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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 신흥국, Fed 긴축에 직격탄 ‘도미노 디폴트’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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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호 16면

개도국 줄도산 예고

신흥국에 드리운 경제 먹구름이 심상치 않다. 연일 치솟는 물가 압박과 부채 부담으로 신흥국의 도미노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다. 코로나19 팬데믹 후 조금씩 일상을 되찾는 분위기 속에서 신흥국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디고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사회가 혼란을 겪는 등 정치·사회적 변수가 신흥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경기 침체 분위기는 각국 시민들의 파업과 거리시위뿐만 아니라 정권 퇴출 운동 등을 야기하면서 신흥국의 정세 불안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경제 위기에서 촉발돼 반정부 시위를 겪고 있는 스리랑카의 정국은 여전히 혼돈 속이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군용기를 타고 해외 도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e메일을 통해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에게 사임계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거리 곳곳에서 일제히 환호하고 기뻐하는 분위기였다. 반정부 시위대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된 라닐 위크레메싱게 전 총리에게도 퇴진을 요구하며 총리 집무실 점거에 나섰다.

스리랑카 외에도 주변 신흥국의 경제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재정 긴축에 따른 충격은 코로나 대유행,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직면한 세 번째 충격에 해당한다”며 “신흥국의 약 30% 정도가 현재 빚더미에 앉거나 그에 가까운 상태”라고 말했다. 스리랑카 사태가 다른 신흥국에서도 재연될 가능성도 언급한 셈이다. 앞서 지난달 레베카 그린스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지난해 종료된 저소득국 채무상환유예제(DSSI)를 다시 시작해 신흥국의 부채 구조조정 메커니즘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며 주요 20개국(G20)과 신흥국 간의 채무 재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경고했다.

실제 올해 들어 다수의 신흥국이 IMF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지난달 IMF와 구제금융 지원을 재개하기 위한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셰바즈 샤리프 정부는 IMF 요구에 맞춰 연료 보조금 축소 정책과 약 20% 이상의 기름값 인상을 통해 재정 안정화에 나섰다. 앞서 3월 IMF는 코스타리카에 2차 구제금융으로 약 2억8400만 달러(약 3500억원)를 지급했고 뒤이어 레바논과는 30억 달러(약 3조8000억원)의 구제금융을 합의했다. 최근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 역시 IMF 구제금융을 바라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신흥국의 불안한 경제 상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1995년 멕시코 외환위기에서 촉발돼 남미 신흥국으로 퍼진 ‘데킬라 위기’가 있었다. 이 파고는 1997~1998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 시장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 중국 등 신흥국이 급부상하면서 과거처럼 집단적 도산 위기는 모면했지만 그리스, 폴란드 등 국지적 경제 불안은 계속됐다. 신흥국의 경제 체질 개선이 단기간에 어렵다는 측면에서 신흥국 위기가 주기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신흥국의 경보등이 단순히 경제 취약 구조에서 발생했던 과거 위기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빠른 긴축 행보 등 코로나19 팬데믹 후유증이 신흥국의 경제에 직격탄이 되면서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3차례 금리 인상을 하자 신흥국에 풀린 유동성이 이탈하는 ‘엑소더스’ 현상도 덩달아 가속되고 있다. 24개 신흥국의 주가 변동을 보여 주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는 이달 들어 900대로 주저앉았다. 2020년 코로나19 초기 이후 최저치다.

하지만 신흥국에선 금리 인상을 통한 방어전이 쉽지 않다. 과거부터 누적돼 온 대외 채무에 코로나19 팬데믹 때 저금리로 빌려 온 단기 대출 등 코로나 부채까지 더해지면서 빚덩어리가 급속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제금융센터 발표에 따르면 헝가리의 총외채는 GDP 대비 140%에 육박했고 이 중 1년 미만 단기 외채가 약 74%를 차지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신흥국 경제 불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면서 신흥국 민생 경제는 곳곳에서 요동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은 중남미 파나마의 시민 수천 명이 물가 폭등에 분노해 거리행진에 나서는 등 일주일 이상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인구 430만 명인 파나마는 최근 교통비가 16.1% 오르고 연료비는 1월 이후 47%나 급등했다. 이집트는 최근까지 밀 가격이 2월 초에 비해  60% 넘게 오르는 등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신흥국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한국 역시 신흥국 못지않게 대외 불안정성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증시 상황이나 물가 상승률에서 알 수 있다시피 신흥국을 위협하는 요소가 우리 경제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며 “가계 부채, 부동산 문제 등 국내 경제 리스크가 산재한 상황에서 대외 변수까지 악화될 경우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도 “스리랑카는 한국과 교역 비중도 작아 전염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면서도 “임계점에 다다른 신흥국에 코로나19가 트리거(방아쇠) 역할이 되었듯 한국 경제에도 금리 인상 등이 트리거로 작동해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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