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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선택이 고발한다

대리석 치장 7억, 이것 뿐이랴...국민 모른다고 稅낭비하는 공관

중앙일보

입력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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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납세자연맹의 특활비 폐지 촉구 기자회견 모습. 최근 논란이 된 헌재소장 공관 문제같은 세금 낭비 사례는 정보 공개 거부 등 불투명한 관행에서 기인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한국납세자연맹의 특활비 폐지 촉구 기자회견 모습. 최근 논란이 된 헌재소장 공관 문제같은 세금 낭비 사례는 정보 공개 거부 등 불투명한 관행에서 기인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기로 한 결정을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 고위층이 누려온 공관 제도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어제(12일) "과거 권위는 집무실 평수에서 나왔지만 이젠 그런 리더십은 곤란하다"며 공공기관의 공관뿐 아니라 모든 조직이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안하는 칼럼을 보내왔다. 이어 오늘(13일)은 공관 문제를 세금 낭비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접근한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의 글을 싣는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헌법재판소장 공관이 근래 계속 논란이었다. 청와대와 함께 개방됐다가 소음을 이유로 헌재소장 측이 공관 앞 북한산 등산로를 폐쇄한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길이 열리긴 했지만 폐쇄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납세자연맹이 헌재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이유다.

지난 6일 받은 답변에 따르면 공관에 들어간 비용(세금)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총 6억9100만원, 그러니까 연평균 1억3800만원이다. 공관 상주 인력의 인건비는 제외된 금액이다. 당초 관사에 근무하는 전속요리사와 경비원 수, 만약 이들의 신분이 공무원이라면 몇급 몇 호봉인지, 그리고 인건비가 얼마인지도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헌재는 '공공기관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5호 인사관리에 관한 상황'을 내세워 밝히지 않았다. 공무원 한 명 고용하는 데엔 급여뿐 아니라 급여의 2배에 달하는 사회보험료와 공무원연금 비용이 들어간다. 공관 유지에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게 인건비인데 이를 비공개한 거다.

대법원장공관. 김명수 대법원장은 공관 외벽을 수입산 천연대리석으로 바꾸는 등 리모델링 비용에 17억원을 썼다. [중앙포토]

대법원장공관. 김명수 대법원장은 공관 외벽을 수입산 천연대리석으로 바꾸는 등 리모델링 비용에 17억원을 썼다. [중앙포토]

하지만 헌재소장 공관에 들어간 세금을 유추할 수 있는 몇몇 사례가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17년 취임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공관 연 운영비로 4억 8000만원을 썼다. 상주 관리인원을 9명에서 12명으로 늘리면서 이들 연봉만 4억 2800만원에 달했다. 외빈 초청 행사 등을 이유로 다른 기관장이나 지자체장 공관보다 훨씬 큰 규모를 유지하는데, 재직 2년 동안 외국 인사 초청은 13번에 그쳤다. 그런가하면 비슷한 시기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심지어 4억 7000만원의 예산을 전용하는 등 16억 6000만원을 들여 공관을 리모델링한 게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가장 큰 돈(7억 8000만원)을 들인 게 수입산 천연대리석으로 외벽을 바꾼 거였다. 그나마 알려진 게 이 정도다. 언론 등의 주목을 덜 받는 다른 공관에서는 과연 얼마나 큰 세금 낭비가 이어지고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지난 2018년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외교부장관 공관에서 '제22차 한·아세안 대화 환영 만찬'을 주최하고 있다. 2년 재직동안 외국 인사 초청 행사는 13번에 그쳤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8년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외교부장관 공관에서 '제22차 한·아세안 대화 환영 만찬'을 주최하고 있다. 2년 재직동안 외국 인사 초청 행사는 13번에 그쳤다. [사진공동취재단]

많은 사람이 한국은 경제 선진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드문 나라라고 자랑스러워 한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고 쿠데타 가능성이 없는 걸 민주화라고 한다면 한국은 민주화를 이룬 나라가 맞다. 그러나 국민의 납세 의무와 더불어 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권리가 보장된 나라가 진정 민주화된 국가라고 한다면 한국은 아직 멀었다.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국민이 투명하게 알아야 세금 낭비도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납세자연맹이 지난 2018년 초청했던 한 스웨덴 국세청 공무원은 ”임용된 1988년 이후 30년 넘게 단 한 건의 부패사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스웨덴에서 공무원의 부패방지와 특권 시비 차단에 가장 기여한 요소로 1766년 제정된 언론자유법(정보공개법)을 들었다. 투명성과 개방성만이 부정부패와 특권을 차단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만약 부패와 특권이 비밀로 감춰져 있다면 이걸 뚫을 수 있는 창은 없다.

