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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저승사자' 빈자리 컸다…5년간 쌓인 미제사건 2726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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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22년 5월 18일 서울남부지검에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설치됐다. 폐지 2년 4개월 만에 부활한 것이다. 뉴스1

2022년 5월 18일 서울남부지검에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설치됐다. 폐지 2년 4개월 만에 부활한 것이다. 뉴스1

최근 5년간 검찰이 처리하지 못한 증권·금융 범죄 사건이 2700건 넘게 쌓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선 2020년 초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해체한 게 주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 “2020년 초 추미애가 합수단 없앤 후유증”

17일 중앙일보가 대검찰청으로부터 입수한 ‘증권·금융범죄 사건 접수 및 처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도부터 2021년도까지 최근 5년간 검찰은 증권·금융범죄 사건을 7903건 접수했지만, 같은 기간 처리한 증권·금융범죄 사건 수는 5177건에 그쳤다. 처리하지 못한 미제(未濟) 사건이 5년간 2726건 쌓였다는 이야기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하겠다”라는 명목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축소하는 흐름 속에서 2020년 1월 추 당시 장관이 “부패의 온상”이라며 합수단을 해체한 영향이 가장 크다고 법조인들은 추정한다.

합수단은 2013년 5월 출범 이후 폐지될 때까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먹튀’ 논란, 한미약품 주가조작 의혹,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사건 등을 수사하고 1000명가량을 재판에 넘기면서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유명세를 얻었다. 서울 여의도는 금융 관련 기업의 본사가 밀집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추 전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실세 연루 의혹이 불거졌던 라임자산운용 사태 등의 수사를 막기 위해 합수단을 없앤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합수단 폐지의 직격탄을 맞은 2020년도 통계를 보면, 검찰은 1645건을 접수한 반면 절반 수준인 848건을 처리했다. 처리의 질(質)도 저조했다. 처리 건수 848건 중 10% 남짓인 96건을 기소(약식기소 제외)했다. 최근 5개년도 가운데 100건 이하를 기소한 해는 2020년도가 유일하다.

추 전 장관이 물러나고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2021년 1월 이후 상황은 다소 개선됐다. 2021년도 기소 건수가 297건으로 전년도(96건) 대비 3배를 웃돈 것이다. 2021년 9월 박 전 장관이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이하 협력단)을 출범시킨 점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협력단은 합수단 때의 검찰과 금융당국 등 관계기관 간 협력체계를 일부 되살렸다. 다만 사건 접수 건수가 2020년도 1645건에서 2021년도 2027건으로 382건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기소 건수 증가(297건)가 큰 의미를 갖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1년도엔 처분 건수 가운데 기타(기소중지·참고인중지·보호사건송치·타관이송·보완수사) 수치가 급증한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이들 대부분은 추후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으로 사실상 미제 사건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연간 기타 건수 수치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300건 안팎 수준을 유지하다가 2021년도 671건으로 급증했다.

2021년 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가능 범위가 축소됨에 따라 경찰에 이첩하는 조치가 많이 늘어난 것 등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을 보면 증권·금융범죄와 관련해 “시장경제 질서의 공정성·신뢰성·효율성 등을 해칠 우려가 있거나 사회적 이목을 끌만한 사건으로서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이 검사의 수사개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중요 사건”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가능 범위를 한정했다.

2021년 12월 2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2021년 12월 2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부활 합수단, 미제사건 허덕여…“검·경 협력 강화해야”

올해 들어 5월 18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의해 합수단이 폐지 2년 4개월가량 만에 부활했다. 합수단 등은 산더미처럼 쌓인 미제사건을 처리하느라 새로 접수되는 사건에 전력을 다할 처지가 못 된다고 한다.

한 검찰 간부는 “합수단에 배당된 사건만 보면 합수단뿐만 아니라 합수단이 속한 서울남부지검 수사진 전체가 다 달라 붙어야 정상적으로 처리가 가능해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제 사건이 늘어나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라며 “현재 수사 체계에선 검찰과 경찰이 매일 만나 얼굴을 맞댄다는 각오로 협력을 강화해 미제 사건을 빠르게 줄여나가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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