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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굵으면 치매 위험, 허벅지 가늘면 OO병…'줄자' 건강학 [건강한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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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줄자로 재는 건강상태

전신 건강의 신호등을 파악할 수 있는 의외의 도구가 있다. 바로 ‘줄자’다. 목·허리·종아리·허벅지 같은 신체 부위의 둘레만 규칙적으로 재도 현재의 건강 상태뿐 아니라 다가올 질환까지 점치는 데 꽤 훌륭한 방법일 수 있다. ‘둘레의 비밀’은 과학적 연구결과로 점차 밝혀지고 있다. 특히 부위에 따라 둘레가 길면 건강에 청신호일 수도, 적신호일 수도 있다. 오늘부터 틈틈이 줄자로 온 가족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보는 건 어떨까.

종아리 둘레근감소증

종아리의 가장 볼록한 곳 둘레는 근감소증의 지표다. 근감소증은 근육의 양·힘·기능이 모두 감소하는 질환으로, 30대부터 근육량이 매년 0.5~1%씩 줄어든다. 70세 미만에서 15~25%, 80세 이후에는 여성의 40%, 남성의 50%에서 근감소증이 나타난다. 한국인의 경우 종아리 둘레가 남자는 35㎝ 미만, 여자는 33㎝ 미만이라면 근감소증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학회지(2018)에 실린 ‘한국 노인 노쇠 코호트 구축 및 중재 연구’에 따르면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원장원 교수는 만 70~84세 657명을 대상으로 종아리 둘레와 근감소증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그 결과, 종아리 둘레가 35㎝ 미만인 남성, 33㎝ 미만인 여성의 각각 82%, 72%에서 근감소증이 발견됐다.

종아리 둘레가 근감소증의 지표로 꼽히는 이유는 종아리가 ‘전신 근육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어서다. 원장원 교수는 “종아리는 유독 지방이 적고 근육이 풍부한 부위”라며 “종아리가 기준보다 가늘다면 병원을 찾아 악력, 근력, 보행 속도 검사 등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권장했다. 근감소증이 진단되면 증상 악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동반 질환을 확인한 후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다.

우유·소고기처럼 필수아미노산이 골고루 든 단백질 식품을 섭취하면서 근력·유산소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파인애플·배·키위·식초 등으로 고기를 재워 두면 고기의 단백질 결합을 느슨하게 해 어르신도 부드럽게 섭취할 수 있다. 노년기엔 약한 강도의 유산소 운동이나 일상에서의 신체 활동을 지속하는 방법이 권장된다. 빠른 걸음의 산책, 팔 벌리고 손뼉치기, 누워서 자전거 타기 등이 있다.

허벅지 둘레당뇨병·혈전

허벅지가 가늘수록 당뇨병 발병 위험이 커진다. 2013년 연세대 보건대학원이 30~79세 남녀  32만 명의 건강검진 자료를 분석한 결과, 허벅지 둘레가 1㎝ 줄어들 때마다 당뇨병 발병 위험이 남성은 8.3%, 여성은 9.6%씩 높아졌다. 허벅지 둘레가 43㎝ 미만인 남성은 60㎝ 이상인 남성보다 당뇨병 발병 위험이 4배 높았고, 43㎝ 미만인 여성은 57㎝ 이상인 여성보다 5.4배 증가했다. 원 교수는 “온몸 근육의 3분의 2 이상이 허벅지에 모여 있다”며 “섭취한 포도당의 70% 정도가 허벅지 근육에서 소모될 정도로 혈당 조절에 허벅지 근육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허벅지가 가늘면 수술 후 혈전 발생 위험도 커진다. 가천대 길병원 정형외과 이병훈 교수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환자 261명을 대상으로 허벅지 근육량을 촬영해 상·중·하로 나눈 뒤 수술 후 5~7일째의 혈관 조영 CT 검사와 2년간의 경과 관찰로 혈관 상태를 추적했다. 수술 후 5~7일째엔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혈액순환 저하, 수술 과정에서의 혈관 손상 등으로 인해 혈전 생성 위험이 가장 높은 때다. 연구결과, 종아리 내에 생기는 혈전인 ‘심부정맥혈전증’은 허벅지가 가장 부실한 ‘하(下) 그룹(52명)’에서의 발생 위험이 상(上)·중(中) 그룹보다 2.97배 높았다. 이병훈 교수는 “허벅지 근육이 부족하면 혈액을 심장 쪽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부족한 데다 혈관 탄성이 떨어져 혈전 생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분석했다. 누워서 다리 들기, 스쿼트 같은 저항성 운동은 근육세포의 재생을 촉진하고 근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목둘레대사증후군

