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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가 판타지? 정명석이 판타지죠" 전문가 뼈있는 일침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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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학교 갈 때까지 진단이 없어지도록 최대한 노력 해보고요. 그래도 안 되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지고 세상을 잘 살 수 있도록 해봐요. ‘우영우’처럼요.”

[뉴스원샷]소아정신과 교수가 보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는 요즘 진료실을 찾는 보호자들에게 이런 말을 종종 건넨다. 김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발견해 조기에 개입하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병원에서 만나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은 1년에 2000명이 넘는다. 그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푹 빠져 있는 이유기도 하다. 14일 오후 전화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어제(13일) 것만 아직이고, 매회 다 봤다”고 말했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진 서울아산병원.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진 서울아산병원.

김 교수에 따르면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고 행동을 반복하거나 관심사가 제한적인 특징을 보인다. 일상생활의 규칙을 정해진 대로 유지하고 싶어하거나 감각적 자극(빛, 무늬, 소리, 회전 물체 등)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우영우가 헤드폰을 쓰고 다니거나 문을 열기 전 손으로 숫자를 세고, 고래에 제한된 관심을 보이며 늘 김밥을 먹는 규칙 등을 보이는 것들이 이러한 특징을 설명한다고 했다. 우영우가 하는 반향어(상대방의 말을 따라하는 행위)도 증상 중 하나인데 이는 다만 “영유아기에 흔하고 성인, 특히 우영우 같이 지능이 좋은 경우 흔하게 관찰되지는 않는다”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는 진단명에 '스펙트럼(범위)’가 붙을 만큼 이 장애의 “증상도, 기능의 수준도 다양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형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한 혐의로 기소된 자폐스펙트럼장애인 김정훈이 등장하는데 그는 변호인들과의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은 상태다. 그는 “극 중 정훈이가 흔히 만나는 모습이고, 정훈이보다 훨씬 심해 어른이 되어서도 말 한마디 못하거나 혼자 생활이 어려워 시설에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우영우처럼 정상적인 인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경우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 교수는 “통상 IQ(지능지수)가 정상인 경우 고기능 자폐라고 하는데, 전체 자폐 중 20~30% 정도”라며 “빨리 찾아내고 조기에 개입해 경과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 비율이 늘고 있다“고 했다. 다만 “20~30% 중에서도 우영우처럼 자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의 50~80%는 지적 장애를 동반해 현실에서는 우영우보다 김정훈 같은 자폐인을 흔히 마주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채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채널

우영우가 화제를 모으면서 일각에선 "현실에선 일어나 힘든 판타지다, 아니다 갑론을박이 오고간다. 우영우는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가졌는데, 이렇게 특별한 능력(서번트 스킬ㆍsavant skills)이 있는 고기능 자폐인이 종종 있다고 한다. 절대 음감을 가졌거나 기억력이 좋아 연도별로 세계사 속 사건을 외우고, 수학ㆍ과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경우 등이다. 김 교수를 거쳐 간 아이 중에도 공학이나 천문학 등의 전공자가 있다고 했다. 특목고를 거쳐 명문대에 진학하기도 한다. 판타지는 아니지만, 매우 드물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선천적인 것으로 본다. 아이와 상호작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의심해야 한다고 한다. 김 교수는 “눈 맞춤이 안 되고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하지 않고, 포인팅(손가락으로 가리키기)이나 보여주기로 관심사와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면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며 “24개월까지 엄마, 아빠와 같은 말을 하지 못할 때도 병원에서 평가를 받아보는 게 좋다”고 했다. 18~24개월쯤 빠른 진단과 빠른 치료가 치료 결과(예후)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우영우는 5세까지 말을 하지 못해 전문의를 찾아간다. 김 교수는 “실제로 5세는 향후 예후를 결정짓는 중요한 나이”라며 “5세 이전에는 집중적인 특수교육을 통해 언어, 인지, 사회성이 발달하도록 하고, 아이가 나이 들면서 장애를 갖고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가 된다”고 했다.

“변호사님도, 정훈이도 똑같은 자폐인데 둘이 너무 다르니까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극 중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들을 둔 정경희(김정훈 엄마)는 우영우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현실에서도 우영우가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라고 말하는 보호자가 있다. 김 교수는 우영우를 둘러싼 환경에서 더 그런 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정명석 같은 변호사가 판타지에요. 우영우에 우호적이고 모든 사람이 우영우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잖아요.” 주변인이 우영우의 장애를 이해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우영우의 활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우영우를 만나려면 사회 곳곳에 정명석 변호사 같은 이들이 있어야 하고, 자립을 돕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김정훈과 그의 엄마 정경희. 사진 유튜브 캡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김정훈과 그의 엄마 정경희. 사진 유튜브 캡처

드라마 3화에서 우영우 아빠는 자폐인과 함께 사는 게 꽤 외롭다는 말을 한다. 김 교수는 이 대목을 언급하며 “진료실에서 마주치는 많은 엄마 아빠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우영우처럼 자폐인 상당수가 이런 일을 겪는다며 “자폐인이라고 해서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해받고 관심사를 나누고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은데 방법을 모를 뿐”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아이를 훈련하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정말 많이 힘들 것”이라며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것이며 모든 부모들에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상한 게 아니라, 특별하게 바라보는 인식”을 강조하면서 드라마를 통해 자폐와 자폐인에 대한 사회의 이해가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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