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언론인 살해" 사우디 때렸다더니…되레 바이든이 한방 먹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기념촬영 중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운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기념촬영 중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운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문제를 제기하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히려 미국의 인권문제로 반격을 당한 것으로 16일(현지시간) 알려졌다.

전날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자리에서 카슈끄지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했다고 말했다.
"카슈끄지 살해에 대해 당시 어떻게 생각했고 지금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명히 밝혔다"고 했는데, 빈 살만 왕세자는 "개인적으로 책임이 없으며 책임 있는 이들에 대해선 조처를 했다"는 답변을 해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날 CNN은 빈 살만 왕세자가 혐의를 부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미국이 연관된 인권 문제를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미군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 사건, 팔레스타인계 미국 언론인인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 피격 사건을 거론하며, "이런 문제는 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실수"라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책임자를 처벌하고 잘못을 해결하기 위한 조처를 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2004년 미군이 이라크인 수감자를 학대하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는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례로 거론되는 사건이다.

또 지난 5월 팔레스타인 취재 중 이스라엘군 쪽에서 온 총탄에 사망한 아부 아클레 기자 사건은 미국이 "의도성이 없었다"고 결론 내리면서 이스라엘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우디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와의 만남을 두고 미국에선 몇달 전부터 논란이 거셌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빈 살만을 반체제 언론인 암살의 배후로 지목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날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에 오지 않았다면, 외국 지도자들과 둘러앉아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퇴보했을 것"이라며 이번 순방 결정을 옹호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실제 어느 정도 사우디의 인권 문제가 논의됐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회담에 참석했던 아델 알 주베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기자들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문제로) 빈 살만 왕세자를 비난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이런 양자 회담 후 말이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1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당신의 눈을 보면 영혼이 없는 것 같다"고 했고, 1993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당시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에게 "나는 당신을 빌어먹을 전범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스스로 밝혔지만, 동석했던 이들은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천성적으로 꾸미기를 좋아하는 이야기꾼"이라며 "카슈끄지 문제로 사우디 왕세자와 맞섰다는 게 얼마나 사실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석유 공급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석유 공급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이번 순방의 주목적이던 석유 증산, 지역 안보 협력 강화 면에서도 뾰족한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다.

이날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석유 공급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중동 국가들의 석유 증산 여부는 다음 달 3일 러시아 등까지 포함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회의에서 결정되는데, 일단 사우디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회의에서 "사우디는 이미 최대 생산 능력치인 하루 1300만 배럴까지 증산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를 넘어서는 추가 생산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못 박았다.

게다가 글로벌 경기침체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가 선뜻 증산에 나서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또 미국은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포함한 연합 방공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사우디 측은 정상회담에서 이런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바이든 대통령이 큰 성과 없이 과연 이번 순방이 가치 있었는지 의구심만 남긴 채 사우디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