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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있으나마나한 금리인하요구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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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호 30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말 그대로 자고 나면 오른다. 보통의 직장인이 애용하는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의 금리는 최고 연 10%를 넘어섰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연 5% 안팎이던 게 곱절이 됐다. 정부의 개입(?)으로 최근 금리 상승세가 주춤하던 주택담보대출은 이번 주 한국은행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상승폭이 다시 커질 전망이다. 그래도 치솟는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니,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를 국민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도 다락같이 오르는 이자에 보통의 직장인들은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2020년 91만여 건이었던 금리인하요구권 신청 건수는 지난해 116만여 건으로 급증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대출을 보유한 금융 소비자가 소득 상승이나 신용점수 상향, 부채 감소 등의 변화가 있을 때 금리를 낮춰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대개 보통의 직장인이 승진 등으로 연봉이 올랐을 때 활용할 수 있다.

서민 위해 제도 확대 나섰지만
개선 통해 실효성 먼저 높여야

정부는 은행·보험사 등이 자율적으로 운영해 오던 금리인하요구권을 2019년 6월 법제화했다. 최근에는 지역농협·수협, 신협 등 상호금융으로도 확대했다. 금융당국은 이 제도가 급격한 금리 상승기에 금리 부담을 줄여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권과 릴레이 간담회를 진행 중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간담회 때마다 금리인하요구권의 활성화를 주문하고 있다. 11일 상호금융 대표이사와의 간담회에서는 “코로나19 금융지원 종료 및 추가 금리 인상 등으로 차주의 이자 부담이 늘어날 우려가 있으므로 금리인하요구권 제도가 조기 정착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8월부터는 은행별 금리인하요구권 운영실적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은행별로 금리인하요구권 신청·수용 건수와 감면액을 반기마다 공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14일 내놓은 원금 감면, 금리가 낮은 정책대출로의 전환 등이 소상공인이나 젊은층 등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 민생 안정 계획’이라면, 금리인하요구권 확대를 사실상 보통의 직장인을 위한 대책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금리인하요구권 확대가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소비자주권시민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9~2021년) 은행·보험사 등 4개 금융업권의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은 해마다 줄고 있다. 2019년 42.6%(28만5145건)였던 수용률은 2020년 37.1%(33만7759건)로, 지난해에는 32.7%(37만9919건)로 감소했다. 수용액도 2019년 55조4547억원에서 지난해 22조4692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이유를 들여다보면 그럴 만도 하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과 같은 상품은 금리 산정 때 신용보다는 담보물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신용이 좋아졌다고 해서 금리를 내릴 여력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신용대출은 그 자체가 직장인 등 신용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역시 금리 인하 여력이 없다. 금리 인하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인하폭이 낮아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체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금융권의 운영 실적 공시도 마찬가지다. 그보다는 금융권별 금리인하요구 심사 기준과 불수용 사유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우선이다. 지금은 어떤 기준으로 심사를 하는지, 어떤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는지 금융 소비자는 알 길이 없다. ‘금리를 인하할 정도로 당행 내부신용등급이 개선되지 않았다’, ‘신용상태가 금리 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금융위원회 발표 사례)는 정도가 고작이다. 설명이 모호하거나 기준 자체를 알 수 없는 예가 대부분이다.

은행별 심사 기준도 달라 같은 조건이라도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 되기도 한다. 금리 인상기,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국민 부담을 줄여 보겠다고 나선 것이라면 좀 더 현실성을 실효성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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