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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찰' 소송 재판부 "통신조회 왜 필요" 묻자 공수처 "못밝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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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통신자료 조회 논란에 대해 "수사를 위한 공익적 목적이 커 적법한 조치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공수처가 통신자료 조회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단독 전경호 판사는 13일 김태훈 한변 명예회장과 이헌 부회장, 우인식·박주현·권오현 변호사, 이영풍 KBS 기자가 낸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을 열었다.

원고들은 "범죄혐의도 없고 수사 대상도 아닌 변호사와 언론인의 인적 사항을 공수처가 무차별적으로 조회했다"며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공수처의 사찰 행위는 피해자와 국민에게 위압감과 불안감을 불러왔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공수처가 '카카오톡 영장'을 받아 수사 대상이 들어가 있는 단체 채팅방 구성원들의 전화번호를 수집하고, 통신사를 통해 전화번호 주인의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고 본다.

반면 정부 측 대리인은 "통신 자료를 요청하는 것은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임의 수사 방법의 하나"라며 "수사를 위한 공익적인 목적이 커 적법하다는 전제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왜 이들의 통신 자료를 조회했는지에 대해서는 "수사 중이라 밝히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자 재판부는 "왜 통신 자료 조회가 필요했는지, 공수처가 어떤 범죄 혐의로 수사하게 됐고, 그게 원고들과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누구를 염두에 두고 어떤 수사를 벌였길래 단체 채팅방 속 모든 사람의 인적사항을 조회할 수밖에 없었는지 재판 과정에서 밝혀야 할 것 같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 측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 있어 공개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만 볼 수 있도록 서면을 제출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했다. 이에 원고들이 "재판부에만 보여주면 원고 입장에서 다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반발하자, 재판부는 우선 정부 측이 밝히는 사유를 살펴보고 이후 절차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지난해 공수처는 언론인과 그 가족 등 수사와 관련 없는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를 벌여 '불법 사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재판부는 오는 9월 7일 두 번째 변론 기일을 열어 심리를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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