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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화 하지 말라"…교사에 폭력 휘두른 초등생이 받은 편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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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는 너를 믿어. 응원할게”

교사와 동급생에게 폭력을 휘두른 전북 익산의 초등학생 A군이 입소한 병원에 지난 1일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A군의 담임이었던 김학희 교사와 지역의 동료 교사들이 함께 쓴 편지였다. 김 교사는 "A군이 가진 학교와 어른에 대한 불신을 녹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교실 이미지 [연합뉴스]

교실 이미지 [연합뉴스]

A군은 학교폭력으로 강제 전학을 당했지만 새 학교에서도 같은 반 학생을 폭행하고 교사에게 욕설을 했다. 강제 전학과 등교 중지와 같은 처벌만으로는 A군의 반복되는 폭력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이번에는 병원에서 운영하는 위(Wee)센터에 입소해 치료를 받게 됐다.

김 교사를 비롯해 A군에게 편지를 쓴 교사들은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만이 답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A군에게 '때리지도 못할 거면서 X랄이야'란 욕설을 들었던 당사자인 김 교사는 기자에게 "A군을 악마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매년 늘어나는 '강제 전학'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근 강제 전학 조치는 점점 느는 추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폭력 가해 학생 중 전학 조치를 받은 경우는 2017년 1951건에서 2019년 2127건으로 늘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로 등교일이 줄면서 학교폭력도 줄었지만 올해부터는 등교일이 늘어나면서 학교폭력과 전학 조치도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학생과 부모 동의 없이 전학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전학은 학교폭력 처분 중 퇴학 다음으로 센 징계다. 의무교육 대상인 초·중학생에게는 퇴학 조치를 할 수 없어 사실상 강제 전학이 마지막 선택지다. 강제 전학이라고 해서 전학만 시키는 건 아니다. 가해 학생은 시도마다 있는 특별교육기관에서 특별 교육을 이수 받는다. 주로 위센터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외부 기관 전문기관과 연계한 심리 치료 등이 이뤄진다.

가해 학생 중 상당수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거나 아동학대 피해 경험이 있다. 유상범 교육부 학교생활문화과장은 “위센터에서 가정폭력 사실이 알려지면 신고를 한다. 지자체, 여성가족부와 공유하는 원스톱 지원 시스템이 마련돼있다”며 “아동학대, 소외계층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통합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 프로그램 부족…피해자와 같이 교육하기도

하지만 가해 학생을 위한 심리지원 센터는 여전히 부족하다. 피해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은 많지만, 가해 학생 위한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적어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같은 공간에서 치료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전북교사노조는 익산 초등학생 사건이 알려지자 성명을 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육과 전문적인 치료를 통해 가해 학생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라며 “학교의 존재 이유는 학생에 대한 신상필벌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A군도 지역의 병원형 위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원광대 위센터 센터장인 양찬모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군이 적응을 잘하고 있다. 치료 해볼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위센터에 오는 친구들은 우울감이나 불안감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폭력 가해 이전에 피해가 있던 경험이 많다”고 말했다.

“강제전학은 돌려막기…장기적인 치료 필요해”

부산 해운대경찰서가 부산 벡스코에 학교폭력 예방 의지를 담은 래핑 계단을 조성해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 해운대경찰서가 부산 벡스코에 학교폭력 예방 의지를 담은 래핑 계단을 조성해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전문가들은 학생이 가해 학생이 되기 전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양 교수는 “조기에 문제점을 확인하고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은 이런 정보를 조기에 발견할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단기적인 치료를 넘어서 가해 학생이 학교로 돌아가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학교폭력 전문교사인 박정현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강제전학은 결국 ‘돌려막기’에 불과하다. 단순 분리로는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학교가 아닌 전문 기관에서 원인을 찾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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