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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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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말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통치받는 이들이 자신들에 대한 통치자들의 통치를 용인하는 근거’ 정도로 정의해 두자. 왜 내가 나에 대한 타인의 통치를 기꺼이 허용해야 하는가? 고대의 중국인들은 그것을 ‘하늘의 뜻(天命)’으로 받아들였다. 근세의 유럽인들 또한 통치자의 권한은 ‘신에게 받은 것(王權神授)’으로 여겼다. 현대인은 수상이나 대통령의 통치권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것이라 믿는다.

정치적 정당성은 정당에도 필요하다. 왜 나는 이 정당을 지지하는가? 왜 이 당이 권력을 잡아 우리를 통치해주기를 바라는가? 한 정당의 정치적 정당성은 과연 그 당이 이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박정희 산업화, 김대중 민주화 서사
두 서사 성공 이후 다음 서사 없어
어느 정당도 지지 논리 설명 못해
새 서사 만드는 게 2030의 과제

내가 보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세력은 이 정당성 위기에 빠져 있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은 물론이고 대안 정당인 정의당마저도 지지자들에게 ‘자기들을 왜 지지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정당들은 ‘근대화 서사’로 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해 왔다. 보수정당에는 박정희의 ‘산업화 서사’, 민주당에는 김대중의 ‘민주화 서사’가 있었다. 문제는 이 두 근대화 서사가 이미 효력을 다했다는 데에 있다.

두 거대 서사는 종언을 고했다.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저개발국, 개발도상국을 지나 ‘발달한 경제’(선진국)가 되었고, 한국의 민주화는 세계적으로 모범사례로 여겨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워낙 성공적이었기에 누구도 이 둘의 대안 서사를 쓸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MB정권은 7%의 고도성장의 노스탤지어에 의존했고,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 상부구조마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문재인 정권은 지지자를 결집하는 데에 과거의 민주화 서사를 리사이클링했다. 하지만 그들이 청산하겠다는 친일파, 그들이 척결하겠다는 반민주 세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으로 망상에 빠져 버린 것이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정치집단은 결국 제 정당성을 부정적으로 정의하게 된다. ‘저들은 악하다. 고로 우리를 지지해라.’ 증오 정치와 혐오 투표는 우연이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이미 한국 정치의 구조적 요인이다.

거대 서사를 대체한 것은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위한 ‘작은 스토리들’이다.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조장하기 위해 창작된 수많은 음모론들. 그 바탕에는 대부분 ‘복수와 원한’이라는 극단적 감정이 깔려 있다.

진보 정당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상상계는 여전히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추억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좌파 서사의 영웅인 대공장 조직노동자는 오늘날 소득순위 10% 안에 드는 정규직으로, 이미 기득권층으로 여겨진다.

그러는 사이에 비정규직, 파견직 노동자, 화물차 노동자 등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들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노마드형 노동자들은 좌파 담론에서도 아직 주변적 존재일 뿐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6070 세대든, 민주당이나 정의당을 지지하는 4050 세대든, 모두 제 세대의 ‘성공’에 취해 변화한 상황 속에서 여전히 제게 익숙한, 그러나 이미 시효를 다한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 서사에도 포섭되지 않은 존재가 바로 2030세대다. 과거의 반공 및 산업화 서사가 민주화 세대에게 비웃음 당했듯이, 민주화의 성스러운 레토릭도 이제는 지겨운 클리셰로 전락해 2030 세대에게 비웃음 당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이들이 사회의 주축이 될 것이나,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이 세대를 위한 ‘서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이들이 제 고통과 좌절을 정치적으로 분절화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을 ‘외계인’으로 바라보던 기성세대도 선거를 위해서는 이들을 적극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선거 후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에서 청년 정치는 좌초하고 있다. 정의당에서도 청년과 여성 정치는 비난의 타겟이 되고 있다.

어느 정당의 지지자도 제 당과 제 후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제정신을 가지고 그런 당을, 그런 후보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겠는가. 설사 그런 이들이 더러 있어도, 그 대부분은 광신적 팬덤에 속한다. 왜 내가 이 정당을 지지해야 하는가? 어느 당도 이 물음에 긍정적으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을 지지하려면 맨 정신을 놓아야 한다. 광신도가 되지 않는 한 정당을 지지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정당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다. 모든 이가 명확하게, 혹은 막연하게 이를 느끼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정치인들도 자기 철학과 책임 없는 잔뜩 주눅이 든 회사인이 되어 버렸다. 이제라도 구약을 대신할 신약을 써야 한다. 신약은 구약의 폐기 아니라 구약의 완성이다. 물론 그것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젊은 세대의 과제. 기성세대는 그저 그들의 글쓰기를 옆에서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