컸다”며 “떨어지는 사람들끼리 부딪혀 다칠 수 있어 줄 간격 하나를 몇 번씩 조정했다”고 전했다. 무게추를 달아 여러 차례 실험해본 뒤 스턴트 배우가 떨어지는 연습만 이틀간 했다. 줄을 잡는 사람도 따로 정해 중간에 멈출 때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연습했다. 박 감독은 “사람들이 팔이나 다리를 자기도 모르게 휘두르다가 뒷사람이 다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촬영 때에도 배우들에게 ‘뒷사람 다칠 수 있다’고 수시로 당부했다”고 말했다.

박영식 “가장 공들인 장면은 줄다리기” 

마지막 회 빗속 싸움 장면은 2020년 11월경 촬영했다. 박 감독은 “코로나19로 촬영이 밀리는 바람에 영하의 날씨에서 촬영했는데, 물까지 뿌려대는 바람에 몸이 잘 안 움직여 배우들이 너무 고생했다”며 “원래 며칠 더 찍으려고 했는데, 추위 때문에 최대한 빨리 마무리했다”고 했다.

박 감독은 정호연과 김주령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정호연에 대해 “맞는 장면도 많고 액션도 있는데, 키가 큰 데다 마르고 약해 보여 걱정을 했었다”며 “실제로는 너무 잘해줬다”고 말했다. 김주령에 대해선 “‘징검다리 게임’에서 뒤로 떨어지는 장면이 무서웠을 텐데, 티 안 내고 제일 잘 떨어졌다”며 “와이어를 달고 7~8m 떨어지는 액션이었는데, ‘안전하다’고 믿어준 것 같아 고마웠다”고 했다.

학창시절 기계체조 선수였던 박 감독은 액션스쿨에서  배우들을 가르치면서 스턴트 배우의 눈을 떴다. 1995년 심형래 감독의 ‘파워킹’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홍콩 배우 양조위 대역을 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술감독 역할을 맡아 최근엔 ‘1987’, ‘유체이탈자’, ‘승리호’를 찍었다.

임 감독은 “성룡을 아무리 따라 해도 그 느낌을 100% 낼 수 없듯, 나라마다 액션의 리듬감이 다르다”며 “ ‘이건 한국 사람만 할 수 있는 액션의 레퍼토리와 리듬감인데’ 하는 한국적 액션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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