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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탓하며 아프리카에 '빨대'만 꽂았다…유럽 '녹색 식민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오른쪽)와 압델마드지드 테분 알제리 대통령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5월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오른쪽)와 압델마드지드 테분 알제리 대통령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러시아산 ‘에너지 덫’에 빠진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천연가스 무기화’에 맞서 새 공급처로 아프리카를 점찍은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확보에만 열중할 뿐 인프라 투자 등엔 인색해 ‘녹색 식민주의’란 비판이 일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 각국은 최근 아프리카와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건 이탈리아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4월 알제리에서 압델마드지드 테분 알제리 대통령과 회담한 뒤 알제리산 천연가스 수입량을 기존보다 40%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탈리아는 같은 달 앙골라와 콩고민주공화국과도 천연가스 수입 계약을 체결했다. 독일도 최근 세네갈과 천연가스 신규 공급 계약을 맺었다. 두 나라 외에 스페인과 프랑스, 포르투갈 등도 아프리카 지역에서 천연가스 수입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이 아프리카에 눈독을 들이는 건 러시아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천연가스 ‘공급중단’ 카드로 유럽을 압박 중이다. 러시아는 11일 노르드스트림1 가스관을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가스관 유지보수 공사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클라우스 뮐러 독일 연방네트워크청 청장은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가스 공급 중단을 벌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4월 튀니지 수도 튀니스 동쪽 100km 부근에 설치된 지중해 가스관을 직원이 살펴보고 있다. 이 가스관은 알제리 등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공급한다.[AFP=연합뉴스]

지난 4월 튀니지 수도 튀니스 동쪽 100km 부근에 설치된 지중해 가스관을 직원이 살펴보고 있다. 이 가스관은 알제리 등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공급한다.[AFP=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아프리카 존재감이 커졌다. 유로스탯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알제리(13%)와 나이지리아(5.5%)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다음으로 유럽연합(EU)에 천연가스를 가장 많이 수출했다. EU는 지난 5월 “나이지리아와 세네갈·앙골라 등에도 개발되지 않은 액화천연가스(LNG) 유전이 많다”며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를 다소 낮출 대안으로 아프리카를 지목했다. 실제로 나이지리아·적도기니·가나·모잠비크·탄자니아·모리타니 등에서 다양한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여기엔 유럽 국가가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제는 유럽이 자국에 가져갈 에너지 확보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점이다. 나이지리아는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3%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천연가스 생산지인 나이지리아 보니섬 주민은 암시장에서 산 등유 등으로 난로와 발전기를 돌린다. 천연가스 생산량 대부분이 유럽으로 수출되는 데다, 천연가스를 전기로 전환할 수 있는 발전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19년 기준 EU의 전력 사용 가능 인구 비율은 100%였으나 나이지리아는 55%에 그쳤다.

그럼에도 재정이 열악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천연가스 수출을 멈출 수 없다. 블룸버그는 “유럽이 천연가스 수입은 서두르면서도 아프리카 국가가 이를 활용할 에너지 시설을 건설하는 투자엔 인색하다” 며 “아프리카는 1인당 탄소 배출량이 유럽과 미국보다 현저하게 낮으면서도 열악한 환경으로 기후변화 피해는 더 크게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탄소중립 등 유럽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위선이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럽이 주축인 주요7개국(G7)은 지난달 말 에너지 공급난에 대처한다는 명분을 들며 화석연료에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철회했다. 지난 6일엔 유럽의회가 친환경 투자 기준인 녹색 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천연가스를 원자력발전과 함께 포함했다. 그러면서도 G7은 지난 2008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의 기후 피해 극복을 위해 2020년까지 해마다 최소 10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미국 싱크탱크 브레이크스루 인스티튜트의 비자야 라마찬드란 에너지개발국장은 “선진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면서 가난한 국가의 자원을 착취하고 있는 것은 ‘녹색 식민주의’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논란 속에 올해 11월 이집트에서 열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회담에서 선진국들이 아프리카 에너지와 관련한 대책을 내놓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무하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에너지 정책에서 유럽의 (모순적) 행동은 환경과 에너지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선을 끝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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