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토텐햄’에 빠진 북한, 손흥민은 빼고 중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방영한 EPL 토트넘-첼시전 장면. 토트넘 손흥민이 결장한 경기다. 북한은 EPL을 중계하지만, 리그 최고 골잡이 손흥민의 활약은 뺐다. [사진 조선중앙방송 캡처]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방영한 EPL 토트넘-첼시전 장면. 토트넘 손흥민이 결장한 경기다. 북한은 EPL을 중계하지만, 리그 최고 골잡이 손흥민의 활약은 뺐다. [사진 조선중앙방송 캡처]

북한이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를 비롯한 유럽 축구리그에 푹 빠졌다. 국민이 자본주의 체제와 접촉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막는 북한 정부지만, 축구만큼은 예외로 인정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손흥민(30·토트넘)의 노출을 막고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17일 2021~22시즌 EPL 25~26라운드 하이라이트를 방영했다. ‘잉글랜드 최상급축구련맹전 중에서’라는 제목을 붙였다. 해당 프로그램은 지난 4월부터 비정기적으로 편성돼 북한 전역에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전파를 타고 있다.

특이한 것은 손흥민의 활약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점이다. 조선중앙방송의 영상에는 언제나 손흥민의 경기 장면이 쏙 빠져 있다. 토트넘 관련 영상은 손흥민이 결장한 경기 위주로만 구성했다. 라운드 별 득점 위주로 편집한 영상에서도 손흥민의 골 장면은 삭제했다.

지난 시즌 23골을 터뜨리며 EPL득점랭킹 1위에 오른 손흥민의 골 장면이 누락된 건 의도를 담은 편집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남한 출신 선수가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로 인정받는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평정한 상황을 북한 주민에게 노출하지 않겠다는 북한 당국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국의 노력과 달리 북한 내에서 손흥민의 인기는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관련 소식을 전하는 데일리NK는 “(북한 축구팬 사이에서) EPL 선수 중 손흥민의 인기가 가장 높고, 구단 중에서는 손흥민이 몸을 담그고 뛰는 토텐햄 호츠퍼(토트넘 홋스퍼)가 인기 있다”면서 “손흥민은 같은 혈맥을 이은 민족의 자랑이기도 하고, 골인(득점)을 잘 한다”고 칭찬했다.

북한은 지난 2015년 조국해방(광복) 70주년을 맞아 ‘체육텔레비전 방송’을 창설한 것을 계기로 유럽축구 TV 중계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조선중앙방송은 프리미어리그 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프랑스 리그1,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 빅 리그 경기를 모두 녹화 중계 형식으로 다룬다.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 북한이 현재 방영 중인 해외축구 영상에 대해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스포츠비즈니스 아시아는 “2022~23시즌부터 3년간 한국 내 EPL 중계권료는 평균 3000만 달러(395억원)에 이른다. 직전 시즌보다 3배 가량 상승한 금액”이라고 전했다.

EPL 뿐만 아니라 유럽 5대 리그 및 A매치 경기까지 지상파에서 꾸준히 방영 중인 북한이 정식 계약을 맺었다면 매년 최소 수백억 원 대의 지출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 국내 EPL 방영권을 보유한 에이클라 관계자는 “북한 측이 리그별로 인도적인 차원에서 영상을 요청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도 “국내 EPL 중계권 계약의 범위가 ‘남한’인지 또는 ‘한반도’인지에 따라 권리 침해 가능성이 있어 관련 사항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