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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현장에서 보라...공간, 색, 빛 모두가 하나 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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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뷔렌 전시 전경. 조형물의 최고 높이는 6미터에 이른다. [사진 대구미술관]

다니엘 뷔렌 전시 전경. 조형물의 최고 높이는 6미터에 이른다. [사진 대구미술관]

관람객이 작품들 사이를 걷도록 설치된 다니엘 뷔렌의 설치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이은주 기자

관람객이 작품들 사이를 걷도록 설치된 다니엘 뷔렌의 설치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이은주 기자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작품 가운데 선 다니엘 뷔렌. [사진 대구미술관]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작품 가운데 선 다니엘 뷔렌. [사진 대구미술관]

현장, 현장, 현장···.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을 강조했다. 그는 "현장엔 절대로 사진이나 영상 그 무엇으로 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며 "작품이 있는 곳에 직접 가지 않았다면 작품을 제대로 본 것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형예술가 다니엘 뷔렌(84)의 말이다.

대구미술관, 다니엘 뷔렌 전시 #대규모 설치 '어린아이...'등 #60개국서 3000여 회 전시 #장소와 유기적 관계맺는 작품 #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뷔렌의 개인전이 지난 12일 대구미술관에서 개막했다. 개막 이틀째인 13일 오후 1시 미술관 로비에서 열린 '큐레이터와 작가의 대화' 행사엔 10대 고교생부터 대학생,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 60대까지 수 십명의 관람객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객석에선 질문도 끊이지 않았다. t세계 60개국에서 3000여 회의 전시를 해온 거장의 전시 열기가 벌써 뜨겁다.

걸리버의 장난감 블록같은··· 

3층에서 내려다본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전시장. 조형물이 마치 건축물처럼 보인다. 이은주 기자

3층에서 내려다본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전시장. 조형물이 마치 건축물처럼 보인다. 이은주 기자

이번 전시에서 뷔렌은 회화, 영상, 설치 등 작품과 공간의 관계에 주목한 최근작 29점을 선보인다. 대표작은 대규모 설치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이다. 작품이 전시된 어미홀 1층 현장이 장관(壯觀)이다. 40m 길이의 전시장에 사면체, 정육면체, 원통형, 아치 형태의 조형물 104점이 마치 건축물처럼 놓여 있다. 조형물의 최고 높이가 6m에 달하니 마치 관람객이 걸리버의 장난감 상자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어린이들의 블록쌓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이 작품은 2014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처음 공개되고, 나폴리(2014), 멕시코(2016), 시드니(2018)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대구에 전시됐다.

2014년 전시 당시 뷔렌은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은 '고도의 놀이처럼'이라는 말과 같다"고 밝혔다. 그는 "어린아이는 순수하고 천진하지만 한편으로 엄청나게 복잡하다"며 "어린아이의 놀이란, 선천적인 복합성과 모양과 색에 대한 감각을 말한다"고 했다.

1전시장엔 2015년 이후 거울 혹은 플렉시글라시 등 사물을 반사하는 재료로 제작한 입체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의 또다른 하이라이트는 6시간 30분짜리 다큐멘터리 '시간을 넘어, 시선이 닿는 끝'(2017)이다. 1968년 스위스 베른에서의 작업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뷔렌의 50여년간의 작업을 보여준다. 규격화된 미술관을 벗어나 현장을 중시해온 뷔렌 특유의 ‘인 시튜’(In Situ) 작업의 역사다.

'인 시튜'는 특정한 장소에 전시하며 장소의 맥락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작업을 말한다. 뷔렌은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도쿄 긴자식스, 런던 토트넘 코트 로드 역 등 세계 곳곳의 기념비적 건물과 공공장소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그때마다 등장시킨 8.7㎝ 폭의 줄무늬가 그의 상징이 됐다.

이 중에서도1986년 파리 팔레루아얄(Palais Royal)의 안뜰에 흑백 세로 줄무늬 원기둥 260개를 설치하고 ‘두 개의 고원’이라 명명한 작품이 대표작이다. 또 국내에선 동아일보 사옥에 8가지 색을 입힌 작업으로 유명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5년 이후 제작한 입체 작품을 배치한 전시장. [사진 대구미술관]

2015년 이후 제작한 입체 작품을 배치한 전시장. [사진 대구미술관]

다니엘 뷔렌 전시장 전경. [사진 대구미술관]

다니엘 뷔렌 전시장 전경. [사진 대구미술관]

다니엘 뷔렌. [사진 대구미술관]

다니엘 뷔렌. [사진 대구미술관]

작품의 영감은 어디에서 받나. 
작품을 만드는 장소에서 영감을 얻는다. 장소야말로 아이디어의 바탕이다. 미술관에 가면 다 똑같은 흰색 벽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지난 55년간 이런 이유로 작업실 없이 일해왔다. 전시를 하는 곳이 곧 작업실이다. 
대구미술관 공간은 어땠나.   
공간이 매우 넓어 유연성이 컸다. 특히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을 전시한 어미홀 천장이 아주 높아 좋았다. 1층에서 작품 사이를 걸으며 볼 수 있지만 3층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 대구미술관은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외부에서도 작업하고 싶다.
'인시튜'(in-Situ) 작업을 오래 해왔다. 
인시튜는 라틴어이고, 장소 특정적( site-specific)이란 용어와 비슷한 개념이다. 내가 말하는 인시튜는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만들어지며, 현장에서 관람돼야 하며, 전시가 끝나면 파괴돼야 한다’을 뜻이다. 내 하는 작품들의 90% 이상이 이 작업이다. 

전시를 기획한 마동은 큐레이터는 "뷔렌의 인 시튜는 관점, 공간, 색상, 빛, 움직임, 투영 현상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며 "작품과 공간의 경계가 서로 조화를 이루게 유도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에 도형과 세로줄 무늬가 많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기본적인 도형들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색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세로줄 무늬를 즐겨 쓰는데 그게 가장 중립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로로 놓으며 지평선이라든지 뭔가 의미를 부여하더라. 
작품 사진 설명 앞에 꼭 '사진 기념품'(Photo-souvenir)이라고 쓴다고. 
60년대부터 그렇게 해왔다.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찍은 사진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작품을 보는 것과 그 작품 사진을 미술관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장에서 봐야 한다. 사진으로 보는 것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다. 
당신 작품을 메타버스로 구현할 수 있을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느끼는 것은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것과 같을 수 없다. 실제로 현장을 걷고, 그 장소의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은 영상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작업은 가능하지만 절대 똑같지 않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뷔렌은 관람자가 각자 시점에 따라 자신의 작업을 회화로도 보고, 조각이나 건축으로 인식하게 한다"며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을 3층에서 내려다보면 전혀 새로워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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