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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가수로 변신한 테너 “또 다른 내 목소리 찾았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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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호 20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가요 앨범 낸 ‘라포엠’ 유채훈

‘팬텀싱어’ 유채훈이 가요 앨범을 냈다.  크로스오버 그룹 라포엠의 맏형으로 콘서트 시장을 평정한 그가 첫 솔로 앨범과 첫 단독 콘서트의 장르로 철저히 가요를 고집한 건 다소 뜻밖의 선택이다. ‘크로스오버 싱어’라는 차별화된 아이덴티티를 잠시 내려놓고 한결 대중적인 발라드 가수로 탈바꿈한 것. 파워풀한 테너 발성의 고삐를 풀어버린 편안한 음색으로 이어가는 노래들이 언뜻 전혀 다른 사람 같다. 좀 간지럽다 싶다가도 어김없이 특유의 ‘한방’을 터뜨려줄 땐 속이 뻥 뚫린다. 온화한 저음에서 파워풀한 고음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과시하는 듯하다. ‘포디움(지휘대)’이라는 앨범명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겠다는 야심이 느껴진다.

힘뺀 발성 어색해 녹음 여러번 중단

“솔직히 그렇죠.(웃음) 크로스오버 싱어들이 앨범을 많이 내지만 완전 가요앨범을 내는 건 두려워들 하는데, 제가 과감하게 시도한 것이니까요. 처음 기획 때부터 저는 ‘상업음악’을 하겠다고 했어요. 일단 대중에게 알리는 게 먼저라 생각했거든요.”

‘일몬도’를 부르는 유채훈을 좋아하는 라포엠 팬덤을 실망시킬까봐 걱정도 했다. 소속사에서도 안전한 크로스오버로 가라고 권유했다. “덜덜덜 떨면서도” 상업음악을 해보겠다고 고집한 건,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꼬였던 ‘대중가수의 꿈’에 깔끔한 첫발을 내딛고 싶어서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만 야망은 없는 앨범”이란다. 무슨 뜻일까.

“발라드라도 더 고음을 올리고 욕심내서 채울 수 있지만 힘을 좀 뺐어요. 이 앨범으로 차트 진입을 해서 1등 해야지 이런 포부는 없고, 현실적인 생각을 해요. 요즘같은 가요 트렌드에 내가 들어가 싸운다는 건 말도 안되고, 대중에게 유채훈이라는 싱어를 선보이는 시작의 의미인 거죠.”

대중가수로 첫발을 뗀 유채훈은 23~24일 블루스퀘어에서 첫 단독콘서트를 연다. 최영재 기자

대중가수로 첫발을 뗀 유채훈은 23~24일 블루스퀘어에서 첫 단독콘서트를 연다. 최영재 기자

라포엠 속에서는 서글서글한 맏형으로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 이미지가 강한 유채훈이지만, 일대일로 대화를 하니 조금 다르다. 파워풀한 테너라기보다 속삭이는 발라더에 가깝달까. 발라드로 점철된 음반을 두고 “딱 내 성격같은 앨범”이란다. 타이틀곡 ‘별의 기억’을 제외한 ‘셀프 원픽’도 잔잔하고 묵직한 ‘숨’이란 곡이다. “듣다보면 ‘숨’에서 멈춰서 계속 돌려 듣게 돼요. 가족들도 지인들도 그 노래가 좋다고 하고, 제가 좋아하는 감성인 것 같아요. 블로그를 오래 했는데, 그걸 보면 제 성격을 아실거예요. MBTI는 ENFP가 나오는데, 내 안의 다른 자아가 있는 것 같아요. 조근조근 똘끼있는? 그래서 돌아다니길 좋아하나 봐요.”

