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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언제 청년정치 했나"…이준석·박지현 이유있는 자멸

중앙일보

입력

이준석(왼쪽)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 비대위원장이 지난 5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된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준석(왼쪽)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 비대위원장이 지난 5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된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국 정당사를 연령에 초점 맞춰 정리한다면 지난해와 올해에 이정표를 각각 꽂을 수 있을 것이다. 역대 최연소의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과 역대 최연소의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으로 발탁된 박지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당 징계로, 박지현 전 위원장은 당권 도전 갈등으로 백척간두에 서게 됐다.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의 현 상황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관점 중 하나는 ‘청년 정치의 위기’라는 시각이다. 둘은 각각 37세, 26세로 양당의 대표적인 20·30세대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준석·박지현 위기는 청년 정치 위기? 

하지만 실제 청년 정치를 해왔던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14일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이 언제 청년 정치를 한 적이 있나? 그들이 한 건 지도부 정치 아니었나”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대학 졸업 뒤 당에서 청년 활동을 해왔다.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이 나이로는 청년이긴 하지만 청년 정치를 대표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게 장 의원 설명이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청년위원장을 맡았을 때 모습. 장 위원장은 2019년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했다. 뉴스1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청년위원장을 맡았을 때 모습. 장 위원장은 2019년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했다. 뉴스1

그는 “특히 박 전 위원장은 청년 당원의 지지를 받아 비대위원장이 된 것도 아니었고, 입당하자마자 비대위원장이 돼서 청년 정치를 할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1월 이재명 후보 캠프에 참여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디지털 성 착취 사건인 ‘n번방’을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으로 활동한 경력이 바탕이 됐다. 그리고 2개월 만에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민주당에서 청년 정책 활동 등을 한 관계자는 이런 청년 발탁 방식과 관련해 “박 전 위원장의 위기는 청년 정치의 ‘위기’가 아니라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박 전 위원장처럼 깜짝 발탁되는 것을 보면 허탈하다. ‘어느 줄에 서야 하나’, ‘당 밖에서 있어야 성공하는 건가’ 고민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아무런 검증 없이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 청년을 갑자기 뽑다보니, 선거가 끝나면 외면하는 문제도 불가피한 것 아니냐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박 전 위원장은 청년 정치인이 아니라 ‘픽업(picked-up) 정치인’이 더 맞는 표현 아닌가”라며 “우리는 기성 정치인의 선택을 받는 걸 ‘동아줄 타고 올라간다’고 표현한다. 선택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 청년끼리 연대하기보다는 경쟁하게 되고, 윗사람에겐 더 순종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준석님이 무등산 서석대에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서석대에서 촬영한 사진을 게시했다. [페이스북 캡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준석님이 무등산 서석대에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서석대에서 촬영한 사진을 게시했다. [페이스북 캡처]

물론 이 대표의 정치 행보는 박 전 위원장과는 달랐다. 이 대표도 2011년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비대위원 발탁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10년간 자신만의 정치 영역을 구축했고, 결국 자력으로 당 대표에 선출됐다. 당시 “대표로 선출되며 ‘박근혜 키즈’, ‘발탁’과 같은 꼬리표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준석·박지현, 자멸하며 위기 만들어”

그러나 현재 위기를 맞은 방식은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이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기성 정치권과의 불화가 그 이유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전날 라디오에서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을 언급하며 “선거 때 20·30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젊은이들 잔뜩 갖다 썼는데, 지금은 다 찬밥인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힘 내에선 “이 대표가 팽 당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반면 정치권 안팎에선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이 자초한 위기라는 평가가 많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 대표는 자기중심의 정치, 정치 공학만 따지는 정치 때문에 자멸했고, 박 전 위원장은 같은 사안에도 오락가락하는 ‘내로남불’ 발언과 자신만 대표 출마에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억지 때문에 자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과 점심 회동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과 점심 회동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또래 정치인에게도 비판받고 있다. 신지예 전 국민의힘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대표 징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제 ‘성 상납에 연루되거나 의혹이 제기된 정치인은 봐주지 않는다’는 하나의 선례를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에 대해선 “청년이라는 이유로 당규의 예외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여성 정치의 위기가 아니듯, 이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의 위기는 청년 정치의 위기가 아니라 그들이 자초한 둘의 위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 정치가 한국 정치권의 중요한 방향이라는 명제는 흔들린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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