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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타다 기사≠근로자’ 판결 그후…‘클로즈 콜’ 플랫폼 노동, 미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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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의 한장면. [사진 BLUE]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의 한장면. [사진 BLUE]

플랫폼은 중개자인가 사용자인가. 플랫폼 종사자는 근로자인가 프리랜서인가. 타다 기사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에 플랫폼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급증하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를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선 승패가 갈리는 사법적 판단보다는 입법적 대안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무슨 일이야

지난 8일 서울행정법원 3부는 타다 운영사인 VCNC의 모회사였던 쏘카가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쏘카는 지난해 10월 금융 플랫폼 토스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에 VCNC 지분 60%를 매각해 2대 주주(40%)로 물러났다.

● 타다 베이직은 쏘카·VCNC가 2018년 선보인 렌터카 기반 차량 호출 서비스다. 렌터카를 호출하면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은 프리랜서 운전기사를 동시에 알선해 줘 택시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른바 타다금지법으로 불린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이 2020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직후 서비스를 중단했다.
● 일감을 잃은 전직 타다 기사들은 “쏘카가 부당 해고했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구제를 신청했다. 지노위는 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2020년 5월, 2021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중노위는 두 사람 모두 용역업체와 프리랜서로 계약을 맺었지만, 실질적으로 쏘카가 이들을 고용했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일했다고 봤다.
● 쏘카는 재심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고 이번에는 법원이 중노위의 재심판정을 뒤집었다. 두 사람 모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취지다.

지난 8일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 앞에서 타다드라이버비대위,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법원 판결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 앞에서 타다드라이버비대위,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법원 판결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게 왜 중요해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플랫폼 종사자 수는 지난해 기준 220만 명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임금노동자와 다른 근무형태인 탓에 이들을 회사에서 종속적으로 일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지, 아니면 프리랜서로 볼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노동계 일각에선 사실상 플랫폼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는 만큼 이들을 근로자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가 되면 회사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고 주 52시간(연장근로 포함) 이상 일을 시킬 수 없다. 퇴직금과 각종 수당도 지급하고 휴일, 연차도 보장한다. 반면 플랫폼 기업들은 이들 노동자가 원하는 만큼 자율적으로 일하는 이른바 ‘긱워커(gig worker)’인 만큼 이들을 종속적 관계인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해왔다.
중노위의 테이블에 올라온 타다 베이직 기사의 경우, 계약형태는 프리랜서이지만 회사 측이 여러 지휘·감독한 정황이 있어 중노위가 근로자로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그런 가운데 사법부의 첫 판단이 나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노위와 달랐던 법원, 왜

타다 기사에 대한 중노위 판정은 근로자성, 사용자성 2가지 측면을 이례적으로 모두 인정해 플랫폼·노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근로자성 : 근로자로 인정받으려면 업무내용을 회사가 정하고 업무 수행과정을 회사가 지휘·감독하는 등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일한 점이 입증돼야 한다. 중노위는 타다 기사들이 쏘카의 지휘감독을 받아 일했다고 봤다. 타다 드라이버 교육자료에 명시된 각종 준수사항이 복무규정 역할을 했고, 정해진 복장을 입고 매뉴얼에 따라 운행하도록 지시받은 점 등이 근거였다. 하지만 법원은 쏘카 메뉴얼과 지침 등이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쏘카가 협력업체들에 제공한 매뉴얼, 가이드 등은 타다 서비스를 표준화하고 균질화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배포된 것”이라며 “이를 프리랜서 드라이버에 대한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사용자성 : 타다 기사들은 용역업체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용역회사는 쏘카와 프리랜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즉 타다 기사와 쏘카와는 직접적 계약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중노위는 사용자를 쏘카라고 봤다. 기사의 근로시간, 임금 산정 방법 등 근로조건에 핵심적인 내용을 쏘카가 결정하는 등 묵시적 계약관계가 성립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재판부는 타다 기사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에 사용자성에 대해선 명확하게 판시하지 않았다.

플랫폼 비즈니스에 영향은?

이번 판결은 타다 기사와 유사한 형태 플랫폼 종사자들이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볼 때 일정 기준이 될 수 있다. 다만 1심 판결이고 항소한다면 상급심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봐야 한다. 국내 플랫폼 업계 한 관계자는 “플랫폼 공급자들에게 서비스를 위해 플랫폼이 어느 정도까지 요구 할 수 있는지에 (법원이) 선을 그어준 것”이라며 “배달·대리·택배·전문가 매칭 플랫폼 등등 유사한 플랫폼 영역에서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참고할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클로즈 콜’ 플랫폼 노동

법조계에선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분쟁을 ‘클로즈 콜’(close call·승패가 아슬아슬한 경기의 판정)로 지칭한다. 사용자가 지휘·감독했는지 여부를 따지지만 개별 사안별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해, 어느 쪽으로도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플랫폼 종사자의 경우 과거에 없던 유형의 노동 형태인 만큼 현행 근로기준법으로 이를 따지기는 매우 어렵다. 현실적으로 지노위, 중노위, 법원까지 사실상 5번의 판단 과정을 거쳐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기준을 적용할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엔 근로기준법이 아닌,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새로운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근로자로 인정받는 소모적인 재판 절차 대신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책 마련이 실질적인 플랫폼 종사자 보호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미.

이 사건에서 쏘카 측을 대리한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현재는 재판하기 전 까지 아무도 결론을 알 수 없어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며 “종사자 입장에서도 수년간 이어지는 사법 절차에 참여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플랫폼 입장에선 언제든 관련 소송의 위험에 노출돼 투자를 받을 때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실제 재판부도 이례적으로 판결문 말미에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다. 재판부는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사용종속 관계가 인정되지 않은데도 근로기준법상 해고 제한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별도 입법을 통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의 한장면. [사진 BLUE]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의 한장면. [사진 BLUE]

중노위 또는 타다 기사들이 항소한다면 결론은 상급심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업계 안팎에선 플랫폼 종사자 보호 법안 법제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지난해 3월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존 임금 노동자와는 성격이 다른 새롭게 일하는 형태가 등장했지만, 기존 법을 적용하려다 보니 소모적인 분쟁이 반복되고 있다”며 “플랫폼은 중개만 한다는 지위에 머물지 않고 경제적 이익을 내고 있다면 적절한 책임을 지게 하고, 종사자도 기존 임금 근로자와는 다른 자율적 특성을 감안하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