첫 솔로앨범 ‘포디움’. [사진 모스뮤직]

첫 솔로앨범 ‘포디움’. [사진 모스뮤직]

그런데 “조근조근한” 성격과 달리 ‘어나더 레벨’로 불리는 힘있는 테너 창법을 가진 만큼, 잔잔한 노래를 힘 빼서 부르기는 엄청 어색했단다. 녹음실을 여러 번 뛰쳐나갈 정도로 화가 났다고. “녹음을 하는데 내 소리가 낯간지럽고 싫은 거예요.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제작진들은 좋다고 하니까 혼란스러웠죠.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은데, 좋다는 사람들은 녹음을 빨리 끝내려고 저러는 건가 싶고.(웃음) 팀 공연을 병행하느라 원래 내 스타일과 바뀐 창법을 오가야 하는데, 지친 상태에서 맘대로 작동이 안되니 혼자 벽에 머리도 많이 찧었어요. 프로듀서 에코브릿지 형님이 저를 달래시느라 애를 많이 쓰셨죠. 만족할 순 없지만, 내 목소리가 이런 면도 있구나 하고 몰랐던 지점을 찾은 느낌입니다.”

첫 솔로앨범 내고 단독콘서트를 앞둔 가수 유채훈을 중앙일보s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첫 솔로앨범 내고 단독콘서트를 앞둔 가수 유채훈을 중앙일보s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뭘 이루겠다는 야망은 없다”지만, 이번 앨범은 사실 그의 인생에 엄청난 의미다. 성악을 전공하면서도 늘 품고 있었던 대중가수의 꿈은 좌절의 연속이었고, 마침내 포기했을 때 거짓말처럼 찾아온 기회를 잡아 도달한 첫 결실이기 때문이다.

“첫 단추부터 꼬였어요. 가수가 되고 싶은데 제 고향 포항에선 실용음악을 배울 수 없어서 예고 성악과로 갔으니까요. 지금은 성악이 도움이 됐지만 그땐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 괴리감이 컸어요. 그럼에도 ‘좋은 테너’라는 칭찬을 들으며 대학까지 왔는데,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학교 축제 때 노천극장에 온 가수들 보면 심장이 더 뛰더군요. 저기서 내가 저렇게 소리지르며 뛰어다녀야 하는데 싶고. 그런 괴리감 때문에 음악을 하면서도 즐겁지 않았어요.”

어정쩡한 상태에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사기꾼들이 접근해 ‘키워주겠다’며 돈만 뜯고 잠적하기 일쑤였다. 군대까지 다녀 온 뒤 20대의 끝자락에 마지막 기회라며 붙잡았던 크로스오버 그룹 ‘어썸’ 활동은 오히려 가장 큰 시련을 줬다. 활동이 실패했지만, 소속사와의 계약에 묶여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6월 ‘정엽x유채훈 콘서트 리필(Re:feel)’ 콘서트에서 소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유채훈. [사진 모스뮤직]

지난 6월 ‘정엽x유채훈 콘서트 리필(Re:feel)’ 콘서트에서 소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유채훈. [사진 모스뮤직]

“친한 동료들이 ‘팬텀싱어’ 시즌 1, 2에 다 나가서 잘되고 있는데, 멀쩡한 내가 왜 못나가야 하나 답답했죠. 노래를 아예 포기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노래는 카메라 장비 사려고 작은 행사를 뛰는 정도였죠. 거의 전문 사진작가가 되려던 찰나에 팬텀싱어 시즌3 오디션을 한다더군요. 방송에 얼굴이라도 나오면 행사 출연료 올라갈테니 그걸로 좋은 장비 사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갔는데, 이렇게 잘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앨범의 마지막 곡 ‘이대로 여름’은 음악을 포기했을 때 끄적인 자작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괴로움이 새겨진 슬픈 노래가 아니라 비개인 오후의 햇살과 새소리, 시원한 바람 한줄기까지 묻어나는 가사에 그의 평온한 심성이 느껴진다.

“집에서 폐인처럼 지내다 보니 이대로 있다간 바다 끝까지 파묻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나가서 동네를 걸어다니니 순간적으로 힐링이 되고 조금 스트레스 해소가 돼서 글을 쓴 거죠. 2016년부터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일기처럼 쓰고 있는데, 그 당시 글들은 부끄러워서 비공개로 해놨어요. 오글거리는 싸이월드 감성인 거죠. 예전에 그걸 보신 분들이 얘기하시면 ‘이불킥’ 해야 해요.(웃음)”

첫 앨범 발매와 동시에 열고 있는 사진전도 의미심장하다. “일상에서 툭툭 찍은 사진”이라지만, 전문가적인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하다. 사진이 그저 숨통 틔우는 취미 생활이 아니라, 어딜 가나 카메라를 들고 다닐 정도로 그에게 또 하나의 진지한 표현수단인 것이다.

