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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켤레 신발로 1만㎞…걸으며 만난 도시의 속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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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호 22면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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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뉴욕
윌리엄 B. 헬름라이히 지음
딜런 유 옮김
글항아리

‘세계 최대 도시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부제가 알려주듯 뉴욕과 뉴요커의 내밀한 속살과 심장, 그리고 영혼을 기록한 책이다. 뉴욕시립대와 대학원에서 40년간 사회학자로 활동한 지은이는 다양한 민족·배경의 830만 주민을 품은 뉴욕시의 맨해튼·브루클린·브롱크스·퀸스·스태튼아일랜드 등 다섯 버러(Borough,구)를 도보로 답사해 ‘뉴욕 견문록’을 써내려갔다. 이를 위해 4년간 시내를 9733㎞나 걸었으며, 수백 명과 대화하며 아홉 켤레의 신발을 닳아 없앴다.

스태튼아일랜드의 해변 판잣길. [사진 제시 리스]

스태튼아일랜드의 해변 판잣길. [사진 제시 리스]

뉴욕에선 때로 지뢰밭도 만난다. 지은이는 위험지구에 가보고 싶다는 친구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험하기로 유명한 브롱크스 포덤 구역의 182번 스트리트에 함께 갔다. 뉴욕 빈곤 지역에 흔한 벽화를 살펴보니 몇 년 전 숨진 히스패닉 ‘빅 주니어’가 그려져 있다. 벽화 주인공은 갱단 두목의 인상이었다. 이들은 벽화를 보고 웃기도 하면서 비판적인 소리를 해댔다. 갑자기 건장한 히스패닉 청년이 건들거리는 걸음걸이에 찌푸린 눈초리를 하고 다가섰다. “뭘 도와드릴까요?” 기지를 발휘해 빠져나왔지만, 이렇듯 뉴욕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냉정해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뉴욕에서 이민은 역사가 아닌 역동적으로 뛰는 심장이다. 지난 10년간 70만 명이 이주했으며, 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서류 미비자(불법체류자의 정치적 순화어)’도 있다. 인기 있는 히스패닉 음식 토르티야는 1985년 뉴욕에 단 하나의 가게만 있었지만, 2001년엔 여섯 개의 공장에서 매주 100만 개를 공급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와 그림이 있는 에드거스 카페. [사진 제시 리스]

에드거 앨런 포의 시와 그림이 있는 에드거스 카페. [사진 제시 리스]

이탈리아인·유대인·아일랜드인·독일인·폴란드인·러시아인에 이어 현재는 도미니카인(12%)·중국인(11%)·자메이카인(6%)·멕시코인(6%)이 뒤를 잇는다. 독특한 건 뉴욕시에 80만 명이 거주해 최대 히스패닉계인 푸에르토리코인은 이민자로 분류되지 않는 점이다. 미국 자치령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이들은 연방 투표권만 없을 뿐 미국 시민권자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뉴욕의 속살이다.

뉴욕은 세계다. 170개 이상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눈여겨볼 점은 언어·종교·출신 국가가 같다고 동일 문화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회학자인 지은이는 같은 무슬림이라도 중동 출신과 중앙아시아나 터키 출신은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데 주목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유대인은 우크라이나 같은 유럽 출신 유대인과 사뭇 다르다.

동네 젊은이 200여명과 전 세계 예술가 100명이 참여한 초대형 벽화 ‘센트로 데 라 파스’. [사진 제시 리스]

동네 젊은이 200여명과 전 세계 예술가 100명이 참여한 초대형 벽화 ‘센트로 데 라 파스’. [사진 제시 리스]

같은 남미 가이아나 출신이라도 아프리카계는 거의 브루클린에 살고, 인도계는 대부분 퀸스에 거주하며, 서로 껄끄러운 관계다. 오늘날 중국계 이민자는 대부분 베이징어 사용자로, 오래된 정착자가 쓰는 광둥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시각을 다투는 뇌졸중 환자가 병원에서 같은 중국계와 소통이 되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이처럼 글로벌 뉴스와 지리 수업, 세계 지도에서 볼 수 없었던 팩트들이 뉴욕에선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이민자 도시 뉴욕은 관용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실상은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분리된 도시라는 게 지은이의 지적. 이스트할렘이나 브롱크스 일부 지역은 히스패닉계가 다수가 되면서 상점이나 옥외 광고판이 온통 스페인어다. 비히스패닉계에겐 폐쇄적이다.

실제 같은 눈속임, 즉 트롱프뢰유 기법의 브루클린 벽화. [사진 제시 리스]

실제 같은 눈속임, 즉 트롱프뢰유 기법의 브루클린 벽화. [사진 제시 리스]

맨해튼은 흔히 기존 백인들이 신규 이민자 집단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실제로는 백인 원주민이 더 많이 산다. 도시 재생, 경제적 변동, 낙후지역 활성화와 임대료 상승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 등이 영향을 끼쳤다. 돈은 사람을 잡는 힘이다.

정체성은 뉴요커의 영혼이다. 이 도시는 서로 다른 정체성과 문화가 만나는 접변 지대이기 때문이다. 퀸스의 오존파크에는 집 앞에 성조기와 성모마리아상을 세워둔 이탈리아계, 전통 촛대 메노라를 걸어둔 유대계가 공존한다. 유대계는 대부분 이민족과 결혼해 성탄절 장식 속에 유대교 12월 명절 하누카를 축하하는 메노라가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뉴욕에 산다는 건 민족·종교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가, 동화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하이브리드 문화를 만들 것인가의 갈림길에 섰다는 의미다. 9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백인의 56%는 다른 민족·종교 집단과, 4분의 1은 일부 겹치는 집단과, 20%는 같은 집단과 각각 결혼했다.

할렘의 식당 웨이터의 말은 정체성 문제를 요약한다. “저는 모든 것입니다. 어머니는 가봉과 프랑스계이고, 아버지는 폴란드와 중국계입니다. 저는 제가 그냥 미국인인 것 같습니다.”

서류 미비자는 뉴욕의 생채기다. 학생이면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있고, 아니면 변호사에게 돈을 주고 부탁해 정치적 망명자가 될 수 있다. 출신국이 평화롭다면? 기독교 신자나 동성애자라서 박해받는다고 하면 된다. 지은이는 이런 제도가 거짓말을 장려한다고 비꼰다.

주목할 점은 뉴욕의 정체성 정치다. 대만계인 존 리우는 브루클린의 파키스탄인과 퀸스의 한국인을 포함한 이민자 집단의 연합으로 뉴욕시 의원, 뉴욕시 감사원장을 거쳐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민자들이 건설한 이 도시의 확실한 이정표다. 뉴욕은 살아서 뛰는 생물이다. 서울·부산·인천 같은 한국 대도시의 미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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