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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현곤 칼럼

위기감 느껴지지 않는 윤석열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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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경제 위기가 진짜 오는 건지 궁금하다면 주목할 세 가지 경제지표가 있다. 첫째로 원·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 못지않게 중요한 가늠자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주요국은 금리를 따라 올린다. 물가를 잡고,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일본만 경기 부양을 위해 초저금리를 고수한다. 현 기준금리는 -0.1%. 이게 가능한 건 물가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5%. 자금이 빠져나갈 염려도 없다. 엔화가 기축통화 대접을 받는 데다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다.

초저금리 영향으로 엔화는 달러 대비 24년 만에 최저치다. 이로 인해 원화는 뜻하지 않게 엔화에 강세(원·엔 환율 하락)가 됐다. 우리는 일본 제품과 경쟁 관계다. 원화 강세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수출이 타격을 입는다. 무역적자가 쌓이면 유동성 위기가 닥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린 1994년과 2005년 어김없이 엔화 약세가 나타났다. 2~3년 뒤 우리는 경제 위기를 겪었다. “외환위기·금융위기 당시 원·엔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떨어진 공통점이 있다.”(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위기 때 원·엔 1000원 밑돌아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도 증가
대중 무역적자 속 섣부른 ‘탈중국’
도처에 경고등…정부 잘하고 있나

실제로 원화는 1994~96년 100엔당 700원대 강세를 보였다. 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1300원대로 급반전했다. 2008년 금융위기 전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1000원대였던 원·엔 환율은 3월 이후 900원대에 진입했다. 조짐이 좋지 않다.

주목할 둘째 지표는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이다. 단기외채는 해외(비거주자)에 갚을 만기 1년 이하 빚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신용도가 떨어지면 단기외채가 늘어난다. 97년 이 비율이 무려 657%였다. 단기외채가 외환보유액보다 6~7배 많았으니 망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외환위기 후 20%대로 떨어졌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 74%까지 치솟았다. 이 비율이 2016년 28%를 저점으로 다시 상승 중이다. 올 1분기 38%. 앞으로 더 문제다. 1분기 단기외채는 1749억 달러. 3개월 만에 102억 달러 늘었다. 6월 외환보유액은 4382억 달러. 8개월 새 310억 달러 줄었다. 6월엔 환율을 방어하느라 94억 달러나 썼다. 이 추세라면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는 연내에 50%를 넘나들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2008년 금융위기 때 9~11월 석 달 만에 외환보유액이 427억 달러 감소했다. 그해 11월 300억 달러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지 못했으면 걷잡을 수 없이 줄었을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을 9300억 달러로 봤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약 4500억~6800억 달러를 권고한다. 현 외환보유액은 이 기준에 못 미친다. 우리는 소규모 개방경제고,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유지비용이 들더라도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좋다. 특히 요새처럼 시장이 불안할 때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외환시장 동향에 긴밀히 협력한다”고 합의했다. 통화스와프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통화스와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미국을 최대한 설득해야 한다. 일각에선 위기도 아닌데 왜 통화스와프를 구걸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쓸데없는 자존심이고, 안이한 생각이다.

주목할 셋째 지표는 대중국 무역수지다. 다른 경제지표가 괜찮아도 경상적자가 쌓이면 무조건 위험 신호다. 1995~97년 3년간 경상적자가 455억 달러에 달했다. 결국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1~8월에도 133억 달러 경상적자가 났다. 올 상반기 에너지값 급등으로 무역적자가 103억 달러에 달했다. 상반기 기준 사상 최대다.

우려스러운 것은 5~6월 대중 무역에서 적자가 난 점이다. 두 달 연속 적자는 28년 만이다. 코로나 도시 봉쇄로 중국 2분기 성장률이 0.4%로 급격히 둔화한 영향이 컸다. 중국이 한국산 중간재 등을 수입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조달하는 구조로 바꾸고 있어 앞으로도 전망이 밝지 않다. 대중 무역수지는 수교 이듬해인 93년부터 지난해까지 29년 연속 흑자였다. ‘수출 효자국’ 중국시장이 흔들리면 흑자 기조를 이어가기 어렵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최근 “중국의 대안 시장이 필요하다”고 ‘탈(脫)중국’을 말한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시장을 미국·유럽으로 다변화한다지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중국 정부가 ‘탈중국’ 발언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자칫 중국과 얽혀 있는 수많은 기업만 난처해진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중국을 자극하다가 ‘요소수 사태’ 같은 차이나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훨씬 세련된 접근이 필요하다.

세 가지 지표가 일제히 경제 위기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진짜 긴장해야 한다. 용산 대통령실 지하벙커에 경제 워룸(비상경제상황실)을 차려놓고, 대통령이 퇴근을 반납하고 직접 챙겨도 시원찮을 판이다. 유감스럽게도 윤석열 정부에서 절체절명의 위기감이나 치열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건지 ‘큰 그림’도 안 보인다. 윤 대통령이 출근길에 툭툭 던지는 말만으로는 이번 위기를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