첫 솔로앨범 내고 단독콘서트를 앞둔 가수 유채훈을 중앙일보s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첫 솔로앨범 내고 단독콘서트를 앞둔 가수 유채훈을 중앙일보s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한때 나름 진지했으니까요. ‘영끌’해서 장비 사서 산적처럼 수염 기르고 길거리에서 바닥에 구르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예술가병에 걸려서 보헤미안 흉내를 내면서 대단한 사진을 찍겠다고 명소란 명소는 다 돌아다녔죠. 근데 부질없더라구요. 진짜 잘 찍는 작가는 심플해요. 그냥 벽 하나를 찍어도 멋있죠. 저도 요즘엔 쓸데없는 사진 안 찍고 재밌는 사진만 찍으려고 해요. 우연히 순간적으로 발견했지만 사진이니까 가능한 절묘한 풍경들이 있거든요. 그런 걸 프레임에 담고 싶어요.”

일상풍경 앵글에 담아 사진전도 열어

앨범 발매와 동시에 개최 중인 사진전 포스터. [사진 모스뮤직]

앨범 발매와 동시에 개최 중인 사진전 포스터. [사진 모스뮤직]

그는 웃는 낯이었지만 어딘지 지쳐보였는데, 잠을 많이 못잤다고 했다. 앨범 발매와 사진전, 첫 단독콘서트 준비에 팀 활동도 해야 하고, 각종 방송 출연에 광주MBC 음악프로그램 ‘난장’의 MC를 보느라 격주로 나주까지 오가야 하는 ‘빡센’ 스케줄 탓이다. “3년째 휴가 한번 못가고 소처럼 일하고 있거든요. 일이 많은 건 감사하지만, 머리가 쉬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집에 가면 잠도 안자고 멍때리곤 해요. 그 고요한 시간이 너무 좋은데, 잠들기 아깝잖아요.”

“딱 1주일만 산속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멤버들과 고기나 구워먹고 싶은 적도 있었다”면서도 무대에서 팬들만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살인 스케줄’의 와중에 팬들과 일대다 채팅을 하거나 팬들이 보내준 손편지를 빠짐없이 읽는 것도 의무감이 아니라 재밌고 즐거워서다. “힘들게 무대에 서도 팬들이 슬로건 들고 있는 걸 보면 바로 텐션이 올라가요. 다른 가수와 섞여있을 때 우리 팬이 응원봉 같은 걸로 티를 내면 기분이 확 좋아지죠. 손편지나 댓글도 저는 다 읽어요. 2년 가까이 집에만 계셨던 분이 우연히 제가 ‘일몬도’를 부르는 걸 보고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콘서트를 오시려고 옷을 챙겨입고 햇볕을 보셨다는 댓글을 읽고 정말 소름 돋았어요. 노래가 사람에게 이정도 영향을 끼치는구나 깨달았죠.”

첫 솔로앨범 내고 단독콘서트를 앞둔 가수 유채훈을 중앙일보s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첫 솔로앨범 내고 단독콘서트를 앞둔 가수 유채훈을 중앙일보s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했다. 최영재 기자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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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에 비로소 ‘대중가수’ 타이틀을 얻은 그는 해보고 싶은 음악이 많다. 최근 알앤비 가수 정엽과의 콜라보 공연에서 뜻밖에 발견한 소울 넘치는 모습처럼, 다른 뮤지션들과 어울리며 끊임없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에 잔잔한 발라드 앨범을 냈지만, 다음번엔 전혀 다른 컨셉의 앨범을 기대해야 하는 이유다.

“다음 앨범이야말로 야망이 가득할 것 같아요. 강렬한 음악을 하고 싶어서 벌써부터 구상하고 있죠. 제가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작년에 ‘보헤미안랩소디’ 공연 때 두 시간 넘게 퀸 노래만 실컷 부르니 너무 좋더군요. 프레디 머큐리 음역대가 저랑 딱 맞아서 힘들지 않거든요. 퀸 음악 자체가 오페라 요소도 있고 크로스오버적이니까 라포엠에서도 시도할 수 있죠. 팀 활동과 윈윈할 방법을 찾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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