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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두 발 다 쓰듯 고용도 유연성·안정성 갖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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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용의 유연안정성 왜 필요한가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

축구 스타 손흥민 선수는 두 발을 모두 잘 쓴다. 무명의 축구선수 출신인 부친 손웅정 씨는 아들의 코치로서 기본을 중시한다. 찰나의 순간에 자기에게 ‘익숙한 발’이 아닌 ‘필요한 발’이 먼저 나오도록 연습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양말도 왼발부터 신고 바지도 왼발부터 입는 등 두 발이 균형을 이루도록 기본기를 훈련했다고 한다. 경기 중 찰나의 순간에 발휘되는 유연성은 탄탄한 기본에서 비롯된다.

건축에서도 기본은 초석이다. 그런데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해 항상 단단한 고정기초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진에 견디는 튼튼한 건물을 지으려면 내진설계를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가 면진 기초다. 건물을 떠받치는 기초 기둥이 지각의 진동에 연동하면 건물이 보다 안정적으로 지진을 견디게 된다. 기초의 유연성이 건물의 안정성을 지키는 것이다.

기업조직에서 양손잡이 조직, 또는 양면성 조직이라는 개념이 있다. 효율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는 안정성과 유연성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는 탐색 활동이 함께 이뤄지는 조직을 말한다. 마치 손 선수의 양발 사용능력처럼 활용과 탐색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조직역량이 필요하다.

산업의 전면적 대전환 시대 맞아
고용안정만 외쳐선 변화 못 따라가
기업 혁신에 맞춰 새 기술 갖추고
기업은 인적 역량 쌓을 기회 줘야

연공체계 벗어난 유연한 고용 필요

성상현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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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업의 전면적 대전환은 두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선수처럼 양면성을 갖춘 조직, 본체를 튼튼하게 받치는 기초의 유연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현실은 어떠한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고 낡은 기술에 안주하면서 고용안정만을 외치는 목소리, 매년 오르는 호봉표와 계층이라는 단단한 위계를 기초 삼아 임금과 일자리를 지키려는 생각이 만연해 있지는 않은가.

자동차 업계는 전동화의 혁신 와중에 있다. 기존 내연기관 파워트레인이 전기모터로 바뀌는 흐름에서 기존 기술의 전환과 신기술 흡수가 현안이다. 하이브리드라는 징검다리 전략을 택해 완전 전동화에 한발 늦어지고 있는 일본 자동차 기업과 급진적 전동화를 택한 한국 기업 간에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내연기관 관련 인력과 설비를 신기술로 전환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각종 거래행위 역시 무형의 가상공간인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판도가 뒤집히고 새로운 역량을 요구한다. 기존 역량의 전환과 새로운 역량의 개발이 긴요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산업 전환기에 요구되는 경영방식은 양면성이다. 기업의 구조와 문화가 유연성과 안정성을 구비해야 한다. 기존기술과 신기술의 유연한 임무 교대는 양면성을 갖춘 조직, 양손잡이 조직에서 가능하다. 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존의 연공 중심 임금체계를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일자리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기업 역시 사람의 중요성을 의사결정의 중심에 둬 새로운 기술을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고 성장을 도와야 한다. 개인의 성장을 돕는 것은 상호신뢰를 두텁게 할 것이다. 개별 기업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훈련과 교육은 국가와 기업단체가 분담해야 한다.

에너지와 구동 방식, 거래방법뿐 아니라 소재와 물류, 바이오 등 산업 전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데이터 기반으로 경영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모든 활동이 데이터화되고 이 데이터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연결의 경제는 데이터를 매개로 이뤄진다. 급부상하는 콘텐트산업 역시 그 자체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경영을 위해서는 외국어 구사 능력이 요구되듯이, 데이터 시대에는 데이터와 대화할 수 있는 알고리즘적 사고와 코딩 능력, 즉 ‘디지털 역량’이 요구된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는 고용도 경영도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기존의 것을 버리는 탈 학습과 새로운 지식에 열려 있는 유연성 있는 학습을 통해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조직의 인력 다양성이 경쟁력 높여

