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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못해먹겠다" 후회한 그 장면…고용장관, 파업장 날아갔다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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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파업 현장에 직접 발을 담갔다. 19일 헬기를 타고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으로 날아갔다. 고용부 장관이 개별 분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장관이 직접 나서라"는 불호령에 가까운 지적이 있자마자 부리나케 갔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1시쯤에는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도 헬기 편으로 대우조선해양 파업 현장을 찾았다.

고용부 장관의 파업 현장 방문은 공권력의 지휘·동원권을 가진 행안부, 경찰청과는 의미가 다르다. 진압하기보다 노사 분규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자리여서다. 그래서 정부가 강온 양면 작전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노들섬 헬기장에서 이동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와 함께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파업 현장을 찾았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노들섬 헬기장에서 이동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와 함께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파업 현장을 찾았다. 연합뉴스

하지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사 분규에 고용부 장관이 직접 개입할 경우 벌어질 부작용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두산중공업에서 장기 파업이 발생했다. 기업의 손실은 쌓여가고, 인명 피해와 같은 불상사가 우려돼 공권력 투입도 여의치 않았다. 청와대는 당시 권기홍 노동부 장관에게 현장에 내려가 중재하도록 지시했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가 권 장관을 막아섰다. "장관이 가서 해결되면 개별 노사 분규 현장마다 '장관 나오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고, 자율 해결은 물 건너간다. 혹여 가서도 해결이 안 되면 '장관이 와도 안 되네'라는 소리가 나고, 결국 향후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극구 만류했다.

하지만 권 전 장관은 창원으로 날아갔다. 2003년 3월 10일이었다. 권 장관이 직접 개입해 협상을 조율하면서 63일간 이어진 파업사태는 봉합됐다. 권 장관이 두산중공업으로 내려간 지 이틀만이었다. 장관의 전면 등장은 기업에 압박이 됐다. 원칙을 고수하던 기업은 별수 없이 합의서에 사인했다.

이후 철도노조 파업,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 전교조 투쟁 등 전국 곳곳에서 분규가 이어졌다. 그때마다 "장관 나오라" "정부가 교섭에 나서라"는 노조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토로까지 했다. 두산중공업 사태가 봉합된 지 3개월 뒤인 그해 5월 21일이었다. 권 장관의 창원행을 막았던 노동부 고위 관계자의 우려대로였다. 그는 옷을 벗었다.

윤 대통령의 호통 뒤 급거 거제로 향하는 이 장관의 모습이 당시와 데자뷰처럼 겹친다.

물론 이번 고용부 장관의 거제행은 그때와 다르다.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서가 아닌 듯 보여서다. 이 장관은 중앙일보에 이렇게 얘기했다. "담화문 내용대로 불법과는 타협없다는 메시지를 주려 한다."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압박을 노린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원·하청 노사를 만나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을 바라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을 방문해 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을 방문해 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기다릴만큼 기다렸다"는 말까지 나온 상황이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분석이다. 이 상황에서 이 장관의 거제행은 어쩌면 마지막 타협의 기회를 노사에 주려는 의도라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하는 게 사실이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충정으로 비친다. 공권력이 투입돼 불상사라도 생기면 국정 동력에 큰 손상이 생길 수 있어서 더 그렇다. 안 그래도 여당 내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용산 참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장관의 마지막 중재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다만 노사 분규 현장에 고용부 장관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진두지휘의 모양새를 띈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으로 타결이 되지 않으면 그 부담은 정부의 몫이다. 해결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 뻔하다. 가뜩이나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노동계의 집단행동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고용부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선 데 따른 부작용이 불거지면 자칫 20년 전 두산중공업 봉합의 재판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차피 노사 분규 현장에 간 이상 원만한 타결도 중요하지만 확실하게 법과 원칙의 메시지를 심어줘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2기 노동부 장관으로 당시 김대환 인하대 경제학 교수를 임명한 뒤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위법 행위를 엄단하면서 개별 분규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 그렇게 노사관계의 정상화를 꾀하며 궤도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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