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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우리 안에 숨 쉰다”…3년 만에 비대면 학생시조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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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날을 기념해 16일 서울 조계사 불교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제8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시상식에서 초·중·고등부 대상 수장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환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고가현(제주 어도초6)양, 함영기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 이정윤(시흥 군서고3)양, 조수빈(김포 푸른솔중2)양,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강정현 기자

시조의 날을 기념해 16일 서울 조계사 불교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제8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시상식에서 초·중·고등부 대상 수장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환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고가현(제주 어도초6)양, 함영기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 이정윤(시흥 군서고3)양, 조수빈(김포 푸른솔중2)양,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강정현 기자

“시조는 우리 시가 문학의 뿌리다. (...) 우리는 시조가 있어 고유의 정형시를 가진 문화민족의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6일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제17회 시조의 날(7월 21일) 기념식은 김민정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의 ‘시조 헌장’ 낭독으로 막이 올랐다. 이날 행사에는 제8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시상식도 함께 열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상 학생들과 학부모,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등 100여명이 시조를 향유하고, 시조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에는 학생시조백일장이 아예 열리지 못했고, 지난해에는 비대면으로 개최됐던 터라 올해 시상식은 3년 만에 처음 대면으로 열리는 행사였다. 지난 5월 1일부터 31일까지 e메일·우편으로 접수된 응모작은 모두 885편. 이중 지난달 6일 예심과 본심을 거쳐 초등부 입상자 24명, 중등부·고등부 입상자 각 14명이 선정됐다. 각 부문 대상 수상자에게는 교육부장관상과 상금 50만원이 수여됐다. 우수지도상에는 김계정 시인이, 우수학교상에는 제주 어도초가 뽑혔다.

이날 시상식에서 부문별 대상 시상에 나선 함영기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은 “학생들이 직접 시조를 창작하는 경험을 하면서 자아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문화도 포용할 수 있는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본 대회가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여기 계신 학생들도 스스로 시조를 창작하면서 학교에서의 학습 경험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고, 전통문화의 힘을 체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은 축사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고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형성하는 데 문학, 그중에서도 시조야말로 가장 훌륭한 도구”라며 “시를 창작하는 행위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확보하고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타인과 세계와의 관계도 잘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조계사 불교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시조의 날 기념 행사에서 '숨 쉬는 시조'라는 주제로 강연한 문정희 시인은 "시조에 대한 제 본래 호흡으로서의 애정과 사랑, 가치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16일 서울 조계사 불교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시조의 날 기념 행사에서 '숨 쉬는 시조'라는 주제로 강연한 문정희 시인은 "시조에 대한 제 본래 호흡으로서의 애정과 사랑, 가치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학생시조백일장 시상식 후에는 제10회 올해의 시조집상 시상식과 문정희 시인의 문학 강연도 이어졌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52년 동안 시를 써온 문정희 시인은 ‘숨 쉬는 시조’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내가 지금까지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시조에서 매우 큰 도움을 받았다”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우리 전통의 가락인 시조가 숨 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탈리아 베니치아의 카포스카리대에서 강연했던 경험을 풀어놓으며 “집에 있을 때는 가족의 존재가 편하고 지겹다가도 밖에 나가면 내 생명 그 자체였다는 것을 느끼듯이, 외국에 나가면 시조를 더 많이 자랑하게 된다”며 “일본 시인은 하이쿠, 중국은 두보와 이백 등의 고전 시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럴 때 우리에게도 시조가 있다는 걸 더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학생들을 보면서는 “만감이 교차했다”라고 했다. “첫째는 ‘예쁜 시를 썼구나’ 하는 칭찬의 마음이지만, 둘째는 약간의 우려와 두려움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저 학생들 앞에 펼쳐질 세계는 우리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할 세계일 텐데 손에 만져지는, 물질과 속도만 가치 있는 사회에서 한 생애를 시에 바치겠다는 건 얼마나 위험한 선택인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살아나가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학생들을 바라봤다”고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문정희 시인은 서울 진명여고 1학년 시절 시조를 처음 접했다고 소개했다. 과제로 제출한 시조 작품이 이화여대 공모전에 입상했고, 이 일이 계기가 돼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시조 백일장 입상 학생들에 대한 애틋함은 이런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 굵은 페미니즘 시인인 문정희 시인은 지금은 시조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학창 시절 시조와의 인연으로 이날 시조 행사 강연자로 초청됐다. 엄격한 시조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시조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과제와 늘 씨름하는 시조시인들에게 약이 되는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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