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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전 뒤 횡단보도에 보행자 보이면 차량 꼭 멈춰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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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든 차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고 하는 때에는 횡단보도 앞에 일시 정지해야 한다.’

지난 1월 개정된 도로교통법 제27조 1항이다. 이 조항이 12일부터 시행된다. 현재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만 차량에 일시 정지 의무가 있었다면, 앞으로는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만 해도 일단 멈춰야 한다. 사실상 보행자가 횡단보도 입구에 서 있는 게 보이기만 해도 일시 정지해야 한다. 여기서 횡단보도는 보행신호가 있는 곳은 물론 신호가 없는, 무신호 횡단보도도 모두 포함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부에선 바뀐 우회전 통과 요령도 이날부터 함께 시행되는 것으로 얘기되지만, 우회전하기 전에 전방의 차량 신호가 적색일 때 횡단보도 앞 일시 정지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다만 우회전 뒤에 만나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길을 건너는 중이거나 건너려고 할 때 일시 정지해야 하는 건 이날부터 시행된다. 그러니까 직진이든 우회전이든 횡단보도 안팎에 행인이 보이면 일단 멈춰야만 하는 거다.

이를 위반했다가 적발되면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으로 범칙금 6만원(승용차)에 벌점 10점이 부과되고 보험료도 오르게 된다. 여기에 보행자와 사고까지 낸다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2대 중과실에 해당해 5년 이하 금고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이렇게 횡단보도 일시 정지 규정을 강화한 건 한국의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이 주요 선진국보다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보행 중 사망자 비율은 38.9%(2019년 기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9.3%인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실제로 국내 운전자들의 보행자 보호 의식과 수준은 상당히 미흡하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19년에 실시한 실험에 따르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를 위해 정지한 차량의 비율은 겨우 11.3%에 그쳤다. 10대 중 9대는 보행자에게 양보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는 의미다. 게다가 보행자가 길을 건너기 위해 손을 들었는데도 절반가량은 속도도 줄이지 않고 통과했다고 한다. 노약자는 물론이고 일반 성인도 안전하게 길을 건너기 어려운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횡단보도 일시 정지 규정을 강화해서라도 보행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해진 거다. 운전자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불편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선진국에선 일상화된 모습이다. 미주와 유럽 등 선진국에선 보행자가 횡단보도 입구에 나타나기만 해도 모든 차량이 멈추고,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다 건널 때까지 정지해 있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12일부터 시행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중에는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 있는 무신호 횡단보도에선 보행자가 있든 없든 무조건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거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는 신호등에 따라 진행하면 되지만 무신호 횡단보도에선 일시 정지한 뒤 주위를 한 번 살펴보고 출발하라는 의미다. 어린 학생들이 갑자기 횡단보도에 뛰어들었다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걸 고려한 조치다. 스쿨존에선 사고 예방을 위해 제한속도를 꼭 지키고, 횡단보도 주변을 잘 살피면서 안전운전하는 습관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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