우리는 어떨까. 대법원 판결문조차 일부는 비공개다. 가령 부패와 관련한 어떤 사건이 판결까지 내려져도 국민은 알 리가 없다. 고위 공직자들은 여전히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데 그건 국민이 이들에게 무슨 특권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기 때문이다. 헌재소장 관사가 딱 그렇지 않은가. 분명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국민은 그 관사를 유지하는 데 세금이 얼마나 쓰이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전속요리사가 있는지, 있다면 누구 식사를 준비하는지도 모른다. 영수증 증빙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니 고위 공직자들에게 사실상 세금횡령면책특권을 인정하는 거라는 비판이 나온다. 만약 청와대나 검찰의 특활비가 공개된다면 무려 연 2471억원에 이르는 17개 부처 특활비 폐지의 기폭제가 될 거다. 납세자연맹이 최근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 특활비 집행내용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이유다.

한국납세자연맹이 대통령실에 정보공개청구한 내용. [한국납세자연맹]

한국납세자연맹이 대통령실에 정보공개청구한 내용. [한국납세자연맹]

여러 부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면서 한국 정보공개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매번 체감한다. 헌재가 비공개사유로 든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5호는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ㆍ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관 근무자 이름을 공개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 수와 직종·연봉을 공개하는 것이 무슨 공정한 업무수행을 현저히 저해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 공무원은 ‘수사중’‘감사중’‘검토중’이라는 이유를 골라 언제든 멋대로 비공개를 결정한다. 마음만 먹으면 ‘공개해야 할 정보’를 완전히 감출 수 있다. 심지어 소송에 패소하더라도 공개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으로 공개의 실익을 아예 없앨 수 있다. 한마디로 국내 정보공개법은 ‘정보 비공개 핑계법’이다.

다시 스웨덴 얘기를 해보자. 이 나라 정보공개법엔 예외 조항인 ‘비공개 사유’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예컨대 '카메라감시법상 CCTV 정보는 20년간 비공개한다, 단 범죄수사와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는 식이다. 법률에 비공개사유로 열거된 게 아니면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 또 스웨덴은 공무원의 공무상 결정과 답변 내용을 모두 공개한다, 소득세와 법인세도 여기 포함된다. 세무조사로 세금이 증액되거나 소송으로 감액될 경우도 그 액수도 공개한다. 탈세예방목적도 있지만 세무 공무원의 부패방지 목적도 있다.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결정내용이나 타당성 등도 모두 공개하기 때문에 애당초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대장동과 LH공사 사태 같은 부패사건이 발생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장 공관 모습. 임야 8522㎡(2578평)를 제외하고 대지만 2810㎡(850평)이다. [중앙포토]

헌법재판소장 공관 모습. 임야 8522㎡(2578평)를 제외하고 대지만 2810㎡(850평)이다. [중앙포토]

한국의 공공부문 투명성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오래전에는 판결문에 개인 및 회사 이름이 쓰여 있었지만 지금은 ○○○으로 표시되어 내용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개인정보보호법을 계속 강화했기 때문인데, 개인정보보호와 투명성·부패방지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라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희생해야 하는 구조라서다. 한국은 그동안 개인정보보호법을 강화하면서 부패를 키웠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미국도 일부 주에서는 인터넷에 공무원 이름과 연봉을 공개한다. 스웨덴·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19세 이상 전 국민의 소득을 공개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보다 부패방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스웨덴과 같이 전 국민 소득을 공개한다면 월 600만~700만원의 공무원연금을 받으면서 로펌에서 월 5000만~1억원의 소득을 버는 퇴직 고위공직자의 특권은 용인될 수 없을 것이다. 헌법엔 분명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제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제10조)고 규정되어 있지 않나.

헌재 소장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은 국민이 납세의무만 지고 아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조선 시대가 아니다. 특권의식을 버리고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서 즉각 정보를 공개했으면 한다. 윤석열 대통령실도 특활비와 업무추진비 등을 공개해 부패를 막고 국민과 소통을 넓히겠다는 대선 때의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출근길 기자 문답(도어 스테핑)보다 정보공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실이 문 정부 청와대처럼 정보를 비공개한다면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라"고 요구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는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