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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세계를 보는 안목 키우고 협상·타협의 정치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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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지율의 덫’에 갇힌 윤 대통령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을 놓고 수많은 분석이 쏟아졌다. 도어스테핑에서의 말실수에서부터 인사 실패, 고금리·고물가·고달러 등 외부 경제 요인의 변화, 지난 10년간 진행된 세계적 정치 양극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인이 거론된다.

이런 요인들도 모두 크고 작은 영향이 있겠지만, 사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후보 시절부터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었고 어찌 보면 지금의 지지율 하락 현상은 별로 놀랍지 않다. 최근 몇 주가 아니라 최소한 지난 1년간의 변화를 보아야 하고, 역대 대통령들과의 비교도 도움이 된다. 그래야 윤 대통령이 처해 있는 정치 지형의 특징이 드러나고 향후 국정운영의 전략이 나온다. 여러 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자. (인용 자료는 한국갤럽)

첫째, 윤 대통령은 원래부터 이전 대통령들보다 낮은 지지율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8번의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들의 후보 시절 지지율을 보면 노태우 30%대 중후반, 김영삼 20%대 중후반, 김대중 30%대 중반, 노무현 40%대 초중반, 이명박 40%대 중반, 박근혜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문재인 30%대 중후반을 유지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대선에서는 의견 유보층이 선거일 직전에도 30%를 넘는 이변이 있었기 때문에 후보 지지율은 낮아 보이지만 취임 직후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도입 등 전광석화 같은 개혁 조치로 즉시 지지율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윤 대통령은 출발부터 불리 … 이전 대통령들보다 지지율 낮아
충성층 적어 갈라치기와 일방 독주는 득보다 실이 많은 상황
성장률·양극화·경제위기·세계질서 재편 등 국가적 난제 산적
위기가 기회 될 수 있어 … 국민들에 보다 솔직하게 다가서야

‘기대 없이 당선된’ 첫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도어 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2개월 만에 30%대로 떨어졌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출근길 도어 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2개월 만에 30%대로 떨어졌다. [뉴스1]

반면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줄곧 30%대 중반에 머물렀으며 20%대로 내려앉은 적도 있었다. 대체로 역대 대통령들보다 후보 시절부터 5~10%포인트 정도 낮은 지지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직전 네 명의 대통령과 비교하면 지지율 격차가 크다. 지지율이 높았던 네 명의 대통령 중 이명박을 제외한 노무현·박근혜·문재인은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 혹은 팬덤 정치에 의존했고, 팬덤의 양상은 뒤로 갈수록 노골적인 갈라치기로 수준 낮은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제약은 갈라치기의 실익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보다 수적으로도 훨씬 많고 충성도도 높은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지고 갈라치기에 의존했던 문재인과 박근혜의 임기 말 지지율이 각각 40% 턱걸이와 30% 턱걸이였다. (박근혜는 태블릿PC 보도 직전까지 기준)

단순하게 계산하면 박근혜나 문재인보다 10%포인트 낮은 지지율을 가지고 시작하는 윤 대통령이 갈라치기를 하더라도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이것은 원활한 국정 수행에는 절대적으로 못 미치는 수치이다.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바로잡겠다고 반대 방향으로 폭주하는 방식은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있다. 문재인이 폭주로 40%를 유지했다면 윤석열은 반대 방향 폭주로 기껏해야 30% 턱걸이밖에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윤 대통령은 ‘기대 없이 당선된’ 첫 대통령이다. 대선이 가까워지면 여론조사에서 정책 영역별로 주요 후보들의 역량이 어떨 것 같은지를 묻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물론 후보들의 실제 역량이 어떤지 응답자들이 정확히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 유권자들이 가진 ‘이미지’일 뿐이다.

하지만 예전 대선에서는 늘 이 역량 평가에서 우위를 점한 후보가 당선되곤 했다. 직전 대선인 2017년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7개 정책 영역에서 모두 홍준표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압도했다. 사상 초유의 탄핵과 촛불 광장이라는 맥락과 그로 인한 쏠림현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보다 5년 전인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7개 정책 영역 중 4개에서 문재인 후보를 앞섰고, 1개는 동점, 2개만 뒤졌다. 종합평가를 하면 박근혜 후보가 앞섰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담대한 비전 없으면 지지층도 떠나

이번 대선은 어떤가. 7개 중 윤석열 후보가 앞선 영역은 2개뿐이고 5개 영역에서 뒤졌다. 하지만 이런 저조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선됐다. ‘기대는 안 하지만 그래도 표는 주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역대 대선 직후 조사에서 당선인이 5년간 직무를 잘할 것 같은지 물었더니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이명박 84%, 박근혜 78%, 문재인 87%였는데 윤석열은 55%에 머물렀다.

