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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대척점에 선 ‘탑건:매버릭’과 ‘러브,데스+로봇’의 공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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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영화의 미래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국내 500만 관객 고지를 막 넘어선 영화 ‘탑건: 매버릭’에는 ‘뮤지엄 피스(museum piece)’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말 그대로 ‘박물관 소장품’인데,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지닌다. 박물관에 모실 만한 귀하고 역사적인 것, 그리고 박물관으로나 갈 구시대의 퇴물.

일상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많이 쓰이고 영화에서도 1차적으로는 그렇다. 작전 중에 적국에 불시착한 주인공 매버릭(톰 크루즈)이 구형 F-14 전투기를 탈취해 복귀하려고 하자 젊은 후배 루스터(마일스 텔러)가 “저 뮤지엄 피스를?”하며 경악한다. 실제로 촬영에 쓰인 F-14가 미국 샌디에이고 항공우주 박물관 소장품이라는 사실을 알면 한층 재미있는 장면인데, 비행은 불가능해서 공중전 장면은 신형 전투기를 대체 사용했다고 한다. 여하튼 영화에서는 이 뮤지엄 피스가 적국의 첨단 5세대 전투기들을 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고물이란 의미의 뮤지엄 피스가 역사적 유산이라는 의미의 뮤지엄 피스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CGI 최소화한 극장용 영화 ‘탑건’
100% CGI인 OTT 애니 ‘히바로’
상반된 둘의 공존이 영상물 미래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사진 파라마운트 픽처스]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사진 파라마운트 픽처스]

기계의 한계를 초월해 이런 기적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조종사 즉 인간이라고, 아무리 드론의 시대가 와도 아직은 파일럿이 중요하다고, 극중에서 매버릭은 말한다. 매버릭 자신이, 그리고 그를 연기한 톰 크루즈 자체가, 바로 그렇게 중의적 의미의 뮤지엄 피스로의 길을 걷는다. 이 영화가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포인트 중 하나일 것이다.

‘탑건: 매버릭’은 거대한 노스탤지어의 영화다. ‘탑건’ 1편(1986)에 향수를 품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1편을 모르거나 ‘냉전시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라고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속편 ‘매버릭’에는 열광한다. 해외 리뷰 사이트 IMDb와 로튼토마토 평점도 1편보다 속편이 훨씬 높은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CGI(computer-generated imagery: 컴퓨터로 창출한 디지털 이미지)로 점철된 영화들과 가상 인간 인플루엔서들의 시대에, ‘탑건: 매버릭’은 물질적 현존성을 지닌 기계의 미학과 인간 배우의 매력으로 강렬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되도록 실사로 촬영했고 배우들이 몇 달간 혹독한 훈련을 받은 후 실제 파일럿들이 조종하는 전투기 뒷좌석에 탑승해 중력가속도를 견뎌내며 연기했다. 묵직한 물질성을 지니면서 미끈한 형태를 갖춘 전투기들이 폭발적인 속도로 곡예하듯 나는 장면을 보면, 왜 20세기 초 미래주의 예술가들이 “속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자동차가 니케 여신상보다 아름답다”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속도와 힘의 미학에 매료된 나머지 전쟁 찬양과 파시즘 옹호로 빠졌던 반면, 이 영화는 전투기가 중심이 되는데도 그것을 영리하게 피해 나간다.

영화·영상미학 전문가인 정혜진 경희대 교수는 ‘탑건: 매버릭’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군국주의·국가주의 등의 이념을 떠나서 나이 지긋한 남자가 인생의 후회를 만회하며 젊은 세대에 횃불을 넘겨주는 스토리가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냈다. 할리우드 클리셰(cliche: 상투적 요소)가 가득하지만 그것을 우스꽝스럽지 않고 당당하게 보여준 것이 노스탤지어를 자극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이미지를 최대한 살린 것도 역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탑건: 매버릭’의 이러한 미덕 때문에 기자는 영화를 본 후 한동안 아날로그의 향수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얼마 후 100% CGI로 이루어진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같은 강도의 충격을 받았다. 넷플릭스가 지난 5월 말에 내놓은 오리지널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러브, 데스+로봇’ 3시즌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인 ‘히바로’를 보고서 말이다.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스페인 감독·애니메이터 알베르토 미엘고의 작품이다.

넷플릭스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러브,데스+로봇’중 ‘히바로’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러브,데스+로봇’중 ‘히바로’의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실사를 섞은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국내외 인터넷 여기저기에 올라올 정도로 이 단편 애니는 숲과 호수의 질감 및 빛의 움직임이 사실적이고, 인물들의 동작과 표정이 자연스럽다. 한편 이야기와 캐릭터 자체가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실사에 근접한 가상인물에게서 느껴지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가 느껴지지 않는다.

