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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어민 북송땐 위법소지"…통일부, 내부의견 묵살 의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9년 11월 15일 당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 15일 당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수사 중인 2019년 11월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과 관련해 통일부가 사전에 “해당자들을 북송하면 위법 소지가 있다”라는 취지의 내부 법률 의견을 묵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통일부가 위법성을 인식하고도 북송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법무부도 북송 수 시간 전 청와대의 법률 검토 요청에 위법 소지를 지적한 사실이 알려졌다.

위법 의견 낸 파견 검사…북한 관련법·형사절차법 전문가

2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통일부는 2019년 11월 7일 오후 3시 탈북 어민 2명을 강제로 북송했는데, 이에 앞서 통일부 장관 법률자문관으로 파견 와 있던 A검사로부터 “위법 소지가 있다”라는 의견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 밝은 복수의 법조인들은 중앙일보에 “A검사가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지만,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이 묵살한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탈북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는 헌법 등 국내법과 고문방지협약에 따른 강제송환 금지의 원칙 등 국제법에 어긋나, 북송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A검사 의견의 요지였다고 한다.

북송 다음 날 통일부(김은한 당시 부대변인)는 탈북 어민들을 ‘엽기 살인마’로 지칭하며 “순수한 귀순 과정의 의사라고 보기보다는 범죄 후 도주 목적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A검사는 판단했다고 한다. 혹여 살인 혐의가 뚜렷했더라도 정식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유·무죄가 가려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A검사는 검찰 내에서 손 꼽히는 북한 관련 법률과 형사절차법 등의 전문가로 꼽힌다.

A검사는 사건 발생 3개월가량 뒤인 2020년 2월 검찰로 복귀했다. 이에 맞춰 통일부는 파견 검사 자리인 장관 법률자문관 자리를 없애고 그 대신 기획조정실 산하에 통일법제지원팀을 신설했다.

A검사는 “수사 중이라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으니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전 장관은 수차례 인터뷰 요청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통일부 대변인실은 “3년 가까이 지난 과거의 일이고 담당자들이 교체됐기 때문에 당시 어떤 경위로 A검사의 의견이 묵살됐는지 등을 확인할 수 없다”라고 했다.

2019년 11월 7일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2명이 강제로 북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 7일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2명이 강제로 북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도 북송 직전 청와대에 “위법”…법조계 “직권남용 여지”

통일부 내부뿐만 아니라 법령 해석의 주무 부처인 법무부도 북송 직전 위법 소지를 경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북송 3시간 전쯤인) 2019년 11월 7일 정오 무렵 청와대로부터 탈북선원 북송과 관련된 법리검토를 요청받은 사실이 있다”라고 밝혔다.

그 직후 ▶북한이탈주민법상 비정치적 범죄자 등 비보호 대상자에 대해서는 국내 입국 지원 의무가 없으나 이미 입국한 비보호 대상자에 대한 강제 출국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부존재하고 ▶외국인을 전제로 하는 출입국관리법상 강제 출국 조치 또한 적용하기 어려우며 ▶사법부의 상호보증 결정 없이 범죄인 인도법 제4조에 따른 강제송환을 하는 것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 청와대에 회신했다고 한다.

다만 법무부는 청와대에 “탈북 어민들을 북송하는 건 어쩔 수 없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덧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법무부 장관 자리는 공석이었다. 현재 법무부 안에선 “북송이 위법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청와대가 법리 검토 요청 전부터 북송하기로 결정한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북송 조치가 어쩔수 없다는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정의용 사건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달 17일 입장문을 내고 “(북송은) 여러 부처가 협의해 법에 따라 결정하고 처리한 사안”이라고 밝힌 적 있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선 “위법성을 인식하고도 북송을 지시한 사람은 직권남용죄 등에 해당할 수 있다”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는 ‘키맨(Key man)’으로 김 전 장관 등을 지목하고 있지만, 김 전 장관은 미국에 출국해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북송에 앞서 국정원 주도의 합동조사를 조기 종료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 서훈 전 국정원장도 미국에 머무르는 중이라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제기되는 의혹은 전부 확인할 방침”이라며 “신속하게 절제된 수사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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