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가장 잘생긴 호랑이, 용맹한 모습으로 박제되다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의 수장고. 어두운 수장고의 불을 켜자 용맹하게 뛰어오르는 호랑이와 마주했다. 들어 올린 앞발에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살아생전 싸움 꽤 했던 듯 콧잔등의 상처가 선명하게 보인다. 서울대공원의 훈남이었던 시베리아 호랑이 ‘코아’는 윤지나 박제사(34)의 손에서 다시 포효하고 있었다.
박제는 생을 마감한 동물을 후처리하여 표본으로 제작하는 것을 뜻한다. 서울대공원은 전국 동물원 중에서 유일하게 표본 제작실을 설치하고 ‘연구, 교육’ 목적으로의 박제 표본을 제작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10년 넘게 무지개다리를 건넌 동물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 윤 박제사가 있다.
미술학도에서 박제사로
윤 박제사는 예중, 예고를 거쳐 미대 조소과에 진학했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음에도 ‘정말로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이 계속됐다. 전공 대신 수의과 연구실을 더 자주 찾았다. 유난히 동물을 좋아한 탓이었다. “동물 골격 표본을 마주한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동물의 움직임에 탐닉했고 그것을 재현하는 탄탄한 미술 실력까지 갖췄으니까요” 그는 박제를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라고 정의했다.
현재 국내에서 박제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관은 없다. 대부분 도제식으로 익혀야 한다. 윤 박제사는 문화재수리기능자 박제 및 표본 제작공 자격증을 취득하고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어시스트 생활을 거쳐 미국 포코노 박제학교를 수료했다. 서울대공원에 자리를 잡은 뒤로도 캐나다의 박제대회 챔피언 켄 워커(Ken Walker)와 교류하며 꾸준하게 공동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항변하다
흔히 박제라고 하면 ‘밀렵꾼의 전리품’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 “8~90년대 까지만 해도 총포사에는 기괴한 모습의 꿩이 걸려 있기도 하고, 과시를 위한 박제가 많았죠” 수렵이 제한되고 동물보호법이 강화되면서 이런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다. 국내 동물원과 생물자원관 등에서 이뤄지는 박제작업은 이와는 궤를 달리한다. “단순히 멋진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게 동물의 습성과 생태를 잘 나타내고, 자연을 완벽하게 고증한 표본 제작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자연사한 동물들만 표본으로 제작하고 천연기념물의 경우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이 있어야만 박제를 할 수 있다.
호랑이 박제에는 6개월이 걸리기도
박제의 과정은 ‘마네킹에 가죽을 입히는 식’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자연사한 동물 중에서도 멸종위기종이 우선 대상이다. 먼저 동물을 부검 후 최대한 손상 없이 가죽을 벗기고(스키닝), 남은 살점 등을 제거하는 ‘겸도’를 진행한다. 벗겨낸 가죽은 부패하지 않도록 화학약품 처리 후 건조 과정을 거쳐 살아있던 개체와 일치하게 제작한 마네킹에 씌운다. 이어 눈, 코, 귀, 발 등 세부적인 표현을 하고 봉합한다. 건조와 채색 작업을 거쳐 서식지 자연환경까지 제작해 마무리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시선이 먼저 닿는 눈의 표현이다. 정교하게 제작된 의안을 사용하고 촉촉한 느낌을 위해 투명한 액체를 눈가에 바르기도 한다. 완성까지 작은 동물의 경우 3~4개월, 호랑이처럼 큰 동물의 경우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고양잇과 동물에 매료
그는 바다쇠오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7~800점 정도의 표본을 제작했다. 박제 표본 외에 골격, 모피 표본을 포함한 수치다. 포유류가 주 종목이고 특히 고양잇과 동물을 좋아한다. 수장고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 시베리아 호랑이 코아와 한울이, 임인년 호랑이해를 앞두고는 서울대공원의 터줏대감 강산이를 표본으로 재탄생 시켰다(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강산이는 지난 2019년 15살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현재는 눈표범(설표)을 작업 중이다.
박제는 죽음보다 생명을 마주하는 일
그에게 박제 작업을 할 때 애잔한 마음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박제사는 사육사가 아닙니다”였다. 감정에 빠져 작업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정성스런 태도. 그 마음이 우선이라고 했다. 이어 “과학적인 대상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죠”라며 박제 작업을 후대를 위한 사명감이라고 표현했다. “표본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에는 한 세기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100년 후에도 아이들이 생생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동물이 가진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재현하려 고민하다 보면 오히려 ‘생명’이 느껴진다고 했다. “가끔 온기를 느낄 때도 있고요. 설표의 손가락을 눌러 보았더니 숨겨져 있던 발톱이 드러날 때 그 치명적인 무기에 감탄합니다. 오랑우탄의 손은 잡았을 땐 손톱이나 주름이 사람과 너무 비슷해서 마치 크고 시커먼 할아버지 손을 잡은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