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감 맞나" 이런 냉소 깨려면…97그룹 꼭 필요한 세가지

중앙일보

입력 2022.07.13 05:00

업데이트 2022.07.13 08:11

민주당 차기 당권주자인 재선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의원(왼쪽부터). 연합뉴스

민주당 차기 당권주자인 재선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의원(왼쪽부터).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에 강병원·강훈식·박용진·박주민 의원 등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 ‘양강 양박’이 모두 출마하며 세대교체론에 불을 지폈다. 이들은 각각 ▶미래(강병원) ▶통합(강훈식) ▶떳떳한 민주당(박용진) ▶혁신(박주민) 같은 저마다의 가치를 내세웠지만, 당내에선 “실력이 당 대표감인지 모르겠다”(수도권 86 중진)는 냉소적인 시선도 여전하다.

이런 냉소적인 반응은 1970년 김영삼·김대중·이철승 신민당 의원이 ‘40대 기수론’을 내걸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유진산 신민당 총재는 이들 세 의원을 향해 “구상유취(口尙乳臭·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의 정치적 미성년자들이다”라고 직격했다. 다만 당시 40대 의원들은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세대교체를 관철했고, 그해 9월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에선 비주류 김대중 후보가 주류의 지원을 받은 김영삼 후보를 꺾는 파란까지 일어났다.

1970년 '40대 기수론'의 선봉에 섰던 김영삼(왼쪽부터), 김대중, 이철승 당시 신민당 의원. 이들은 "구상유취"라는 당시 유진산 신민당 총재의 비판에도, 세대교체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중앙포토

1970년 '40대 기수론'의 선봉에 섰던 김영삼(왼쪽부터), 김대중, 이철승 당시 신민당 의원. 이들은 "구상유취"라는 당시 유진산 신민당 총재의 비판에도, 세대교체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중앙포토

다만 한국 정당사에서 ‘세대교체론’은 실패 사례가 더 많다. 2006년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선 김부겸·임종석·김영춘 의원 등이 당권에 도전했으나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2011년 한나라당에서도 나경원‧남경필‧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40대 기수론이 다시 회자됐지만, 중진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양강 양박’이 불러일으킨 미풍이 민주당 내 ‘세대교체론 강풍’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① ‘리스크’를 감수하라

안병진(정치학) 경희대 교수는 “정치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단순히 말만으로는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며 “97그룹 후보들이 공천 탈락 같은 리스크(risk·위험)를 감수하고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진정성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후보 단일화’를 꼽았다. 안 교수는 “단일화라도 이뤄 자신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지, 적당히 각개약진하는 것만으로는 ‘세대교체론’에 불을 지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전 의원(왼쪽)이 1995년 1일 자신을 따르는 재야 인사들과 민주당에 입당하는 모습.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당시 김대중 총재는 자신의 권한 절반을 내주며 '빅 텐트'를 만들었다"며 "그렇게 기득권을 내려놓으면서 정권교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김근태 전 의원(왼쪽)이 1995년 1일 자신을 따르는 재야 인사들과 민주당에 입당하는 모습.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당시 김대중 총재는 자신의 권한 절반을 내주며 '빅 텐트'를 만들었다"며 "그렇게 기득권을 내려놓으면서 정권교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정당을 바꾸려면 의원직까지 거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뭘 바꾸자고 얘기한다면 적어도 ‘내가 이걸 못 바꾸면 의원직을 던지겠다’는 결기를 보여야 한다”며 “혁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것처럼 얘기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적당히 공천을 받아 나오는 행태로는 세대교체에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97그룹이 보인 진정성에 대해 대체로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전당대회 출마 과정에서 서로 장고를 거듭하며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97그룹 후보 가운데엔 이재명 의원이 불출마할 경우 그 표를 어떻게 가져올까 계산하는 듯한 사람도 있었다”며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조금 과하긴 해도, 그에 준하는 용기를 보여야 세대교체가 큰 흐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② 86세대와 ‘다른 가치’를 내세워라

97그룹에 주어진 숙제가 86세대를 뛰어넘는 어젠다의 차별화란 점에는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특히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라고 조언했다.

 제16대 총선 다음 달이던 2000년 5월 17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 가운데)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민석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386세대' 당선자들이 광주시 망월동 5.18묘역에서 합동참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제16대 총선 다음 달이던 2000년 5월 17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 가운데)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민석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386세대' 당선자들이 광주시 망월동 5.18묘역에서 합동참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원호(정치학) 서울대 교수는 “86세대들이 이야기했던 민주화와 노동을 넘어서는 97세대만의 의제를 찾을 수 있느냐가 결국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예컨대 ‘생활의 정치’라든지 환경·소수자 이슈 등을 정책적 대안으로 묶어내고 그를 통해 유권자층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이에 성공하지 못하면 ‘97그룹’에 기회가 오지 않고 곧장 90년대 생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86세대와의 ‘단절’을 주문하는 의견도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15대 대선 TV 토론을 도왔던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국민이 바라는 건 물리적으로 젊은 나이가 아니라 탈이념적인 정치로 이동하라는 것”이라며 “당심(黨心)이 아닌 민심(民心)에 호소하고, 과거 운동권에 몸담았어도 이젠 운동과 완전히 단절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③ 폐쇄적인 ‘진보 정책’에서 벗어나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018년 7월 5월 의원총회에서 '소득 주도 성장' 피켓을 들고 있다. 변선구 기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018년 7월 5월 의원총회에서 '소득 주도 성장' 피켓을 들고 있다. 변선구 기자

그간의 민주당 정책에 대한 평가와 대안도 8·28 전당대회에서 97그룹이 논의해야 할 대목으로 꼽혔다. 정책 결정 등에 대한 네트워크 분석 연구를 해 온 이원재(사회학)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현대화폐이론(MMT)에 기반을 둔 ‘기본소득’이나 ‘기축통화국’ 같은 정책을 무분별하게 공약으로 제시했다”며 “과거 민주당 정권과 달리, 최근엔 민주당에서 주류 경제관을 갖춘 실무형 전문가들의 공간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인플레이션 위협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97그룹이 주류 경제학을 폭넓게 참고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치적 갈등이 일상화된 당내 구조에서도, 외부의 다른 관점과 시각을 수혈할 수 있는 정치적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극소수 진보 성향 교수들이 이끌어 온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재평가도 주문했다. 최병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은 “97그룹 후보들은 임대차 3법과 종부세·양도세,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내놓아야 한다”며 “더 나아가 변화한 국제 질서 속에서 햇볕 정책 같은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도 다시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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