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양성희의 퍼스펙티브

정의 앞세워 상대방 악마화, 정치양극화 부추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SNS 여론재판, 무엇이 문제인가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주혁, 옥주현, 싸이. 최근 한 달 새 각종 ‘논란’으로 몰매 맞은 연예인들이다. 탤런트 남주혁은 과거 학교폭력 의혹이 나왔다. 소속사는 폭로 내용을 부인하며 일부 고소를 진행하는 등 진실공방이 한창이다. 민감한 사안이니 무엇보다 사실 여부를 면밀히 따져야 하는데, 온라인 여론은 이미 의혹 아닌 사실로 판단 완료한 것처럼 보인다.

“내가 더 도덕적” 허세 심리 작동
팬덤 강성정치 폐해 갈수록 커져

윤리적 사람일수록 폭력성 강해
문제성 연예인도 발빠르게 응징

좌·우진영 없이 극단적 성향 주목
시류에 올라타는 정치 경계해야

몰매 맞은 남주혁·옥주현·싸이

양성희의 퍼스펙티브

양성희의 퍼스펙티브

뮤지컬 스타 옥주현은 갑질 인맥 캐스팅 폭로가 나왔다. 억울하다며 폭로자를 고소하겠다고 했다가 무릎을 꿇었다. 논란의 소지는 있었지만 인맥 캐스팅이 옥주현만의 문제는 아니었는데, 역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못된 갑질 연예인’을 벌주라는 온라인 여론을 이기지 못했다.

또 가수 싸이는 여름철 트레이드 공연 ‘흠뻑쇼’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TV 예능프로를 통해 물 300톤이 쓰인다는 게 알려지면서다. 방송 날이 가뭄이 한창이던 때였다. 공연은 장마철인 7월에 열린다는 사실은 무시됐다. “환경문제에 둔감한, 가뭄 와중 무개념 물 낭비”라는 비난이 온라인을 달궜다.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의혹·폭로·고발로 여론재판대에 오른 문제 연예인(악)에 대한 대중(선)의 질타와 응징이라는 점은 유사하다. 진실은 두부 자르듯 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라는 배경 설명이 파고들 여지가 없었다. 여론재판으로 생명이 끊긴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니, 우리가 스타의 생사여탈권을 쥐었다는 대중의 효능감도 한몫한다.

연예계뿐만이 아니다. ‘상대의 악마화’와 ‘쟁점의 선악화·도덕화’는 강성 정치 팬덤의 고정 레퍼토리기도 하다.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는 이슈들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다. ‘정의라는 이름의 도덕적 단죄’는 우리 사회와 정치를 읽는 주요 키워드다.

인정욕구 증폭하는 소셜미디어

‘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 또는 ‘그랜드스탠더(grandstander)’라는 말이 있다. 남들에게 도덕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도덕적인 말을 하는 것,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한다. 자신의 도덕성이나 도덕적 쟁점에 대한 민감성을 과시하는 ‘허세적 도덕주의’다. 인정욕구를 자극하는 SNS 시대의 초상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즉 ‘인스타에 올릴 만한가’가 중요한 것처럼 ‘도덕적으로 보이는가’가 중요해진다.

저스틴 토시 미 텍사스 공과대 교수 등이 쓴  『그랜드스탠딩』에 따르면  SNS는 이처럼 “자신이 역사의 옳은 편에 서 있음을 증명하고자 애쓰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공적 담론은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쟁터가 된다.”

이런 ‘미덕 과시’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가는 별개 문제다. 『트릭 미러』의 지아 톨렌티노는 “온라인 보상이 오프라인 보상을 추월한다. 트위터의 많은 이들이 올바른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옳은 일처럼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은 무언가를 아는 능력은 극적으로 증가시켰지만 무언가를 바꾸는 능력은 그 상태 그대로다. 나는 인터넷이 우리 손에 들려준 것은 쏟아지는 비극 앞에서 비통해하다가 냉랭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클일 뿐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지나친 참여가 우리를 점점 더 무감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트릭 미러』)

『그랜드스탠딩』에 따르면 이 기제의 출발은 ‘도덕적 자기 우월성의 환상’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실제보다 자신을 훨씬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후하게 평가한다. 사람들은 또 ‘대중적 관점’에서 벗어난 이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설혹 자기가 그에 동의하지 않을 때라도 사회적 압력에 동조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잘못을 저질러 그랜드스탠딩의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은 원래 받아야 할 수준보다 더 가혹한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아무리 그가 비난과 모욕을 받는 게 당연해도, 1만 명의 사람으로부터 유사한 비난과 모욕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평범한 시민의 이중성

미국 사회에서 이런 그랜드스탠딩은 주로 좌파가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저자들은 우파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좌우 불문이되 중도보다 극단적 사람들이 더 많이 했다.

