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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지 않는 제국’ 천년의 흥망성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7호 23면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까치

합스부르크 왕가 카를 5세는 1516년 외할아버지 사후에 외가의 스페인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후 오스트리아 중심의 기존 중앙 유럽 영지에 스페인, 남부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해안, 포르투갈 등이 추가됐다. 카를 5세 치세에는 스페인이 식민개척한 아메리카 신대륙의 멕시코, 페루, 칠레도 영토가 됐다. 동아시아 필리핀도 영토로 선포됐다. 카를 5세는 세계의 지배자, 왕 중의 왕, 우주의 군주였다. 아들 페르디난트 1세는 헝가리와 보헤미아까지 흡수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유럽의 많은 왕가 중에 이만큼 오래 영토와 권력을 확장하고 대륙과 대양을 지배한 가문은 없을 것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 몇백 년 앞서 처음으로 ‘해가 지지 않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한 것도 이들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좌우명은 ‘더 멀리(Plus Ultra)’다. 가문의 상징인 오스트리아 빈 호프부르크 궁전 내 제국도서관의 천장에는 ‘AEIOU’라는 이합체시(각 구의 첫 글자를 조합하면 다른 뜻이 나타나는 시)가 있다. ‘오스트리아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뜻.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는 10세기 칸첼린부터 영광과 오욕이 교차하는 천 년의 가문역사를 거의 완벽하게 집대성한 대작이다.

시골 영주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원래 라인강 상류 지역과 프랑스-독일 국경지대인 알자스 그리고 스위스 북부 아르가우에서 살았다. 칸첼린의 후대는 수도원을 토대로 부를 축적했다. 수많은 자녀를 유력 가문과 결혼시켜 상대 가문의 대가 끊어질 때마다 영토를 흡수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막시밀리안 1세 가족. 앞줄이 훗날의 카를 5세, 페르디난트 1세, 러요시 2세다. [사진 까치]

막시밀리안 1세 가족. 앞줄이 훗날의 카를 5세, 페르디난트 1세, 러요시 2세다. [사진 까치]

신성로마제국은 합스부르크와 거의 동일시된다. 황제직이 공석이었던 대공위시대(1250~1273년)가 끝나고 합스부르크의 루돌프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선출되면서 가문의 기반이 더욱 다져졌다. 이후 이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을 간간이 통치했고 1438년부터 이 제국이 무너진 1806년까지는 끊임없이 통치했다.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낳은 걸출한 스타. 카를 6세 사후 남성 혈통이 끊어져 왕위를 승계한 그는 치세의 절반을 전쟁으로 보냈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고 가문을 지켜냈고 아들 요제프 2세와 함께 계몽군주로 대대적 개혁에 성공했다. 노예 상태의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전환하고 농민 자녀를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게 했다. 귀족의 특권도 제한했다. 흡혈귀 미신, 복권 당첨 번호 예언, 가톨릭 교회의 사후 마법 등 비과학적인 관행을 철폐했다. 남편 프란츠 슈테판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됐으며 무역상을 통해 전 세계 식물을 수집해 빈자연사박물관을 세우는 등 지식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 사건은 가문의 몰락을 재촉했다. 이를 계기로 발발한 1차대전에서 독일과 동맹을 맺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전쟁에 패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과 전 세계 정치, 사회, 문화,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혁명 때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와 황후 시시,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황제, 루돌프 황태자 등 예술 작품의 주인공이 된 인물들도 이 가문 출신이다. 단일한 민족 집단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보편성은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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