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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ㆍ청년층 빚 감면 …취약층 지원에 '모럴 해저드'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정부가 소상공인ㆍ청년층 등 취약층을 위한 각종 금융 지원 대책을 발표한 이후 형평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폐업 등으로 빚 갚기 힘든 자영업자 채무를 최대 90% 탕감해주고, 빚투(빚내서 투자)한 청년은 이자를 깎아주기로 하면서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빚을 성실히 갚아온 차주와의 ‘역차별’이나 ‘빚은 버티면 해결된다’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7.14/뉴스1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7.14/뉴스1

이번 대책으로 돈을 빌려준 은행의 부담은 배로 커졌다. 17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대출 만기연장ㆍ상환유예 등 금융 지원 조치가 9월 종료된 후 은행도 새출발기금과 같은 수준의 채무 조정을 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9월 말까지 ‘새출발기금’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지원 대상에서 빠진 일부 자영업자는 은행이 나서서 채무 조정을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금융위는 만기연장ㆍ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된 후 은행이 자율적으로 소상공인 대출의 90~95%를 자율적으로 연장하도록 했다.

금융위는 폐업ㆍ부도 등으로 빚을 상환하기 어려운 자영업자 채무는 새출발기금을 통해 매입할 계획이다.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이 되면 거치 기간은 최대 1~3년이고, 최장 20년까지 분할 상환을 할 수 있다. 연체 90일 이상의 장기 연체자의 경우 재산의 청산가치만큼 채무를 상환한 후 남은 원금에 한해서 원금의 최대 90%까지 감면해준다.

다만 새출발기금의 재원은 30조원으로 한정돼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자ㆍ소상공인 채무 중 정책 지원 대상인 660조원(부동산 임대업 제외) 중 500조원 안팎만 정상거래 채무로 분류했다. 결국 나머지 대출에 대해서는 은행과 새출발기금이 부실을 흡수해야 한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정부 대책에 들어가지 않는 애매한 분야는 금융사가 답을 줘야 된다”며 취약층 지원에 대한 금융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다만 은행 입장에선 추가 부실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이미 은행권은 소상공인 대출을 자율적으로 90~95% 재연장하도록 한 데 대해 사전 조율이 부족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나친 채무 감면이나 일률적 금융지원 재연장 등의 대책은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넘어 신용평가를 바탕으로 한 금융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 ‘빚투족’ 이자 감면도 논란

금융위가 내놓은 청년층 채무조정 대책은 ‘빚투’로 본 손실까지 정부 예산으로 메워주냐는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금융위는 청년층이 투자 실패가 장기간 사회적 낙인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청년특례 채무조정 제도를 신설했다.

해당 제도는 연체가 발생하기 전에도 이자 감면이나 상환유예 등이 지원된다. 일반 채무조정 제도보다 이자감면 등의 폭도 크다. 일반 프로그램은 연체 이자만 감면해주지만, 특례 프로그램은 만 34세 이하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이자를 30~50% 감면해준다. 원금 상환유예 기간(최대 3년) 중 이자율은 연 3.25%(일반 프로그램 최대 연 15%)만 적용된다. 은행권 신용대출 평균 금리가 연 5.78%(5월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이자 절감 효과가 크다. 금융위는 최대 4만8000명이 1인당 연간 141만~263만원의 이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정부 발표 이후 청년이라는 이유로 ‘빚투’에 대한 책임까지 감면해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있다. 직장인 오모(35)씨는 “암호화폐는 수익에 대한 과세도 아직 하지 않는데, 손실을 봐 빚을 못 갚는다고 정부에서 나서 이자를 깎아주는 게 납득이 안 된다”며 “결국 매달 월급을 받아 생활비를 아껴가며 이자를 내는 사람만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금융권과 함께 지원대상, 심사기준 등을 세밀하게 설계해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청년층은 코로나19 기간 중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빌린 다중채무자가 급증하는 등 대출 부실 우려가 커졌다. 20대 다중채무자 수는 2019년 말 30만3000명에서 올해 3월 말 37만4000명으로 23.4% 증가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자감면 등의 혜택을 보는 건 저신용 청년층인 만큼 대상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대출받은 사람만 우대?

먼저 대출을 받은 사람만 혜택을 받는 ‘역차별’ 논란도 나온다. 정부는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하는 안심전환대출을 내놓으며 금리 혜택을 제공한다. 주택 가격 4억원 이하이고 부부 합산 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저소득 대출자는 신청 시점의 보금자리론 금리에서 0.3%포인트를 우대해준다. 신규 대출자보다 안심전환대출자의 금리가 낮아진다. 7월 보금자리론 금리를 기준으로 신규 대출자는 연 4.6∼4.85%의 금리를 적용받지만, 안심전환대출자는 연 4.3∼4.55%의 금리를 적용받는다. 금융위는 “주택가격이 낮은 순서대로 대환대출을 진행하는 만큼, 역차별보다는 취약차주에 대한 지원책”이라는 입장이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청년층이 채무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될 경우 취업 등에 문제가 생겨 결국 사회 전체의 복지비용이 더 들어가게 된다”며 “청년들은 향후 일을 해 부채를 상환할 기회가 많은 만큼, 이자 탕감 대신 상환 기간 연장이 더 적절해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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