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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40분의1 두께의 반도체 혈관"…삼성 공장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일 부산 송정동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반도체 패키지 기판 생산 공장에서 삼성전기 직원이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작 공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기]

지난 14일 부산 송정동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반도체 패키지 기판 생산 공장에서 삼성전기 직원이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작 공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기]

지난 14일 오후 KTX 부산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송정동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최근 삼성전기가 1조9000억원 투자를 결정한 반도체 패키지 기판(FCBGA·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의 공정을 보기 위해 생산 거점인 이곳을 찾았다.

공장 앞에서는 FCBGA 설비 증축을 위한 버스정류장 이전 공사가 한창이었다. 생산 공장으로 들어가기 전, 방진복과 모자·장갑·신발을 갖춘 뒤 신발 바닥 세척과 에어샤워 살균 소독을 했다. 스킨·로션 같은 기초 화장 외에 선크림·BB크림·마스카라·입술 틴트 등도 모두 지웠다. 미세한 가루가 제품 불량을 일으킬 수 있어서다.

전자기기의 ‘혈관’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반도체 칩과 메인 기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혈관이자 신경이다. 이 중에서도 FCBGA는 하이엔드(고사양) 제품으로 분류된다. FCBGA는 총 21단계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데 크게 제품 재료인 동박적층판(CCL)으로 뼈대 만들기, 많은 회로 확보를 위한 층 쌓기, 칩과 연결해주는 범프 형성 등으로 나뉜다.

‘LTH CO₂드릴’이라고 적힌 방에 들어가자 인쇄기처럼 생긴 기계 여러 대가 ‘윙윙’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레이저 드릴로 각 층을 연결하는 구멍(비아)을 가공하는 과정이다. 삼성전기는 A4 용지 두께 10분의 1 수준인 10㎛(마이크로미터·1㎛는 1m의 100만 분의 1) 지름의 비아 가공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기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품. [사진 삼성전기]

삼성전기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품. [사진 삼성전기]

삼성전기는 이달 국내 최초로 서버용 FCBGA 양산을 시작했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에는 모바일 반도체용인 볼그리드 어레이(BGA)와 PC와 서버·네트워크, 자동차 반도체용인 FCBGA가 있다. 서버용 FCBGA는 일반 PC용 FCBGA보다 기판 면적이 4배 이상인 데다 층 수 역시 두 배 이상이라 생산하기 어렵다.

황치원 삼성전기 패키지개발팀장(상무)은 “미세 가공 기술뿐 아니라 전기신호가 지나가는 회로의 폭을 머리카락 두께 40분의 1인 3㎛까지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양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35배 현미경으로 서버용 FCBGA의 앞면을 들여다보자 무수히 많은 은색 구멍이 보였다. 황 상무는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은색 볼(마이크로 범프)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가로 60~75㎜, 세로 60~75㎜ 정도 크기의 기판에 지름이 수십 마이크로미터 단위인 범프가 5만~10만 개 들어가 있다. 18~20층으로 이뤄진 기판의 두께는 1.2~2㎜다.

빅테크 칩 생산해 연평균 성장률 10%

하이엔드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반도체의 고성능화, 5세대 이동통신(5G)·클라우드·인공지능(AI) 기술 발달 등에 따라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지만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가 적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반도체 칩을 제작하면서 하이엔드 반도체 패키지 기판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부산 송정동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전경. [사진 삼성전기]

부산 송정동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전경. [사진 삼성전기]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업계에 따르면 2022~2026년 BGA를 포함한 전체 반도체 패키지 기판 시장은 113억 달러(약 15조원)에서 170억 달러(약 22조5000억원)로 연평균 10% 성장할 전망이다. 성장률이 반도체 시장 전체(4%),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5%), 반도체 패키징(6%) 시장보다 높다. 기판 중에서도 하이엔드 반도체 패키지 기판의 연평균 성장률은 15.7%에 이를 전망이다.

성장성은 생산량에서 나타난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거의 100%에 가까운 가동률로 제품 크기 기준 축구장 100개 면적에 해당하는 70만3000㎡(약 21만 평) 규모의 생산 실적을 냈다.

삼성전기, 1조9000억 투자 결정 

삼성전기는 지난해 12월 베트남 법인 FCBGA 시설 구축에 1조3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데 올해 부산·세종·베트남사업장에 600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베트남사업장에서는 내년 하반기부터 FCBGA를 양산할 계획이다. LG이노텍과 일본 이비덴·신코덴키·대만 유니마이크론 등 주요 기판 업체들 역시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의 반도체 패키지 기판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기는 올해 서버·네트워크용 FCBGA 양산을 기점으로 고사양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품 라인업을 확대해 하이엔드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두 개 이상의 반도체 칩을 기판 위에 배열해 통합된 시스템으로 구현할 수 있게 한 패키지 기판 기술인 SoS(System On Substrates)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기의 지난해 매출은 9조6750억원으로 이 중 반도체 패키지 기판 매출은 1조6791억원이다. 이 사업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6.2%, 2020년 16.8%, 지난해 17.3%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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