일본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의 책   『샤덴프로이데』는 유명한 실험 결과들을 인용하며, 악플을 쓰고 가혹한 여론몰이에 나서는 사람 중에 오히려 평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많을 수 있다는 이율배반을 지적한다. 평범한 시민의 이중성이다. 사람들에게 가혹 행동을 지시한 한 심리학 실험에서, 예상과 달리 평소 도덕적인 사람들이 가혹 행동을 더 많이 했다. 윤리적이고 올바른 사람일수록 명령이나 지시, 규범을 잘 따르고 사회적 압력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올바름은 이성을 마비시키도 한다. 평소 ‘사람은, 사회는 이래야 한다’며 윤리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뇌에 윤리적인 면죄부가 주어져 있을 것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비윤리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저자는 타인에게 인정받을 때 뇌에서는 섹스의 쾌감에 준하는 다량의 도파민이 방출된다며 이 쾌락을 얻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누군가를 익명으로 비난하여 많은 사람의 찬동을 얻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발언의 진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보다 이타적인 징벌을 가하는 것에 훨씬 더 큰 쾌락을 느낀다. 인정중독 중 가장 위험한 유형이 정의중독자다.” 책 제목인 ‘샤덴프로이데’는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은밀한 쾌감이라는 뜻이다.

도덕이 정치를 잠식할 때

다시 『그랜드스탠딩』으로 돌아오자면, 그랜드스탠딩은 양극화, 냉소주의, 분노 피로라는 사회적 손실을 낳거나 부추긴다. 실제 미국의 정치 양극화는 극심하다. 책에 따르면 지난 70년간 중도의 비율은 지속해서 줄고,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어느 한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계속 높아졌다. 특히 상대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극적으로 증가했다. 2019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양당 지지자의 40% 이상이 상대편을 “노골적인 악마”로 규정했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의 20%, 공화당 지지자의 16%가 상대편 구성원들이 “그냥 다 죽어버리면” “한 국가로서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랜드스탠딩은 사소한 사안도 도덕적 이슈로 만들고, 과도하게 도덕성을 부여한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도덕적 신념이 강해지면, 정치에서의 타협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당연하다. 도덕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편의 도덕적 우월함에 대한 확신은 상대의 악마화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고의 틀이 만들어진다. ‘상대편은 소수자를 싫어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환영한다.’ ‘나는 푸르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지만 그들은 폭력적이고 파시스트 민족국가를 원한다.’ ‘국가가 동성결혼을 허용하면 좌파는 궁극에 수간과 소아성애자에 대한 관용도 요구할 것이다.’

낙태와 총기 ‘미분열국’ 논란

유권자 또한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자신을 대표하길 선호하고, 더 선한 사람이 선한 정책을 실행할 것이라 믿으며 선한 이에게 투표하는 경향을 보인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정책을 일일이 따지는 것보다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반대급부로 정치인에게 더 많은 그랜드스탠딩을 요구한다. 결국 정치는 도덕성 경연장으로  변모하며, 이처럼 “정치가 자신이 옳은 편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제스처가 되면, 정치인은 자신이 호의적이고 인정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보다 정확히는 “드러내기만 하는” 정책 개발에 골몰하게 된다는 게 책의 결론이다.

그랜드스탠딩은 최근 우리 사회 젊은층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C)’이나 ‘정체성 정치’와도 관련 있다. 정체성 정치란 성·인종·라이프스타일 등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나의 정체성, 그리고 그에 대한 인정투쟁을 요체로 하는 정치다. 수년간 정체정 정치가 주요 화두인 미국은 최근 ‘낙태 문제’와 ‘총기 규제’를 놓고 두 동강이 나 ‘미합중국’이 아니라 ‘미분열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극화가 극심하다. 미국 상황에 대한 분석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와 정치에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