과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요구가 기업과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한 미래로부터의 요구들이다. 사회공헌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 불리던 요구들이 최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이름으로 기업경영 활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준법경영은 기본적 요구이고 지키지 않을 경우 위법과 불법이 된다. 법으로 모두 성문화되지는 않았지만 보다 강력하게 요구되는 환경경영, 사회적 가치, 투명한 지배구조는 기업의 운명을 가르고 산업의 판도를 재편하게 된다. 더는 기존 경영방식에 간판만 그럴듯하게 바꿔 다는 행태로는 시민사회의 눈을 비껴갈 수 없다. 기업의 진정성 있는 참여가 요구된다. ESG 경영을 위해서는 딱딱한 법적 규제가 아닌 자발적 변신과 참여가 요구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국경과 도시 봉쇄라는 물리적 조치를 통해 코로나 19 확산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지금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체를 모르는 바이러스가 퍼지고 공포가 만연했을 때는 당장 눈에 보이는 물리적 장벽을 세워서 확산을 막아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방어는 백신과 치료제, 그리고 집단면역의 형성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를린 장벽을 통해 이념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듯이 유형의 경계 설정만으로는 새로운 연결경제 시대에 적응할 수는 없다. 인도나 중국 인구보다 큰 규모의 회원 연결망을 보유한 신생기업이 이미 기업 순위의 앞자리에 있지 않은가. 연결과 융합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사고와 열린 행동 방식이 요구된다. 조직의 다양한 인력 구성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원격근무도 유연성과 생산성 갖춰야

역설적이게도 고용 안정성은 안정성 자체만 추구해서는 획득되지 않는다. 부상하는 새로운 직무에 적응하고 새로이 요구되는 능력에 대한 학습이 바탕이 돼야 한다. 기업은 직무의 변화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직무수행능력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직무 가치에 대해 합리적으로 평가하여 적합한 보상이 이뤄지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고용안정은 경영안정의 기반이고, 경영안정은 고용안정을 지킨다.

코로나 상황에서 경험한 재택 원격근무는 일하는 방식의 유연성이 생산성을 저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실증했다. 여러 형태의 유연 근무제 역시 직원의 복지 관점으로만 주장해서는 한계가 있다. 유연근무 방식이 생산성을 약화하지 않으면서 일과 생활의 균형에 대한 만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같이 보여줘야 한다. 코로나 이후 사무실로의 복귀와 재택근무 유지, 현장과 재택을 조합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비율 역시 유연성과 안정성이 모두 가능한 지점에서 정해야 한다.

이제 유연성과 안정성을 대립과 충돌로 보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두 가지가 병행하는 유연안정성(flexecurity: flexibility와 security의 합성어)이 작동하는 시스템이 기업의 경쟁력을 보장하고 구성원의 고용안정을 약속할 것이다. 기업경영과 시장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권력과 자원을 배분하고 제도를 만드는 정치 영역 역시 자기 진영에 갇혀 집단사고(group think)와 확증편향으로 굳어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유연한 사고와 열린 소통이 이뤄져야 안정적인 사회발전과 희망찬 미래로의 도약이 가능하다. 

하이브리드 근무 위한 리더의 역할

대면과 비대면 근무를 혼용하는 하이브리드 워크 방식의 성공적 도입을 위해서는 각 직군 또는 직무에서 수행되는 활동의 특성을 파악하고 물리적·공간적·대인 관계적 상황에 따라 적정 수준을 정해야 한다. 대면 접촉에서 오는 깊이 있는 토론의 부족, 정해지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서의 불특정한 만남이 촉발하는 창의적 아이디어 발상과 혁신의 감소, 표정과 목소리 같은 비언어적 소통 등 대면 접촉이 갖는 장점이 축소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조직은 재택근무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적합 직무를 선정하고 비대면 대 대면 근무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도록 운영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특히 명확한 공동 목표와 업무 프로세스를 설정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으며 상호 기대 사항이 무엇인지 소통해야 한다. 서로 다른 배경과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에게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팀원 간 신뢰와 협력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팀워크 구축을 위해서는 대면 상황과 비대면 상황에서 리더의 다각적 역할이 긴요하며, 개인은 스스로 철저한 성과책임과 자기관리가 요구된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