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 허준이의 자녀 수학 교육법 "동그라미 그려놓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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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에서 2022 필즈상 수상 기념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소중한 학창 시절을 공부가 아니라 잘 평가 받는 데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더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사회·문화적 배경에 있지 않나 싶어요. 사회·교육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어른들이 학생들의 용기가 배신당하지 않도록 좋은 정책적 틀을 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수학계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고등과학원(KIAS) 석학교수는 13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상을 받은 후 첫 귀국 인터뷰다.

허 교수는 수학 연구에 대해 “마라톤을 준비해서 매년 대회에 참가하고, 굉장히 어려운 역기를 드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루 빠짐없이 즐기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수학은 자신이 얼마나 깊이 생각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테스트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연구 성과가 어떻게 현실 기술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기존에는 계산하기 힘들었던 양을 더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저는 순수 수학자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편이라 응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완벽히 무지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세시대에 영주가 학자에게 ‘글 쓰고 배우는 걸 모든 국민이 익힐 수 있으면 내년에 가뭄이 와서 흉작 드는 것에 대해 충분히 대비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학자가) 대답하기 곤란한 것과 비슷하다”며 당장의 응용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수학계 최고 권위상으로 평가받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고등과학원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녀에 대한 수학교육 방법도 소개했다. 그는 “초보 부모로서 잘 아는 건 없다”면서도 첫째 아들이 만들어 온 수학 문제를 하루에 하나씩 풀고 있다”며 “(아들이) 대단한 문제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몇 개인지 세서 답을 쓰라는 식”이라고 했다.

이어 “(처음에) 제가 쉽게 풀어버리자 (아들이) 약이 올라서 동그라미를 정말 많이 그려오는데, 백몇십 개를 찬찬히 같이 세보는 과정이 수학적 정서적 발달에 도움 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처음에 동그라미 130개를 세야 하는 문제를 낼 때는 (아들이) 13개씩 10줄을 그렸어요. 제가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맞추니까 그다음에는 무작위로 그리더군요. 그럼 제가 실수하는 것을 알고, 곱셈 개념에 대해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됩니다.”

그는 또 미국 스탠퍼드대·프린스턴대 등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과 관련 “다양한 문화권과 나라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오는데 한국 학생이 특별히 더 잘 준비돼 있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며 “(한국 학생들이) 좁은 범위에서 완벽하게 풀어내는 능력은 있지만 넓고 깊게 하는 공부는 덜 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학생들에게 “현실에 주눅 들지 말고,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하는 것보단 마음이 이끄는 대로 폭넓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