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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성공 아닌 ‘무모한 꿈’을 꿔라…대학은 창업 실패의 실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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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호암상 공학상을 수상한 차상균 서울대 교수가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혁신창업을 주제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삼성호암상 공학상을 수상한 차상균 서울대 교수가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혁신창업을 주제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차상균(64)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은 국내 대학교수나 연구원 출신으로 창업한 이들 사이에서 ‘원조’로 불린다. 1992년 서울대 교수가 됐고, 한·일월드컵의 함성이 전국을 진동하던 2002년 제자 12명과 함께 ‘TIM’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데이터를 외장 디스크 등에 저장하는 기존의 데이터베이스(DB) 관리와 달리 대용량 DB를 메모리에 분산, 압축 저장해 실시간으로 분석이 가능한 기술 아이템이었다.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DB) 시스템 소프트웨어’라는 낯선 이름이다.

[혁신창업 26] ‘교수창업원조’ 차상균 서울대 교수 #2000년대 초 실험실벤처 창업하고 실리콘밸리行 #기술상용화 후 대학으로 컴백해 창업 인재 키워 #“‘애매한 성공’ 의미 없어…호랑이굴로 들어가야”

전문가들조차 ‘저게 될까’라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는 곧바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하필 ‘닷컴 버블’이 꺼지고 9·11 테러로 투자 시장이 얼어붙었을 때였다. 2~3년쯤 지났을까. 아시아에서 온 차 교수의 기술을 눈여겨보는 이들이 있었다. 2005년 독일계 소프트웨어(SW) 기업인 SAP가 TIM에겐 인수합병(M&A)을, 차 교수에겐 ‘인메모리 플랫폼 연구개발 책임자’라는 직함으로 함께 하자고 제안해왔다.

