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보실 “귀순 묻지말고 현장서 퇴거·송환” 해군·해경에 지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2019년 6월 15일 북한 주민 4명이 목선을 탄 채 강원도 삼척항에 자력으로 입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귀순한 북한 주민들이 목선에 탄 채 주변을 살피고 있다. [뉴시스]

2019년 6월 15일 북한 주민 4명이 목선을 탄 채 강원도 삼척항에 자력으로 입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귀순한 북한 주민들이 목선에 탄 채 주변을 살피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탈북민 강제 북송’ 직전, 월남한 북한 선박과 주민에 대한 대응 지침을 만들어 관련 사안을 직접 통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당 지침에는 해군·해경 등이 초동 단계에서 귀순 의사 확인 절차 등을 ‘자제하라’는 내용을 담아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14일 국민의힘 한기호(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TF 위원장) 의원에 따르면 문 정부의 국가안보실은 ‘북한 선박·인원이 관할 수역 내 발견 시 대응 매뉴얼’이란 지침을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이 발생하기 두 달여 전인 2019년 9월 제정했다. 이전엔 북한 선박과 주민이 남측으로 오면 국가정보원이 주관했는데, 안보실이 직접 관리하는 걸로 바꿨다. 당시는 삼척항 목선 입항(2019년 6월),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선박 나포(2019년 7월) 등이 잇따라 발생하던 때였다. 청와대는 이 지침을 엄격하게 적용해 “안보실 지시를 어기고 북한 선박을 나포했다”며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군 작전 최고책임자인 박한기 당시 합참의장을 조사했다.

해당 지침의 전문은 문 정부가 물러나면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최장 15년간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한 의원실에서 입수한 일부 지침 내용에는 당시 청와대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우선 ‘상황 처리 담당기관(해군·해경·해양수산부)은 북한 선박이 단순 진입으로 확인 시 현장에서 퇴거 또는 현지 송환하라’고 명시해 수상한 선박과 인원을 발견해도 일단 북으로 돌려보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탈북한 북한 어민들, 어떻게 북으로 강제 송환됐나 그래픽 이미지.

탈북한 북한 어민들, 어떻게 북으로 강제 송환됐나 그래픽 이미지.

관련기사

안보실은 지침을 통해 ‘현장 정보를 바탕으로 합동조사 필요성이 인정되거나 북한인의 자행, 기상 악화 등으로 근접 검색이 곤란할 경우 주관 기관(안보실)에 보고하고 국정원과 협의해 조치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정부 소식통은 “국정원을 제쳐놓고 안보실이 직접 보고받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려 한 정황”이라고 풀이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안보실 지침은 해군·해경의 초동 조치와 관련해 ‘기타 불필요한 내용은 확인을 자제한다’고도 명시했다. 한 의원은 “귀순 의사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안보실로 넘기면 알아서 하겠다는 얘기”라며 “이 매뉴얼을 보면 탈북민 강제 북송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현재 용산 대통령실에는 강제 북송과 관련한 안보실 자료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탈북 어민 북송 당시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었다”고 했던 문 정부의 판단 기준을 두고도 문제가 제기된다. 그들은 자필로 귀순의향서를 작성했다. 이날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TF 위원인 태영호 의원실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문 정부 당시인 2020년 9월 통일부는 귀순 의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귀순의향서’를 꼽았다. 당시 태 의원실이 ‘북한 주민 송환 시 귀순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묻자 통일부는 “월선 북한 주민의 인도적 송환 시 합동정보 조사 과정에서 북한 주민이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작성하는 확인서를 기준으로 귀순 의사를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