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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의 자녀 수학 교육법 “아들이 만든 문제 내가 풀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손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소중한 학창 시절을 공부가 아니라 잘 평가받는 데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더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사회·문화적 배경에 있지 않나 싶어요. 사회·교육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어른들이 학생들의 용기가 배신당하지 않도록 좋은 정책적 틀을 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수학계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고등과학원(KIAS) 석학교수는 13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상을 받은 후 첫 귀국 인터뷰다.

허 교수는 수학에 대해 “마라톤을 준비해서 매년 대회에 참가하고, 굉장히 어려운 역기를 드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루도 빠짐없이 즐기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수학은 자신이 얼마나 깊이 생각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테스트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자녀 수학교육 방법도 소개했다. 그는 첫째 아들이 만들어 온 수학 문제를 하루에 하나씩 풀고 있다며 “(아들이) 대단한 문제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몇 개인지 세서 답을 쓰라는 식”이라고 했다. 이어 “(처음에) 제가 쉽게 풀어버리자 (아들이) 약이 올라서 동그라미를 정말 많이 그려오는데, 백몇십 개를 찬찬히 같이 세보는 과정이 수학적 정서적 발달에 도움 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처음에 동그라미 130개를 세야 하는 문제를 낼 때는 (아들이) 13개씩 10줄을 그렸어요. 제가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맞추니까 그다음에는 무작위로 그리더군요. 그럼 제가 실수하는 것을 알고, 곱셈 개념에 대해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됩니다.”

그는 또 미국 스탠퍼드대·프린스턴대 등에서 만난 한국 학생과 관련 “다양한 문화권과 나라에서 우수한 학생이 오는데 한국 학생이 특별히 더 잘 준비돼 있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며 “(한국 학생이) 좁은 범위에서 완벽하게 풀어내는 능력은 있지만 넓고 깊게 하는 공부는 덜 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주눅 들지 말고,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하는 것보단 마음이 이끄는 대로 폭넓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하라”고 조언했다.

기자간담회에 이어 진행된 필즈상 수상 기념 강연은 ‘경계와 관계’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허 교수는 “경계와 관계는 스스로를 정의하고 다른 추상적 대상을 인식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며 “본질적인 문제들은 우리에게 경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순수 수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의 타고난 편견을 넘어설 기회를 준다는 것”이라고 했다.

기념 강연에는 여러 연구자가 참석했는데,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한 구본준 LX그룹 회장도 참석했다.

한편 이날 허 교수의 부인 김나영씨는 기자들과 만나 “허 교수만큼 육아를 많이 한 사람도 없다. 아기띠 메고 다니고, 둘째 밤중 수유는 거의 남편이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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