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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추경호에 “중산층·서민 세부담 경감안 마련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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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근속연수 공제를 확대해 퇴직금에서 떼는 세금을 줄인다. 1세대 1주택자의 세 부담은 부동산 가격 급등 전인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린다. 근로자 월급에서 다달이 떼가는 근로소득세는 세액공제를 확대해 부담을 줄인다.

11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았다. 첫 주자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윤 대통령과 독대해 이런 내용을 보고했다.

윤 대통령은 추 부총리에게 “고물가 시대에 어려움을 겪는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세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장마와 폭염으로 성수품 물가 불안이 우려된다”며 “추석민생안정대책을 마련해 선제적으로 물가와 민생 안정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첫 업무보고를 통해 국민 부담이 큰 각종 세제를 조세 원칙에 맞게 정상화하고, 경제 위기 극복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우선 민간의 경제 활력을 높이고 민생 안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에 나선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5%에서 22%로 낮춘다. 직전 문재인 정부에서 25%로 올린 것을 원상복귀시킨다.

현재 4단계로 나뉘어 있는 법인세 과세표준 구간도 3개 이하로 줄이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의 세 부담을 낮춘다.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하는 등 일자리·투자 관련 세제 혜택은 늘린다.

장기근속자 퇴직소득세 줄이고, 근소세 세액공제 늘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오후 취임 후 처음으로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았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오후 취임 후 처음으로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았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부동산 세제도 완화한다. 종합부동산세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에서 60%로 낮추면서 1세대 1주택자에 한해 특별공제 3억원을 추가로 주기로 했다. 종부세 과세 기준선이 공시가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다. 이사나 상속 등에 따라 불가피하게 2주택자가 된 경우는 주택 가격을 과세표준에 합산해 과세하되, 1주택자로서 받는 세금 혜택은 그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장기근속 퇴직자에 대한 세 부담 완화도 추진한다. 1990년 이후 32년 만에 처음으로 퇴직소득세 근속연수별 공제금액을 상향해 근속 기간에 따라 세금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기재부 관계자는 “20년을 일해 5000만원 수준의 퇴직금을 받는 근로자가 퇴직소득세를 내지 않는 수준까지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중산층·서민층의 근소세 부담도 세액공제를 확대해 경감한다. 물가 상승에 따라 실질임금이 줄어도 명목임금이 높아진 만큼 실질적 세부담이 커진다는 비판에서다. 연금저축에 대한 세액공제 한도는 4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늘린다. 저소득 근로 가구에 대해서는 근로장려금 수급 요건을 완화하고, 최대 지급액을 10% 인상해 지원한다.

기업 형벌 개선 태스크포스 가동 계획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윤 대통령과 독대해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세부담 경감, 기업규제 완화, 물가 대책, 공공기관 조직 조정 방안 등을 보고했다. [뉴스1]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윤 대통령과 독대해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세부담 경감, 기업규제 완화, 물가 대책, 공공기관 조직 조정 방안 등을 보고했다. [뉴스1]

기업 규제도 완화된다. 기재부는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함께 기업 형벌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할 계획이다. 기존 경제 형벌을 과태료 등 행정 제재 중심으로 바꾸거나 관련 형량을 줄이는(합리화) 방안이 추진된다. 환경·보건의료·신산업·입지·인증 등과 관련돼 불필요한 규제는 민관 합동 TF 논의를 거쳐 철폐한다. 모호한 규정과 과도한 처벌로 논란이 큰 중대재해처벌법·공정거래법 등을 겨냥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치솟는 물가 대책도 마련한다. 물가 대책으로 법정 최고 한도까지 인하(37%)한 유류세를 더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여야는 유류세 법정 인하 한도를 50% 또는 그 이상으로 확대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예년보다 빠른 추석(9월 10일)에 맞춰 8월 추석 민생대책을 발표한다.

과도하게 늘어난 공공기관 조직과 인력을 조정한다. 민간이 할 수 있거나 중복되는 부분을 정비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기재부는 28개인 산하 위원회 수도 30% 이상 감축한다. 기능이 유사한 9개 위원회를 통폐합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정부 씀씀이도 줄인다. 문재인 정부 내내 유지했던 확장 재정 기조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건전재정 기조로 바뀐다. 기재부는 새로 마련한 재정총량 관리목표(국내총생산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3% 이내, 국가채무 50%대 중반으로 관리)에 따라 내년 예산안과 중장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짜기로 했다.

금리 인상기 거시경제 위험 요인으로 떠오른 가계부채 대응 수위도 올라간다. 정부는 금리 상승에 취약한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을 올 하반기 청년·서민층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불어난 소상공인 부채도 채무 조정, 저금리 대환 대출 등을 통해 연착륙을 유도하기로 했다.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는 금융·외환시장과 관련해 기재부는 부문별 조기경보시스템(EWS)을 상시 가동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첫 업무보고 부처로 기재부를 택한 이유로 “어려운 민생과 경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첫 업무보고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받은 뒤 공영방송의 신뢰 회복을 주문했다. 대선 기간 복지 공약을 강조했던 박근혜 정부는 보건복지부를, 경제 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기재부로부터 첫 업무보고를 받았다.

대통령비서실장·경제수석만 배석

업무보고는 예정보다 30분이 늘어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형태도 과거와 달랐다. 장관과 함께 부처 실·국장들이 모두 참여해 나열식 보고를 했던 관례와 달리 기재부에선 추 부총리만 참여해 독대 형태로 진행됐다.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과 함께 김대기 비서실장과 최상목 경제수석만 배석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참여 인원을 최소화한 건 불필요한 형식을 지양하고 심도 있는 정책 논의를 진행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기재부를 시작으로 12일엔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오는 15일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고용노동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다. 기재부와 마찬가지로 다른 부처 역시 일자리와 미래 먹거리 등 경제 관련한 업무보고가 주된 내용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선 코로나19 재확산과 관련해 “코로나19 재유행에 철저히 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새 정부 기조인 과학 방역에 걸맞은 대응 체계를 준비하고 달라지는 방역 지침을 국민께 소상히 설명하라”고 말했다. 고물가와 관련해선 “정부의 대책이 현장에서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철저한 점검을 해달라”고 했다. 7월 국회가 열리는 만큼 “정부가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를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상시 소통을 구하라”며 국회와의 입법 협의도 당부했다.

코로나19 재확산을 이유로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잠정 중단한 윤 대통령은 향후 경제와 민생 관련한 조율된 메시지를 내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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