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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에 홀린 그들…여기저기 널린 '땡땡이 호박' 무려 40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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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S2A에서 개막한 '영원한 여정'. 높이 127cm의 조각품도 나왔다. [서울=뉴시스]

15일 S2A에서 개막한 '영원한 여정'. 높이 127cm의 조각품도 나왔다. [서울=뉴시스]

서울 영동대로 S타워 1층에 둥글둥글한 호박이 여기저기 놓였다. 빨간 호박, 노란 호박, 초록색 호박···. 손바닥만 한 것부터 사람 크기까지 다양하다. 이 '호박'들의 보험가액은 400억원. 국내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93) 작품이 한데 모이니 여기저기서 '억' 소리가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호박들의 향연'이다.

서울 S2A 개관전 개막 #쿠사마 야요이 40여점 #개인 컬렉터들 작품

글로벌세아 그룹의 문화공간 S2A 개관전 '쿠사마 야요이:영원한 여정' 현장이다. 15일 개막한 이 전시에 쿠사마의 197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회화·조각·판화 40여 점이 나왔다. 해바라기, 금붕어도 있지만, 대부분이 이 작가의 시그니처 소재인 호박 작품이다.

전시는 S2A를 개관한 김웅기(71) 글로벌세아 그룹회장의 소장품 두 점 을 비롯해 국내 개인 컬렉터 10여 명의 소장품으로 구성됐다. 김 회장은 이번에 개관 소식을 알리며 김환기 '우주' 소장자로 3년 만에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실제 소장자가 밝혀지기 전엔  미술계 다른 인물이 낙찰자 행세를 했는데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우주'는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한화 132억 원에 낙찰, 한국 미술품 사상 최초로 100억 원대를 넘긴 작품이다. S2A 소육영 디렉터는 "김환기의 '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 조만간 다음 전시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회화부터 조각까지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작품'들. 절반은 판화 작품이다. [서울=뉴시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작품'들. 절반은 판화 작품이다. [서울=뉴시스]

쿠사마 야요이의 '영원한 여정' 전시장. 왼쪽 벽면으로 'Infinity Nets'연작이 보인다. [사진 이은주]

쿠사마 야요이의 '영원한 여정' 전시장. 왼쪽 벽면으로 'Infinity Nets'연작이 보인다. [사진 이은주]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이 첫 컬렉션으로 구입했다는 초록 호박. [서울=뉴시스]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이 첫 컬렉션으로 구입했다는 초록 호박. [서울=뉴시스]

쿠사마 야요이의 판화 작품 '꽃'. [사진 이은주]

쿠사마 야요이의 판화 작품 '꽃'. [사진 이은주]

쿠사마 야요이의 '꽃'. 2006년 작품이며 캔버스에 아크릴로 채색한 작품이다. [사진 이은주]

쿠사마 야요이의 '꽃'. 2006년 작품이며 캔버스에 아크릴로 채색한 작품이다. [사진 이은주]

이번 전시엔 보험가액만 200억 원에 달하는 100호 크기 노란색 '호박'과 지난해 11월 서울옥션에서 국내 시장 작가 최고 낙찰가(54억5000만원)를 기록한 50호 크기의 1981년작 '호박'도 나왔다. 지난해 낙찰된 호박은 지난해 한국 경매 최고가이자 국내 경매에서 거래된 쿠사마 작품 중 최고가다. 지난해 경매시장에서 쿠사마 작품은 138억 원어치 낙찰됐다.

소 디렉터는 "호박이 많이 전시되어서 비슷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노랑도 다 같은 노랑이 아니다. 작가가 그 안에서 호박 모양, 무늬, 색상, 바탕의 그물 무늬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바라기도 작가가 즐겨 그렸던 소재다. 이번 전시에 나온 해바라기는 디테일이 뛰어나고 쿠사마 작품 중 가장 색을 많이 쓴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또 점 무늬 대신 수천개의 거울 타일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제작한 '반짝이는 호박'(Starry Pumkin, 높이 127㎝) 조각도 나와 눈길을 끈다.

그러나 전시작의 절반은 판화다. 요즘 컬렉터들의 경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젊은 층이 미술품 수집에 뛰어들면서 판화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과거 컬렉터들은 '유화'만을 수집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으나 요즘 30~40대 층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판화라도 소장하겠다"는 이들이 많다. 이 때문에 최근 판화 가격도 크게 올랐다. 이번 전시에 나온 92년도 노란 호박 판화는 경매 당시 시작가가 2억2000만원이었다.

컬렉터들은 왜 열광하나

전시작 중 김 회장의 소장품은 2점이다. 아크릴로 채색된 손바닥 크기의 '초록 호박'(1993,15.8x22.7㎝)과 '6월의 정원'(1988. 45.5x37.9㎝)이다. 2000년대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며 처음 구입한 작품이었다. 김 회장은 전시 인사말에서 "작가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내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처음 보는 쿠사마의 작품 두 점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쿠사마는 1929년생으로 올해 만 93세다. 어릴 때 부모님이 종자(種子) 농장을 경영해 다양한 꽃과 호박을 보며 자랐다. 10세 무렵부터 물방울과 그물 무늬를 그렸으며 1957년부터 1972년까지 뉴욕에서 조각, 패션, 퍼포먼스를 넘나들었다. 1977년 일본으로 돌아온 야요이는 48세 때부터 현재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해 병원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업을 지속해왔다.

끝없이 반복되는 땡땡이와 그물 등 작품에 등장하는 패턴은 그가 10세부터 앓아온 불안신경증, 강박과 편집증과 관계가 있다. 그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곤혹스러운 병이 원인"이라며 "똑같은 영상이 자꾸 밀려오는 공포"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작품 창작이 자신에게 강박과 환각을 치유하는 행위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컬렉터들은 왜 이 그림에 열광하는 것일까. 소 디렉터는 "야요이는 회화·조각·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아우르며 자기만의 독특한 화업을 달성했다"며 "호박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활용해 정교한 디테일 표현으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투자 측면에서도 지속해서 가격이 오르고 컬렉터 층도 국내외에 널리 분포돼 있다는 점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시장의 높은 가격엔 작가가 고령이어서 사후에 회고전 등 유수 미술관에서 전시가 이뤄질 경우 시장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도 반영돼 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제주도 본태박물관엔 쿠사마 작품이 다수 전시돼 있다. 현재 쿠사마 개인전은 일본 마쓰모토, 이스라엘 텔아비브,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고 있으며 9월 홍콩 엠플러스 뮤지엄에서 대규모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전시는 9월 14일까지. 일·월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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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세아=1986년 김 회장이 창업한 세아상역이 모태로 현재 10여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조2500억 원2018년 STX중공업의 플랜트 사업 부문을 인수하고, 2019년 국내 1위 골판지 업체인 태림페이퍼와 태림포장도 인수했다. 최근 쌍용건설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세간에 이름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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