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오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이기는 민주당,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구호와 함께 출마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민주당 8·28 전당대회의 막이 올랐다. 그간 “묵언수행 중”이라며 침묵해 온 이 의원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그간 소강상태였던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 경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당 대표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는 이 의원을 비롯해 ‘친이낙연계’ 설훈 의원(5선), 86세대 김민석 의원(3선), 97세대 강병원·강훈식·박용진·박주민 의원(재선), 1982년생 이동학 전 최고위원, 1996년생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이상 원외) 등 모두 9명이다. 민주당 안팎에선 남은 기간 ▶이 의원의 사법리스크 ▶‘친명 대 반명’ 계파 갈등 ▶차기 대선 후보군 관리 등 쟁점을 두고 각 후보가 맞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명 사법리스크 논란…李 “고발당하면 리스크인가”
경쟁 후보들은 이재명 의원이 출마 선언을 하기 이전부터 성남FC 후원금 사건 등 검찰·경찰 수사 상황을 들어 ‘사법리스크’ 문제를 거론해 왔다. 이 의원에 대한 검·경 수사가 ‘정치적 탄압’이라 하더라도, 민주당이 이 의원 수사 방어에만 급급하면 위기를 돌파하기 어려울 거란 주장이다.
강병원 의원은 지난 13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경 수사가) 이 의원에 대한 부당한 탄압이라면 저부터 맞서서 싸울 것”이라면서도 “민생을 챙기는 정당으로 인정받아야 할 때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잡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도 전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는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이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이후 검찰이 기소할 경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아무리 검찰이 정치적으로 엮는 ‘짜깁기 수사’를 하더라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 같은 걸 들이밀며 ‘방탄 국회’라고 몰아붙이면 당 차원의 부담이 적지 않다”(재선 의원)는 지적이다. 일부 친명 의원조차 이런 우려를 근거로 이 의원에게 불출마를 권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의원은 이날 출마 회견에서 “저에게 먼지만큼의 흠결이라도 있었으면 이미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사법리스크 논란을 일축했다. 이 의원은 검·경 수사 상황에 대해 “수사는 밀행이 원칙인데, 동네 선무당이 동네 굿하듯 하고 있다”며 “굿하는 무당인지 수사하는 검·경인지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당내 우려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고발하고, 그에 동조해 검·경이 수사하는 걸 무슨 사법리스크라고, 고발당하면 사법리스크인가”라고 말했다.
‘친명 vs 반명’ 계파 갈등 재현되나…세(勢) 대결 양상
이날 이재명 의원과 ‘친이낙연계’ 설훈 의원의 출마 회견이 잇따라 열린 국회 소통관 앞에는 양측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세 대결 양상을 보였다. 이 의원 지지자 100여 명은 회견 30분 전부터 국회 소통관 입구에서 ‘당대표는 이재명’, ‘민주당을 살리는 이재명 당대표’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이 의원 이름을 연호했다. 1시간 뒤엔 설 의원 지지자 수십명이 모여 ’민주당 당대표 진짜는 설훈’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민주당 관계자들이 “이게 무슨 대선 같은 상황이냐”라며 허탈하게 웃을 정도였다.
이날 설 의원은 출마회견 직후 ‘이낙연 전 대표와 상의했나’라는 물음에 “출마한다고 통보는 했다. 다른 얘기는 할 필요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설 의원의 출마를 두고 당내에선 “설 의원이 컷오프를 통과하든 아니든, 결국 이낙연 전 대표 조직이 다시 뛰겠다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설 의원이 지난 대선 경선 때 이낙연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전당대회를 거치며 양측의 격돌이 다시 격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결국 이번 전당대회는 이재명으로 상징되는 민주당 신(新)주류가 당권을 잡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라며 “친문재인·친이낙연 등 구주류는 당장 이번 전대에서 못 이기더라도, 최소한의 반격을 통해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대선 후보 논쟁도 잠복…“왕(王)보다는 ‘킹 메이커’ 필요”
전당대회 기간에는 5년 뒤 대선에 대한 논쟁도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 사이에선 “이 의원이 당권도 잡고 다시 대선 후보까지 되겠다는 건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비슷한 논쟁은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 대표에 당선됐던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도 이뤄졌다. 당시 당 대표 후보로 출마했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문 전 대통령이) 꿩도 먹고 알도 먹고 국물까지 다 먹으려 한다”고 성토했는데, 이런 호소가 공감대를 얻으면서 실제 결과는 3.5% 포인트 차 박빙 승부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친문 의원은 “그나마 그때는 대선 후보가 10명 가까이 있었다”며 “지금은 차기 대선 후보가 이 의원 한명이라 비토(veto·거부) 정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강훈식 의원이 “이번 당 대표는 ‘킹 메이커’의 역할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선대위 전략본부장을 지낸 강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대통령 후보의 시간보다는 대통령 후보들을 만들어내는 시간 아닌가”라며 “(그 역할은) 다른 사람이 해야지 더 적임”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 의원 역시 ‘킹 메이커’ 역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이 의원 측 핵심 관계자는 “당내 다양한 대선 주자가 있어야 정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의원 본인도 잘 알고 있다”며 “전당대회 과정에서 그런 메시지를 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