이때부터 SAP와 함께 본격적으로 인메모리 DB 시스템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이게 바로 DB 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현재 1만7000여개 이상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SAP HANA(하나)’의 시작이다. 차 교수의 기술은 한국 D램 반도체 산업과 시너지를 내며 세계 DB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의에 찬 소수의 시작이 세상을 바꾼다.” 지난 1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공원 라운지에 차 교수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창업부터 위기, 성공, 다시 교수로 돌아온 지난 30년을 스스로 요약하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차 교수는 “꿈은 이루어진다. 단 실패를 축적해야 이루어진다”고 부연했다. 지난달 2022 삼성호암상 공학상을 받을 때 인사말과 같다. 신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부단한 투지와 투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창업하고 투자받기는 어땠나. 
너무 일찍 갔다. 당시엔 한국은 물론 미국에도 교수 창업자가 거의 없었다. 딱 한 사람, 마이클 스톤브레이커 MIT 교수가 있었다. 그는 머신러닝 기업인 타머를 공동 창업했다. 스톤브레이커 교수가 2014년 컴퓨터과학 분에서 최고 권위인 튜링상을 받은 뒤 내게 이런 말을 하더라. ‘내가 당신이라면 지붕에 올라가 소리라도 질러 성과를 알리겠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조용히 간 나에게 농담을 건넨 것이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연구실에서 창업에 뛰어든 계기는.
서울대 교수가 됐을 때 ‘인메모리 DB’로 연구 방향을 잡았다. 더뎠지만 연구가 이어지니 2000년쯤엔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IBM 측에서 ‘미국에 와서 같이 일해 보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그때 자신감이 생겼다. 오히려 ‘우리 성과가 괜찮은데 왜 거기 가서 같이 하나, 직접 회사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라클·마이크로소프트·IBM 같은 대기업이 지배하는 DB 시장을 바꿔보자는 무모한 꿈을 갖게 된 거다.
창업 아이템이 일반인에겐 생소하다. 
예전에는 DB를 디스크나 SSD 같은 저장장치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데이터를 메모리에 올려서 처리했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앞으로 메모리 용량이 계속 늘어날 테니 어느 순간에는 큰 기업의 데이터를 메모리에 모두 올려두고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고 가정했다. 다만 메모리는 전원이 꺼지거나 SW가 잘못되면 사라진다. 그 데이터를 없어지지 않도록 회복하고, 또 중앙처리장치(CPU) 용량을 빠르게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데이터 연산과 기업 의사결정이 획기적으로 빨라진다. 말 그대로 세상에 없던 시장을 만든 것이다.  
2005년 회사를 매각한 후 2010년 기술 상용화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렸는데. 
사업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 SAP였다. 샤이 아가시 SAP 기술총괄사장이 2005년 M&A를 제안해왔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스타트업네이션(창업국가)』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인물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화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2005년 SAP랩 코리아를 설립하고 연구를 지속했다. 처음부터 모든 게 잘 됐던 건 아니다. 기존의 SW 인프라 구조와는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게다가 샤이가 2007년 이직하면서 사내에서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버텼다. 그 결과 ‘SAP HANA’가 탄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교수에서 창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출발할 때 제자 12명과 함께 했다. 소수의 인원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탁월한 한 가지 아이템’을 갖고, 이걸 끝까지 파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다음은 스케일(사업 규모)을 키우는 과정이다. 학교에서는 기초 연구로 인정을 받을 뿐 스케일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혁신적인 창업을 하려면 ‘진짜 세계’에서 입증을 해야 한다. 절대 쉽지 않다. 내가 도전할 때도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탐험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다. 혁신의 씨앗을 만드는 데 100명이 필요한 건 아니다. 10명 미만으로도 시작해 만들고 키우는 것, 그다음에 네트워크를 통해 자본과 인재가 붙으면 궤도에 오르게 된다.  
SAP HANA가 성공했다. 대학으로 돌아온 배경은. 
2013년 서울대에서 빅데이터 연구원을 만드는 데 앞장서달라고 요청이 왔을 때 고민했다. 가까운 미국의 벤처캐피털리스트로부터 ‘(당신은) 세상에 없던 분야를 끌어낸 이력이 있다. 어떤 분야를 창업해도 되고, 자본은 얼마든지 대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때 내가 창업을 했다면 아마 지금 100조원대 가치 회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의 시스템’을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더 컸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고 살자는 마음이 나를 학교로 움직였다.  
창업의 영향을 받은 학생도 있을 것 같다
2014년 서울대 사범대의 한 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SAP에 있을 때 축구 선수들의 몸에 센서를 붙여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는 플랫폼을 만든 적이 있다. 이 같은 기술을 적용해 당시 독일은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그걸 보고 축구동아리의 데이터를 관리·분석하는 앱을 만들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학업을 그만둘 고민을 하길래 야단을 쳤다. ‘앞으로는 센서를 몸에 붙이는 게 아니라 동영상을 바로 분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독일에 가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후에 한 벤처 투자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학생이 창업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독일로 회사를 옮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그 학생이 강현욱 비프로컴퍼니 대표다. 강 대표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홀로 데이터사이언스를 공부해 회사를 키웠다. 이런 인재를 키우는 것이 나에겐 제2의 창업이다.
연구개발(R&D)에 기반을 둔 혁신 창업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은 실패의 실험장이 돼야 한다. 교수는 연구비에, 학생은 졸업에 매여 있는 게 현실이다. 실패가 허용되지 않다 보니 논문 내용이 아닌 숫자로 세는 ‘애매한 성공’에 그친다. 더욱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혁신 창업의 생태계가 부족하다면, 더 큰 세계인 실리콘밸리로 가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부딪혀야 답이 나온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일단 시도하면 옆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도 창업을 해본 교수 한 사람에게 신참 교수가 찾아와 아이디어를 냈다. 이후 벤처캐피털을 소개해줬고, 파괴적인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부족한가.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국내 최고라고 하지만 서울대의 인프라는 너무 낙후됐다. 우선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같은 국가적으로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연구시설을 학교 인근, 가령 과천처럼 가까운 곳으로 내보내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 수도권에서 반도체와 디지털, 헬스케어, 바이오,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 분야의 파괴적 혁신을 이끌 ‘미래 사이언스 파크’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가능하다면 실리콘밸리에 전진 기지를 만들어야 한다. 큰 규모는 아니더라도 대학과 벤처기업을 미국으로 보내는 거다. 1년에 100명씩 6개월을 보내도 한 사람당 5000만원을 지원한다면 50억원밖에 안 된다. 정부가 돈을 대고, 우리 벤처캐피털도 같이 나가는 거다. 여기에 창업 경험과 네트워크를 가진 민간의 전문가들이 이끄는 구조면 된다. 우리 학생은 글로벌 엑설런스를 위해 세계 혁신의 중심으로 보내고,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후방 국가의 우수한 학생을 끌어들여 인재의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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