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근대5종의 왕' 전웅태 "'나는 될 놈' 외쳤더니 세계랭킹 1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 근대5종 간판 전웅태. 세계랭킹 1위로 파리올림픽의 유력한 우승 후보다. 김현동 기자

한국 근대5종 간판 전웅태. 세계랭킹 1위로 파리올림픽의 유력한 우승 후보다. 김현동 기자

“근대5종은 무척이나 ‘서양스런’ 스포츠잖아요. 종목이 탄생한 배경도 그렇고, 올림픽 역사를 통틀어 봐도 서양 선수들이 금메달을 독식했고요. 그런데 근래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어요.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한국 따라하기’에 열을 올리거든요. K팝이나 K아트처럼 ‘K펜타슬론(pentathlon·근대5종의 영문 명칭)’의 시대가 온 것 같아 즐겁습니다.”

14일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난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27·광주광역시청)는 “컨디션도 경기 결과도 너무 좋다 보니 매일 15시간씩 운동에 매달리는 일정마저도 즐겁다”며 활짝 웃었다.

전웅태는 ‘근대5종은 서양스포츠의 정수(精髓)’라는 고정관념을 깬 주인공이다. 올 시즌 출전한 국제근대5종연맹(UIPM) 월드컵 3개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하며 이 종목의 최고수로 우뚝 섰다. 지난 5월 불가리아 알베나에서 열린 월드컵 3차에서 세계신기록(1537점)을 세웠고, 지난달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에서 1508점으로 또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근대5종 월드컵 파이널에서 우승한 뒤 포효하는 전웅태. [사진 대한근대5종연맹]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근대5종 월드컵 파이널에서 우승한 뒤 포효하는 전웅태. [사진 대한근대5종연맹]

지난해 도쿄올림픽 남자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근대5종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단계 더 올라선 셈이다. 도쿄에서 금메달을 가져 간 라이벌 조셉 청(영국)을 제치고 세계랭킹 1위를 되찾은 것 또한 의미 있는 결과다.

전웅태는 “랭킹으로 모든 것을 말하긴 어렵지만, ‘1’이라는 숫자가 갖는 상징성은 적지 않다”면서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데, 금메달도 세계랭킹 1위도 한 번 경험해보니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며 활짝 웃었다.

권총을 조준하는 전웅태. 근대5종은 수영, 승마, 펜싱, 레이저런(육상+사격)을 모두 소화한다. 김현동 기자

권총을 조준하는 전웅태. 근대5종은 수영, 승마, 펜싱, 레이저런(육상+사격)을 모두 소화한다. 김현동 기자

근대5종은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 고안해 만든 종목이다. 나폴레옹 시절 전쟁 중 군령을 전하기 위해 적진을 돌파한 프랑스 기마장교의 영웅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펜싱, 수영, 승마, 사격, 육상의 다섯 종목으로 기량을 겨루는데, 지난 2009년부터는 사격과 육상을 묶어 ‘레이저 런(laser run)’이라는 복합 방식을 도입했다. 가까운 적은 칼로(펜싱), 먼 곳의 적은 총으로(사격) 제압하고, 강을 건너고(수영), 들판을 달리고(육상), 적의 말을 빼앗아 타기도 하며(승마) 임무를 완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웅태는 수영선수로 출발했다가 서울체중 재학 중 ‘여러 종목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에 매력을 느껴 근대5종 선수가 됐다. 이후 육상을 시작으로 사격, 펜싱, 승마까지 종목군을 차츰 넓히며 성장했다. 체력 종목(수영, 육상)은 일찌감치 톱 클래스였지만 펜싱, 승마 등 뒤늦게 접한 기술 종목이 걸림돌이었다. 전웅태는 “최대 약점으로 지적 받은 펜싱 역량을 강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틈 날 때마다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펜싱부가 있는 대학교를 찾아가 기술 지도를 받았다”고 했다.

근대5종 승마는 추첨을 통해 말을 배정 받기 때문에 말과의 교감이 매우 중요하다. 김현동 기자

근대5종 승마는 추첨을 통해 말을 배정 받기 때문에 말과의 교감이 매우 중요하다. 김현동 기자

대한근대5종연맹의 판단과 지원도 큰 힘이 됐다. 레이저 런 도입 흐름을 감지하고 일찌감치 국내대회 규정을 고쳐 한국 선수들이 레이저 런을 미리 경험하도록 배려한 게 국제 경쟁력을 대폭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국군체육부대, LH 등과 손잡고 문경 국군체육부대 부지 내에 세계적 수준의 근대5종 훈련장을 지어 훈련 환경을 대폭 개선했다. 이후 전웅태를 비롯해 선배 정진화(LH), 후배 서창완(전남도총) 등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이 줄줄이 탄생했다.

근래 들어 한국은 근대5종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신흥 강국이 됐다. 전웅태는 “예전엔 국제대회에 나가보면 같은 국적 선수들끼리도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면서 “동료들끼리 서로 응원하는 ‘원 팀’ 문화를 앞세운 한국 선수단이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이어 “여러 나라 선수단이 ‘한국을 방문할 테니 합동 훈련을 하자’고 제의한다. 훈련 방법 뿐만 아니라 ‘코리아 원 팀’의 분위기도 배워가려는 것”이라 덧붙였다.

총과 칼을 함께 들고 포즈를 취한 전웅태. 김현동 기자

총과 칼을 함께 들고 포즈를 취한 전웅태. 김현동 기자

근대5종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준비 중이다. 종목의 유래 때문에 승마 종목을 치를 때 국제대회에 자신의 말을 대동하는 대신 경기 직전 추첨을 통해 배정한 말을 활용하는데, 이 때문에 말과 교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낭패를 보는 선수가 종종 나온다. 이러한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해 UIPM은 2024년 파리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승마를 근대5종 종목군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대체 종목으로는 장애물 경기를 1순위로 놓고 검토 중이다.

전웅태는 “2024년 파리올림픽은 근대5종 종주국인 프랑스에서 열릴 뿐만 아니라 승마를 포함한 ‘오리지널 근대5종’으로 치르는 마지막 올림픽이어서 특별하다”면서 “이 무대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면 더 멋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승마가 없어진 이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터키 앙카라 월드컵에서 나란히 1,2위에 오른 전웅태(왼쪽)와 서창완. [사진 근대5종연맹]

지난달 터키 앙카라 월드컵에서 나란히 1,2위에 오른 전웅태(왼쪽)와 서창완. [사진 근대5종연맹]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게 전웅태의 신념이다. 올림픽 등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각종 인터뷰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 나는 ‘될 놈’이다”라고 거듭 말하는 건 대중과의 약속이자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그는 “격투기 선수 코너 맥그리거가 강자 조제 알도와 맞대결을 앞두고 ‘어퍼컷으로 쓰러뜨리겠다’고 공언한 뒤 그에 맞게 훈련을 하고, 실제로 어퍼컷으로 승리한 영상을 봤다”면서 “경기 후 맥그리거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나는 말하는 걸 지키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에서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웅태의 당면 과제는 오는 24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다. ‘전웅태 시대’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또 하나의 금메달이 필요하다. 18일 출국을 앞둔 그는 “매일 새벽 5시45분부터 밤 9시까지 다섯 종목을 고르게 훈련하는 일상을 지속하는 게 결코 쉽지 않지만, 근대5종에 부는 ‘한류 바람’을 이어가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면서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위해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웅태는 승마를 포함해 마지막으로 열리는 파리올림픽 금메달을 약속했다. 김현동 기자

전웅태는 승마를 포함해 마지막으로 열리는 파리올림픽 금메달을 약속했다. 김현동 기자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