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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어민 자해하려 하자 "야야야!"...강제로 끌고 北에 넘긴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통일부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을 판문점을 통해 북송할 당시 촬영한 영상을 18일 공개했다. 어민 한 명이 군사분계선 앞에서 주저앉고 자해를 하려고 하자 경찰 특공대원이 달려들어 이를 말리는 모습 등이 그대로 담겼다.

자해하려 하자 "야야야"

이날 공개된 3분 56초 분량의 영상은 판문점 남측 지역의 자유의집 1층 로비 현관에서 시작한다. 이어 포승줄에 묶이고 안대를 쓴 두 어민이 2층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현장 관계자들은 바퀴가 달린 검은 가방과 검은 비닐 봉투 등을 들고 따라 올라간다. 이들이 "얘들이(어민들이) 가지고 온 짐이야?", "목록 있습니까?"라며 서로 대화하는 음성도 담겼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직원들 손에 든 건 어민들이 가져온 휴대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2층 대기 공간에 마련된 의자에 잠시 앉아 있다가, 자유의집 2층 후면(북측) 현관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 명씩 경찰특공대에게 이끌려 판문점 T1(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과 T2(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사이 군사분계선 쪽으로 가게 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자유의집에서 나올 때부터 어민의 포승줄과 안대는 풀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일부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될 당시 촬영된 영상을 18일 공개했다. 약 4분 분량의 영상에서 탈북 어민은 포박되고 안대를 쓴 모습이다. 통일부.

통일부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될 당시 촬영된 영상을 18일 공개했다. 약 4분 분량의 영상에서 탈북 어민은 포박되고 안대를 쓴 모습이다. 통일부.

이중 검은 점퍼를 입은 어민은 군사분계선 앞에서 멈춰 서더니 그대로 주저앉는 모습이 영상에 포착됐다. 이 어민은 앞서 지난 12일 통일부가 공개한 사진에서도 북한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저항하다 쓰러지거나 인계 직전까지 군사분계선 연석 위에 한 발을 걸치고 버둥대는 모습이었다.

이후 영상 속에서 어민은 무릎을 꿇은 채 T2 건물 쪽으로 기어갔다. 이후 그가 머리를 땅에 찧으며 자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경찰 특공대 등 현장 관계자들이 "야야야", "잡아", "나와봐"라고 외치며 달려가 어민을 일으켜 세웠다. 이어 어민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관계자의 손에 이끌려 군사분계선까지 이동한다.

한편 푸른 점퍼를 입은 다른 어민은 상대적으로 순순히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이날 공개된 영상 안에는 어민의 음성은 담기지 않았다. 통일부 관계자는 "당시 근거리, 원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촬영하다 보니 음성이 정확히 녹음된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통일부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될 당시 촬영된 영상을 18일 공개했다. 약 4분 분량의 영상에는 탈북 어민 한 명이 북송 전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통일부.

통일부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될 당시 촬영된 영상을 18일 공개했다. 약 4분 분량의 영상에는 탈북 어민 한 명이 북송 전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통일부.

"개인 촬영물이지만 공개 가능"

통일부는 이날 영상을 공개하면서 "북송 당시 현장에 있던 통일부 직원 한 명이 개인 휴대폰으로 촬영한 뒤 소수의 관계자와 공유하고 업무 PC로 옮겨뒀던 걸 지난 15일 뒤늦게 발견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실은 지난 12일 통일부가 공개했던 10장의 사진 속에서 현장 관계자들이 북송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듯한 모습을 포착, 통일부 등 관계 기관에 영상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해당 영상에 대해 "개인 휴대폰으로 촬영해 통일부 공식 기록으로 관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업무상 관련 있는 직원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촬영해, 업무 관련자들에게 영상을 제한적으로 공유했으므로 순수한 개인 기록물이 아니고,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가 타당한 자료라고 봤다"고 말했다. "정보공개법에 근거해 직무 상 취득한 정보는 공개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 차원서 포괄적으로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정보공개법 9조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보유ㆍ관리하는 정보는 공개 대상"이며 "공개 시 국가의 중대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왼쪽 사진은 2019년 11월 7일 김유근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이 국회에서 북한 주민송환 관련 문자 메시지를 보는 모습. 해당 문자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송환 사실이 공개됐다. 오른쪽 사진은 2019년 11월 7일 탈북 어민 2명이 판문점을 통해 강제송환되던 당시 통일부가 촬영한 사진으로 지난 12일 공개됐다. 통일부. 뉴스1.

왼쪽 사진은 2019년 11월 7일 김유근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이 국회에서 북한 주민송환 관련 문자 메시지를 보는 모습. 해당 문자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송환 사실이 공개됐다. 오른쪽 사진은 2019년 11월 7일 탈북 어민 2명이 판문점을 통해 강제송환되던 당시 통일부가 촬영한 사진으로 지난 12일 공개됐다. 통일부. 뉴스1.

북송 3년 뒤에야 존재 파악 의문

다만 통일부가 북송 영상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다가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뒤에야 국회의 지적을 받고 뒤늦게 파악한 건 '관리 부실'에 해당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당시 직원이 영상을 촬영하고도 상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판문점 송환 시) 사진은 찍어서 공식 기록으로 남기는데 영상은 잘 찍지 않는다"며 "그래서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다가 사후에 파악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직원이 영상을 공유했던 '소수의 관계자'가 누구인지, 당시 장ㆍ차관도 이에 해당 하는지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 직원이 공식적인 기록 차원이 아닌 별도 루트의 보고를 위해 영상을 남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이 관계자는 직원이 개인적으로 영상을 촬영ㆍ보관한 게 규정 위반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통일부 직제 시행 규칙에 있는 '판문점 지역 내 동향 수집' 업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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