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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표면적 이유는 "언론 독립"…과방위 쟁탈전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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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하반기 국회 구성을 위한 여야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지난 5월 29일 전반기 국회가 종료된 이후 14일로 46일째 협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과 행정안전위원장 자리를 제외하곤 대부분 의견 접근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4일 국회의장실에서 비공개 원 구성 협상을 마친 뒤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김상선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4일 국회의장실에서 비공개 원 구성 협상을 마친 뒤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진표 국회의장을 여야 합의로 선출하기로 합의한 지난 4일 이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7개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18개 위원회의 위원장과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을 위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 중 사법개혁특위는 수사사법체계개혁특위로 이름을 바꾸고, 여야가 6명씩 동수로 참여하되 위원장은 민주당이 맡는 형태로 상당 부분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고 권 원내대표가 전했다.

하지만 과방위와 행안위를 누가 맡을지를 놓고는 계속해 평행선을 긋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과방위와 행안위) 둘 중의 하나의 선택권을 민주당에게 줬다”며 두 상임위를 나눠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박 원내대표는 “과방위와 행안위 모두 민주당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과방위와 행안위가 각각 방송통신위원회와 경찰의 소관 상임위인 만큼 윤석열 정부 견제를 위해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관례적으로 여당이 맡던 과방위를 민주당이 맡겠다고 나서는 걸 “억지”라고 보고 있다.

이런 지난한 협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14일엔 과방위 문제를 놓고 여야가 감정적으로 충돌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 KBS 라디오에 출연해 KBS·MBC를 언급하며 “민주노총 산하 언론 노조가 좌지우지하는 방송을 우리가 어떻게 장악하겠냐”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진행자가 “민주당은 여당이 방송을 장악하려고 해서 (민주당이) 과방위를 맡아야 한다는 입장 같다”고 하자 나온 말이었다. 권 원내대표는 그런 뒤 “(공영방송) 사장 임명권이 대통령한테 있지만 사장을 임명했다고 해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사장 말 듣겠느냐”는 말도 했다.

해당 발언이 알려진 뒤 국회에선 KBS·MBC 기자의 항의가 이어졌고,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전반기 과방위 민주당 간사였던 조승래 의원은 “윤석열 정권의 비뚤어진 언론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발언”이라며 “윤석열 정권이 검찰·경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장악한 데 이어 방송사까지 점령하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이수진 원내대변인도 “공영방송이 특정 집단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반드시 방송 장악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추진하는 ‘경찰국’ 신설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의 행안위 요구는 예상된 일이었다. 하지만 협상 막판에 과방위를 강하게 요구하는 데 대해선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야는 표면적으론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에서 언론과 정치 권력 유착의 한가운데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같은 친민주당 성향의 언론 단체와 인사들이 있었다”며 “민주당 정권의 방송통신위원회는 소위 ‘팩트체크’를 빙자해 국민의 혈세로 정부의 홍위병을 만드려는 시도를 자행했다”고 적었다. 이어 “국민의힘은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 언론 독립의 길에 앞장서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여당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입법부 본연의 책무를 망각하고 정부의 권력 사유화에 동조하며 대통령실 국회 분소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며 “민주당은 국민의 기본권과 언론 장악 시도를 결단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과방위 문제의 핵심은 정권 교체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임기 보장과 KBS·MBC 경영진 교체 문제에 대한 여야의 입장 차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방위의 피감기관은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KBS,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등이다.

내년 7월까지 임기가 남은 한상혁 위원장에 대해 여권은 최근 “(정권이 바뀌었는데) 그 자리에 앉은 것 자체가 후안무치하고 자리 욕심만 내는 것으로 비칠 뿐”(권 원내대표)이라며 공개적으로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17일 한 위원장에 대해 “굳이 올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배석시켜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싶다”고 했다. 그런데도 한 위원장이 “성실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겠다”며 중도 사퇴를 거부하자 여권은 난감한 상황이다. 방송법상 KBS와 MBC 사장은 각각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의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이사 중 상당수 역시 임기를 고수할 태세여서 실제 경영진 교체가 여권이 원하는 방향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방송 정책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방송법이 엄격하게 돼 있어 대통령실이나 정부가 나서 방통위원장 문제나 공영방송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건 한계가 많다”며 “여당이 과방위를 맡아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전략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야당은 반대로 과방위 사수를 강조하고 있다. 전반기 국회 때 과방위원이었던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입장에선 과방위가 한상혁 위원장을 내쫓고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돌격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며 “그래서 과방위를 넘기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언론단체와 공영방송 노조 측이 '민주당이 과방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여론을 전달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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