호수의 정령이 추는 춤과 그녀에게 홀린 기사들이 춤추며 물로 뛰어드는 동작이 실제 현대무용 공연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실감나는데, 놀랍게도 모션 캡처 기법(motion capture: 움직임을 몸에 부착한 센서 등을 이용해 디지털 형태로 생성하는 방법)조차 사용하지 않았으며, 다만 현대무용가들의 움직임을 다각도에서 촬영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구현했다고 한다. 한편, 캐릭터 디자인에는 게임계에서 유명한 한국의 3D 캐릭터 모델러 양승남이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

‘탑건: 매버릭’과 ‘히바로’는 대척점에 선 영화들이 공존하며 감동을 줄 수 있는 현대의 복합적인 영화 환경을 대변한다. 아날로그와 극장은 퇴물이 된 줄 알았던 시대에 그 두 가지의 미학을 극대화한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편, 예전에는 구현하기도 어려웠고 미술관이나 영화제가 아니면 상영할 곳을 찾기도 어려웠을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100% CGI 애니메이션이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많은 팬들을 모으고 있다. 정 교수는 “이러한 공존은 계속될 것이며, 다만 소수의 대작 할리우드 영화와 인디 영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실사영화들이 로케이션 대체 등 비용 절감을 위해 점점 더 CGI를 일상적으로 사용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탑건: 매버릭’은 말할 것도 없고 100% CGI 애니인 ‘히바로’조차 인간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미엘고 감독은 ‘히바로’를 위해 현대무용가들과 특별히 협업했으며 안무가 사라 실킨스의 안무와 무용가들의 연기를 바탕으로 애니 캐릭터들의 표정과 몸짓을 구현했기에 대사 한 마디 없이 감정과 상황을 전달하는 작품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가상인간과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리라는 염려가 있지만 매버릭의 대사처럼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인 것이다.

역사적·개인적 해석 모두 가능한 ‘히바로’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데스+로봇’의 단편 애니메이션 ‘히바로’의 한 장면 [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데스+로봇’의 단편 애니메이션 ‘히바로’의 한 장면 [넷플릭스]

‘히바로’의 내용은 이렇다. (※스포일러 있음) 미지의 숲을 지나던 기사단이 호수의 황금 정령(편의상 그리스 신화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을 홀리는 ‘세이렌’으로 부르겠다)과 맞닥뜨리는데, 세이렌은 기묘한 소리로 사람들을 홀려 광란해서 물로 뛰어들게 한다. 결국 기사단은 전멸하고 청각장애 기사만 홀로 살아남는다. 처음으로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기사에게 흥미를 느낀 세이렌은 그를 몰래 쫓아다니다 애정(?)을 표시한다. 기사도 세이렌에게 끌리는데, 그녀 자체보다 그녀를 뒤덮은 보석과 황금에 눈이 돌아간 듯하다.

기사단의 모습이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 스페인어로 ‘정복자’라는 뜻으로 15~16세기에 중남미에 침입한 스페인 기사들을 가리킨다) 스타일인 데다가, 주인공 기사가 황금에 집착해서 세이렌을 해치고 그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이 작품의 주제가 황금에 대한 탐욕으로 중남미의 원주민과 대자연을 짓밟은 유럽 제국 비판이라는 해석도 많다. 감독 미엘고는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이런 해석이 나올 걸 어느 정도 예측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경 시공간을 모호하게 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숲은 전나무와 낙엽수가 많아서 중남미 열대 밀림으로 보기 어렵고, 기사의 인종도 모호하며, 세이렌의 경우 얼굴은 동아시아인에 가깝고, 의상은 유럽·인도·북아프리카 스타일의 혼합이다. 유럽 전설의 헐벗은 미녀 모습 대신 고대 우상과 로봇이 섞인 듯한 세이렌의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고, 공포스러우면서도 때때로 사랑스럽다. 반면에 기사는 시종일관 호감 가지 않는 불길한 모습인데, 특히 황금을 보며 눈을 번뜩일 때는 세이렌보다 훨씬 더 괴물 같다. 그런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감독이 일부러 그에게 콩키스타도르의 갑옷을 입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애니는 세이렌이 기사에게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며 물론 그 반대도 아니다. 감독의 말대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유독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세이렌이 기사에게 보이는 애정은 순수하고 잔인한 어린아이가 흥미로운 존재에게 보이는 소유욕의 차원이다. 그녀는 기사가 피를 흘리며 괴로워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카로운 이와 스팽글(!) 입술로 키스한다. 한편 기사에게 세이렌은 철저히 도구에 불과하다. 세이렌을 뒤덮은 황금과 보석은 비늘과 같아서 억지로 뜯어내면 피가 나는데, 기사는 탐욕에 미친 눈으로 그것들을 마구 뜯어낸다. 이 장면은 감독이 선정적으로 잔인한 장면이 되지 않도록 애쓴 흔적이 역력한데도, 그 비정함에 차마 보기 괴로울 정도다.

세이렌의 사랑은 순진하게 잔인하지만 기사에 의해 한층 더 잔인하게 박살난다. 한편 기사는 그녀의 피가 섞인 강물로 귀가 트인 후 오로지 황금의 번쩍거림에 눈을 빼앗기던 것에서 벗어나서 비로소 주변의 온갖 소리를 듣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난생 처음 밀려오는 소리의 홍수는 공포 그 자체다. 게다가 황폐해진 몸으로 죽다 살아난 세이렌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듣게 되면서 그는 이제 그 소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 파멸한다. 이 결말과 그에 이르는 과정이 무척 참담하면서도 아름다워서, 충격을 받았다는 감상자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