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중국 수능에 등장한 정수·묘수·속수

중앙일보

입력 2022.07.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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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정(左), 신진서(右)

최정(左), 신진서(右)

지난달 중국 전역에서 치러진 2022대학입학시험 가오카오(高考)에서 정수, 묘수, 속수를 묻는 바둑 문제가 출제됐다고 한다. 중국 수능 격인 가오카오는 필수과목인 어문, 외국어, 수학에다 2개의 선택과목까지 모두 5과목을 치른다. 과목당 150점으로 총 750점. 한국기원의 중국통 김경동씨가 이달 ‘바둑’지에 쓴 내용을 보면 첫날 어문 과목에서 정수, 묘수, 속수의 바둑용어를 간단히 설명해주는 지문과 함께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800자 이상 서술하라’는 주관식 문제가 출제됐다는 것이다. 배점은 150점 중 60점이니 그 비중이 압도적이라 할만하다.

지문은 이렇다. “(…)정수는 기초이며 묘수는 창조다. 일반적으로 정수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묘수를 둘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속수를 두는 것을 피하기 어렵고 수준도 올라가지 않는다. 이상의 자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료를 보고 당신의 깨달음과 사고를 나타내는 문장을 쓰십시오.”

왜 이런 문제를 출제했을까. 지문을 보면 출제자는 정수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미래라 할 젊은이들이 정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유도하고 싶었을까. 올해는 사상 최대 1193만명이 응시했다는데 그 답안지들이 궁금하다. “기초가 중요하다,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다들 말하지만 중국사회에서도 젊은이들의 눈은 정수에 비판적이라고 한다. 특권과 부조리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정수를 뛰어넘느냐, 교묘히 무시하느냐가 능력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래서 만약 답안지에 사이비 묘수와 속수로 인해 정수가 죽어간다고 쓴다면 그 사람은 체제비판으로 간주되어 0점을 받을지 모른다. 정수에 대한 조롱이나 폄하도 점수를 얻기 힘들 것이다. 알아서 자기 검열한다면 그건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정수, 묘수, 속수는 바둑의 여러 가지 수(手)중 일부일 뿐이지만 그에 대한 생각은 곧 그 사람의 철학일 수 있다. 기득권에서 보면 정수는 아름답고 반대편에서 보면 정수는 올가미일 수 있다. 결국 서 있는 자리, 상황에 따라 수의 의미는 변한다.

바둑기사들도 SNS에 저마다의 견해를 피력하며 화제를 모았다. 중국 1위 커제 9단은 “정수는 본분의 수이자 중용의 수, 나쁘지 않고 좋은 중간의 의미를 갖는다. 속수는 대개 부정적이지만 어떤 상황에서 속수는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썼다. 칭화대학 졸업반 장웨이제 9단은 “형세가 위급할 때 속수도 급하게 사용할 수 있다. 가급적 정수를 두어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선 강수를 두어야 할 때도 있다. 또 국지전의 묘수는 전 국면의 악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바둑기사는 매일 수를 생각하고 수에 부닥치며 산다. 그들은 수에 관한 한 누구보다 현실적이어서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수를 대하지 않는다. 나는 세계 1위 신진서 9단과 여자 세계 1위 최정 9단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그 답변이 간결하면서도 개성적이었다. 전문을 그대로 옮긴다.

〈최정의 답변〉
1. 정수=옳은 수. 옳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고지식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

2. 묘수=틀에 박힌 사고로는 찾기 힘든 좋은 수. 찾아내면 뿌듯하고 짜릿하지만 불필요하길 바라는 수.

3. 속수=모양이 좋지 않거나 평범한 수. 두고 후회하지만 인간의 바둑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수.

〈신진서의 답변〉
정수는 무난하게 좋은 수, 속수는 하면 안 될 안 좋은 수, 묘수는 누구도 생각 못 한 수인데 바둑을 두다 보면 수들을 이렇게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AI와 상대할 때야 정수와 실수 두 가지만 존재하지만 사람과 경쟁하기 때문에 당장의 속수가 판을 승리로 이끄는 묘수가 될 수도 있고 당장의 정수나 묘수라도 그 이후의 수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패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한 번의 수로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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