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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 싫다고 방역? 또다른 놈 온다" 곤충 박사의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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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보건소 관계자들이 이른바 '러브버그' 방역 작업을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보건소 관계자들이 이른바 '러브버그' 방역 작업을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은 특정 종이 아닌, 모든 곤충을 죽이는 방역을 하고 있어요.”

진화생물학자인 신승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최근 ‘러브버그’에 대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긴급 방역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은평구에는 이른바 ‘러브버그(털파리)’ 관련 민원 1479건이 접수됐다. 최근 개체 수가 급증해 주택가 창문 너머로도 밀려 들어오자 민원이 쇄도한 것이다. 그러자 은평구청은 이달 초 보건소 방역반과 16개 동 자율방역단 등 50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해 방역에 나섰다. 주택가와 인접한 도로변은 물론이고 관내 봉산·앵봉산·이말산과 같은 산림에도 살충제를 살포했다. 살충제를 뿌리는 분무기를 시민에 대여해주기도 했다.

은평구와 인접한 경기 고양시도 최근 20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했다. 하루에서 많게는 3회까지 화단 등 녹지에 분무소독을, 거주지 주변엔 연무소독을 실시했다. 서울 서대문구 등 다른 지자체도 수십명의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방역을 시행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과도한 방역이 오히려 특정 곤충의 대량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14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신 교수는 “산림까지 방역하면 사마귀 등 포식성 곤충도 많이 죽고, 생태계가 단순화되면 먹이 사슬이 깨지게 된다. 천적이 없으면 다른 곤충이 대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에 러브버그가 창궐한 지역은 대부분 지난해 대벌레 이상 번식이 보고됐던 곳이었다.

이달 초 서울 은평구청 관계자들이 산림에서 털파리 방역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쳐

이달 초 서울 은평구청 관계자들이 산림에서 털파리 방역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쳐

신 교수는 “어차피 이 털파리의 주 서식지는 산이다. 도시는 살 수 없는 환경이니 주거지만 방역하고, 서식지는 보존해줄 필요가 있다”며 “중요한 건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털파리가 환경적으로 중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신 교수는 “털파리과 대부분은 ‘분해자’다. 유충이 토양 위에 쌓인 낙엽이나 죽은 나무를 분해하면 토양으로 영양분이 전달된다. 그 영양분이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며 “분해자가 없으면 산에서 죽은 생물이 그대로 쌓여있게 되고,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서울대 진화계통유전체학 연구실에서 파리를 연구하고 있다.

‘러브버그’는 틀린 명칭

문제가 된 털파리에 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러브버그로 통칭하는 곤충은 엄밀히 따지면 ‘러브버그’가 아니라고 한다. 신 교수는 “러브버그는 미국 플리시아 니어티카(Plecia nearctica)라는 특정 종(種)의 일반명”이라며 “이번에 발견된 건 우리나라에 기록이 없는 종이다. 러브버그와는 다른 종, 같은 속(屬)”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생물학은 역·계·문·강·목·과·속·종에 따라 생물을 분류한다. 그럼에도 털파리가 ‘러브버그’로 불리는 건 암수가 종종 쌍으로 다니는 모양 때문이다.

신 교수는 “분류학적으로 러브버그 등이 속한 털파리하목(Bibionomorpha)은 물에서 육상으로 진화하는 중간 단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썩은 식물을 먹고,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빛을 따라가는 습성도 있다. 아파트 창문과 현관 등에서 털파리들이 대량 발견된 이유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극성이던 털파리는 현재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수명이 일주일에 불과하고, 집중 방역이 이뤄져서다.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에서 털파리들이 발견되고 있다.  '뉴스1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에서 털파리들이 발견되고 있다. '뉴스1

대량 발생의 원인으로는 장마와 도심 열섬 현상, 기후 변화 등이 꼽혔다. 그는 “(이번에 발견된 털파리는) 유기물이 쌓이는 하천이나 농업 부산물이 발생하는 도심 외곽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봄-초여름까지 건조했다가 최근 폭우가 쏟아지면서 지면의 수분 함량이 높아지는 등 도심 열섬 현상과 광공해에 이끌린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이어 “털파리과 파리들, 특히 러브버그와 같은 속의 종들은 대부분 적도 근처 지역에 분포한다”며 “지구 온난화 영향에 한반도 기후도 따뜻해지면서 이 파리들이 생활하기 좋은 조건으로 변했다”고 했다.

신승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사진 서울대학교

신승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사진 서울대학교

신 교수는 “(털파리는) 유충 시기엔 식물성 부식질을 섭취하고, 성충은 꽃을 찾아다니면서 수분을 매개해줘 ‘익충(益蟲)’이라 부를 수 있다”면서도 “다만 보기에 안 좋고, 음식에 들어가는 경우 등도 있다 보니 어느 정도의 방역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러면서도 “북미 지역에서는 털파리 대량 발생이 심각해 자동차 흡기구를 막거나 시야를 가리기도 해 해충으로 지목됐지만, 한국에선 아직 그런 정도는 아닌 듯하다”며 “어떤 생물 종이 중요한지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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