최근 목둘레가 심혈관 질환과 대사증후군 발생 위험을 시사하는 새 지표로 떠올랐다.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은 2019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40세 이상 성인 4208명을 대상으로 목둘레와 대사증후군의 관계를 분석했다. 조사 대상자의 평균 목둘레는 남성이 38.1㎝, 여성이 32.8㎝였다. 연구팀은 대사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는 목둘레의 기준을 남성은 38㎝ 이상, 여성은 33㎝ 이상으로 제시하고, 이들을 목이 굵은 사람으로 분류했다. 연구결과, 목이 굵은 사람은 가는 사람보다 고혈압 발생 위험이 남성은 1.8배, 여성은 1.7배 높았다.

당뇨병 발생 위험도 목이 굵을수록 남성이 1.5배, 여성이 2.1배 높았다. 특히 목이 굵은 여성의 대사증후군 발생 위험은 가는 여성보다 2.9배 높았고, 남성도 2.4배에 달했다. 목둘레가 길수록 성별과 상관없이 허리둘레, BMI(체질량지수), 이완기 혈압, 공복 혈당, 공복 인슐린, 당화혈색소, 중성지방 수치가 모두 높지만 몸에 좋은 HDL 콜레스테롤 수치는 떨어졌다. 연구팀은 “목둘레 증가는 한국인의 심혈관 질환 위험 인자에 속하며, 대사증후군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지표”라고 언급했다.

미국 심장학회에서 남녀 3300명의 목둘레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목둘레가 3㎝ 증가할수록 HDL콜레스테롤은 남성이 2.2㎎/dL, 여성은 2.7㎎/dL씩 줄었다. 반면에 혈당은 남성이 3㎎/dL 여성은 2.1㎎/dL씩 증가했다. 목이 굵을수록 동맥의 강직 상태와 협심증 발생률을 증가시키며, 10년 내 관상동맥 질환 발병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목둘레는 비만과 비례한다. 상체에 살이 찌면 목둘레가 증가한다. 체중을 감량하면 목도 자연스레 가늘어진다. 평소보다 천천히 씹어먹으면 포만감을 불러와 칼로리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 긴 목둘레는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의 주요 위험 인자로도 활용된다. 이는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의 주요 원인이 비만이기 때문이다. 목이 굵으면서 잠을 자도 낮에 졸리거나 코골이가 있다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다.

허리둘레치매·종양

허리둘레는 의외로 치매와 대장 종양 위험의 가늠자가 된다. 캘리포니아의 건강관리기구 ‘카이저 퍼머난테’가 남녀 6583명을 대상으로 장기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1964~73년 중년층인 이들의 허리둘레를 측정한 뒤, 30년 후(73~87세) 의료기록을 조사했다. 이들이 노년층이 된 94~2006년에 총 1049명이 치매로 진단받았다. 연구결과, 중년기에 허리가 굵었던 사람이 노년기에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았다. 허리둘레가 가장 짧았던 그룹(하위 20%)보다 상위 40%가 치매에 걸린 비율이 49% 더 높았고, 상위 20%는 67%, 허리가 가장 굵은 최상위 그룹은 무려 272% 더 높았다. 복부 비만과 내장지방이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면서 치매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대장 내 종양 발생과도 관련 있다.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정윤숙 교수팀은 건강검진에서 대장 내시경을 받은 6만3057명을 대상으로 허리둘레에 따른 대장 내 종양 발생률을 분석했다. 평균 허리둘레가 84㎝(82.1∼108㎝)인 남성 그룹의 대장 내 종양 발생률은 18.7%로, 73.9㎝ 그룹(14.2%), 77.8㎝ 그룹(15.5%), 80.5㎝ 그룹(15.5%)보다 최대 4.5%포인트 더 높았다. 평균 허리둘레가 79.6㎝(77.1~99.5㎝)인 여성 그룹의 대장 내 종양 발생률(11.5%)도 68㎝ 그룹(7.4%), 72㎝ 그룹(8.9%), 75.2㎝ 그룹(9.4%)을 최대 4.1%포인트 웃돌았다. 연구팀은 “대장암 등에 영향을 미치는 비만 관련 대사 이상이 복부의 내장 지방에 기인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백미·빵·파스타 등 정제된 곡류보다 현미 같은 통곡류 섭취를 늘리면 내장  지방 축적을 줄여 허리둘레를 줄이는 데 도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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