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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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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금융팀 기자

최현주 금융팀 기자

한 아이에게 어머니가 물었다. “못 보던 연필인데 어디서 났니?” 아이는 우물쭈물 답했다. “짝꿍 건데 몰래 가져왔어요.”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 예쁘구나.” 다음 날 아이는 시장에서 포도를 훔쳐왔고 어머니는 “포도가 잘 익었구나”고 말했다.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훔쳤고 결국 남의 집에서 보석을 훔치다 잡혔다.

감옥에 가게 된 아들을 보고 땅을 치며 우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말했다. “처음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 어머니가 따끔하게 혼냈더라면 이 꼴이 되지 않았을 거예요. 어머니가 꾸짖지 않아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나쁜 행동인지 몰랐잖아요.” 『이솝우화』 중 ‘도둑 어머니의 가르침’ 이야기다.

윤석열 정부의 ‘빚 탕감’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4일 발표한 만 34세 이하 저신용(신용평점 하위 20% 이하) 청년을 위한 ‘청년 특례 채무조정 제도’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저신용 청년의 이자를 최대 50% 감면하고 3년까지 원금상환 유예한다.

금융위원회는 설명 자료에 ‘많은 청년이 저금리 환경에서 재산 형성 수단으로 저축 대신 돈을 빌려 주식·가상자산 등 위험 자산에 투자했다’며 ‘이들의 투자 실패가 장기간 사회적 낙인이 되지 않게 한다’고 밝혔다. ‘빚투’(빚내서 투자) 청년을 위한 구제책이라고 정부 스스로 밝힌 셈이다.

그간 성실히 저축해 온 청년층은 물론이고 전 연령층이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해 가상자산 투자 연령별 비중은 30대 이하가 55%, 40대 이상이 45%다. 그런데 콕 찍어 청년층의 빚만 탕감하겠다는 제도는 지지율을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난도 거세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우려도 크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부실화돼 뒷수습하기보다 선제적으로 적기 조치하는 게 국가 자산을 지키는 데 긴요하다”고 말했다.

취지는 좋다. 문제는 탕감만 있고 가르침이나 재기 발판은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4년간 58만 명의 빚을 탕감했다. 그런데 이 중 10만6000여 명이 다시 채무불이행자(3개월 이상 연체)가 됐다. 빚 부담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직접 돈을 벌어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재기할 수 있고 빚투 무서운 줄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