윤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정권 재창출만은 막아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선 사후 조사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 중 ‘정권 교체(39%)’ ‘상대 후보가 싫어서(17%)’ ‘민주당이 싫어서(5%)’를 합치면 61%이다. (복수 응답) 박근혜 투표자 중 이런 부정적인 이유를 제시한 사람은 6%뿐이었다.

여기에서 윤 대통령이 깨달아야 할 두 번째 제약이 도출된다. 그가 맡은 1단계 미션은 정권 교체였고 비록 아슬아슬할망정 그는 그것을 해냈다. 그런데 이제부터 무얼 하려는지 2단계 계획은 비판층은 물론이고 지지층도 모르고 있다. 국정 전 분야에 걸친 담대한 비전을 빨리 보여주지 않으면 지지층도 떠날 것이다. 아니, 이미 지난 한 달간 대구·경북이나 60대 이상에서도 15%포인트가 떠났다.

셋째, 윤 대통령은 엎치락뒤치락 끝에 당선된 첫 대통령이다. 민주화 이후 있었던 거의 모든 대선에서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던 후보가 쭉 1위를 유지하다가 당선됐다. 사람들의 주관적 기억 속에서는 엎치락뒤치락했던 것 같지만 그건 지지율 격차가 좁혀질 때 느꼈던 희망이나 아슬아슬함이 과장된 것일 뿐, 실제로는 1위 후보가 줄곧 1위를 하다가 대통령에 올랐다.

유일한 예외는 선거 2주를 앞두고 막판 역전극의 신화를 썼던 노무현이었다. 김대중도 이회창에 역전하기는 했으나 그건 후보 확정 후 한 달 이내에 곧바로 뒤집은 것이어서 그 후 줄곧 우위를 유지하다가 당선됐다.

만만치 않은 야당부터 인정해야

반면 윤석열 후보는 각 당 후보가 확정된 후 대선까지 불과 넉 달 동안만 따져도 지지율 42%에서 26%를 오가며 서너 차례나 엎치락뒤치락했고,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난해 3월 4일 이후부터 따지면 7~8차례나 이재명 후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앞서 있을 때도 큰 차이가 벌어진 적보다는 혼전 속에 약간 앞선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세 번째 제약이 있다. 엎치락뒤치락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이나 이명박이 당선되었을 때 야당은 절멸 상태였다. 자유한국당은 분당했고 대통합민주신당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허공으로 사라졌다. 자유한국당 대표는 단식하고 삭발하는 아스팔트 우파가 되었고, 친노는 폐족을 선언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169석으로 여당보다 54석이나 많은 제1당이고,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은 여러 비난에도 계양을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고, 머지않아 야당 대표가 될 수도 있다. 그와 관련한 수사가 구체적 결과를 낸다 하더라도 야당의 판도를 바꿀 뿐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야당과의 경쟁과 협상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시행령 정치를 넘어 국정에 대한 협상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질을 복원해야 한다.

묘수 없는 만큼 정공법으로 가야

윤 대통령에게 주어진 세 가지의 제약을 종합해보자. 첫째, 팬덤은 없고 따라서 갈라치기와 폭주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둘째, 무조건적 지지는 없다. 국정 비전을 빨리 보여주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셋째, 경쟁의 상대를 인정하고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결국 묘수는 없다는 뜻이다. 정공법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찌 보면 기회일 수도 있다. 팬덤과 무조건적 지지가 없다는 것은 거꾸로 행동반경을 넓혀준다. 강성 지지층에 발목 잡히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마침 세계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어서 국민을 설득할 국가적 의제는 쌓여있다. 기존에 걱정해오던 성장률, 인구, 양극화 같은 의제들이 주로 국내 문제였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방아쇠를 당긴 냉전 시대의 귀환과 무력 충돌의 현실적인 가능성, 코로나가 촉발한 테크놀로지 블록의 첨예화, 경제의 퍼펙트 스톰 같은 것들은 차원이 다른 세계 질서 재편의 문제다.

윤 대통령은 세계사적 안목으로 이런 의제들에 대한 국가 전략을 제시하고 야당과 협상하고 타협해야 한다. 제대로 된 대통령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마침 떨어지고 있는 지지율은 이것을 서두르라고 말해주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