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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험대 선 사형제…"야만적 복수" vs "죄와 형벌 비례해야" [法ON]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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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서남부 등에서 여성 10명을 연쇄 살인한 강호순.
#.여성과 노인 20명을 살해한 유영철.
#.두 차례에 걸쳐 여행에 온 피해자들을 배에 태워 잔혹하게 살해한 오모씨.
#.부유한 환경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신을 꾸짖는다며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후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한 박모씨.

1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니터에는 사형 확정자들의 이름들이 등장했습니다. 사형제가 위헌인지 심리하는 공개변론에서입니다. 이 이름들을 화면에 띄운 법무부 측 대리인은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으로는 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격리하기 어려워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국가가 한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 범죄자 한 사람에게 사회가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논쟁이 법정을 오갔는데요. [法ON]에서 정리해봤습니다.

연쇄 살인범 강호순이 2009년 1월 경기 화성 매송면 한 농로에서 납치한 여대생을 살해하는 장면을 현장검증하는 모습. 중앙포토

연쇄 살인범 강호순이 2009년 1월 경기 화성 매송면 한 농로에서 납치한 여대생을 살해하는 장면을 현장검증하는 모습. 중앙포토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복역 중인 윤모씨는 지난 2018년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윤씨는 존속살해죄에서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형법 조항, 형의 종류 중 하나로 사형을 규정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윤씨 측은 만약 이번 사건에서 사형제가 위헌으로 결정된다면, 재심 청구를 통해 형이 바뀔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법정 최고형이 사형인 존속살해죄에서 사형보다 낮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법정 최고형이 무기징역으로 바뀌면 자신의 형량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겁니다.

"국가가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하는가"

윤씨 측은 “국가가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나”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제한된다"고는 하지만,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해뒀거든요. 그런데 사형은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라, 결국 생명권의 본질을 침해한다는 겁니다.

윤씨 측 참고인으로 나온 허완중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생명권은 전체가 다 본질이 되는 특별한 기본권"이라며 "여론과 법감정만으로는 사형제를 정당화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범죄자를 종신형으로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충분히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격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해 관계인인 법무부 측 입장은 다릅니다. "생명권도 필요에 따라 국가가 불가피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낙태와 전쟁을 예로 들죠.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비교하지 않았냐는 건데요. 전쟁이 나서 군인들을 보내는 상황 역시 누군가의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나온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씨 측 주장은) 유토피아를 전제하는 것 같다"고 잘라 말합니다. 복잡한 현실에서는 생명권도 다른 기본권처럼 일부 억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겁니다. 또 사형 반대 측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결국 누군가의 신체의 자유를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라, '기본권 본질 침해' 측면에서는 사형과 큰 차이가 없지 않으냐고 되물었습니다. 결국 "기본권 본질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 따라, 범죄자들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하지도 못해 사회에 돌아오게 할 거라고도 했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오른쪽)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오른쪽)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수인가, 정의인가"

양측은 사형제가 가진 공익적 목적에 대해서도 대립합니다. 윤씨 측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범죄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야만적인 복수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사형제로 범죄자들을 교화시킬 수도 없고, 다른 시민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억제하는 기능이 있는지도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죠.

반면 법무부 측은 "죄의 경중과 형벌의 경중은 비례해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우리 헌법이 사형을 간접적으로라도 인정하고 있고, 입법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하지 않는 이상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은 최고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남아있는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공익적인 목적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에 윤씨 측은 우리 헌법이 사형제를 인정한다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고요. 사형제를 입법적으로 폐지하는 안에 국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헌재만이 사형제에 대해 위헌 선언을 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헌법재판소 사형제도 공개변론에 대한 종교·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헌법재판소 사형제도 공개변론에 대한 종교·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사연 없는 범죄자는 없다"

윤씨 측은 범죄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울 수 있느냐는 질문도 남깁니다. 극악무도한 범죄자일지라도 이면을 들춰보자는 겁니다. 부정적인 환경 등 사회와 국가가 나눠서 져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법무부 측은 그런 요소들은 지금도 충분히 법원에서 고려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1년에 벌어지는 살인이 800건 내외인데, 사형이 확정되는 건 2건 내외라는 통계도 내밀었습니다. 지금 제도에서도 범죄자가 겪은 각종 사회적 환경과 엄벌의 필요성은 종합적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거죠.

"사형제 없어지는 세상은?"

헌재 재판관들은 공개 변론에 참석한 관계자들에게 만약 사형제가 없어졌을 때 불어닥칠 상황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한다면 윤씨가 기소된 존속살해죄에 대해서만 사형 부분이 없어지는 건지,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100여개의 형법 조항에는 적용되지 않는 건지, 현재 복역 중인 사형확정자들에게는 어떤 공백이 생길 수 있는지 등의 질문입니다. 이에 헌재가 직권으로 100여개 조항에 대해 한꺼번에 위헌 결정을 해야 한다는 답변, 단순 위헌보다는 헌법불합치를 선고해 국회가 대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답변 등이 나왔습니다.

헌재는 공개변론에서 들은 의견을 종합해 심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사형제가 헌재 심판대에 선 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1996년도에는 재판관 7:2, 2010년도에는 재판관 5: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나왔는데요. 2022년도의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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