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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물가 8%”vs“경영 악화”…노사 모두 최저임금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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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최저임금과 금리가 동시에 오르면 소상공인의 부담이 커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8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이 북적이는 모습. [연합뉴스]

최저임금과 금리가 동시에 오르면 소상공인의 부담이 커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8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이 북적이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말 진통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안이 시간당 9620원으로 결정됐지만 경영계와 노동계, 소상공인이 모두 반발하고 있다. 물가 고공행진과 금리 인상, 경기침체 우려까지 겹치면서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출한 내년도 최저임금안을 내달 5일 고시하면 2023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고시를 앞두고 노사 양측은 모두 이의 제기에 나섰다. 우선 민주노총이 지난 5일 “최저임금안이 정당한 심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졸속으로 결정됐다”며 고용부에 이의 신청을 냈다. 민노총이 최저임금 이의를 제기한 건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영자 단체도 반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10일 각각 고용부에 최저임금안 재심의를 요청하는 이의 제기서를 냈다. 경총은 “2023년 최저임금안이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영 부담을 늘리고, 취약계층 근로자의 고용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법상 고시를 앞두고 노사 양측은 이의 제기를 할 수 있고, 고용부가 합당하다고 인정하면 최저임금위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1988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후 재심의가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실상 내년도 최저임금은 결정된 셈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낮다고 주장하는 쪽이나, 높다고 말하는 쪽이나 모두 일리는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6%로 외환위기 시절이던 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른바 ‘장바구니 물가’는 이미 8%를 넘어섰다는 게 가계의 체감이다. 여기에 13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사상 첫 ‘빅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자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제는 임금 인상이 고금리와 겹치면서 고용 불안, 경기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팬데믹 장기화로 고사(枯死)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경영 악화가 불 보듯 뻔하다. 미국발 금리 인상 여파와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불가피하지만, 고용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

이미 산업계에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며 우려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가 갑자기 뜨거운 물이 쏟아진 것이라면, 현재의 위기는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처럼 악화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위기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단기 처방과 중·장기 대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금의 위기는 외부 요인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며 “당장은 경제 참여자들의 고통 분담이 필요할 것이며, 장기적으론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최저임금제의 취지는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지금처럼 ‘전국 단위 임금협상’처럼 여겨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명예교수는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이 업종별 차등화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아직 현실화하지 못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최저임금제 개선을 위해 논의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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