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난다” 1554번 외친 시집…덴마크 입양 한인 작가는 왜 분노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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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마야 리 랑그바드(왼쪽) 작가의 2014년 작품 『그 여자는 화가 난다』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입양인으로, 여성으로, 성소수자로 겪는 분노를 표현한 작품이다. [사진 난다]

마야 리 랑그바드(왼쪽) 작가의 2014년 작품 『그 여자는 화가 난다』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입양인으로, 여성으로, 성소수자로 겪는 분노를 표현한 작품이다. [사진 난다]

“‘화’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 데서 나오고,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잖아요. ‘화’는 매우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

한국계 덴마크 시인이자 번역가 마야 리 랑그바드(42)는 최근 출간된 자신의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난다) 에서 내내 화를 낸다. 그는 해외 입양인, 여성, 성 소수자 시각에서 무려 1554번이나 ‘그 여자는 ~ 화가 난다’는 문장을 반복하며 해외 입양과 불평등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로 책을 완성했다.

작가는 최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혁명도 ‘화’에서 시작하지 않나. 화를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책을 쓰면서 화를 해소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입양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화가 나서, 책을 쓰는 데 7년이나 걸렸다”고 설명했다. 시와 산문의 형식을 모두 가진 글에 대해 작가는 “내 정체성이 하이브리드이듯, 글의 형식도 하이브리드”라고 했다.

책 안쪽 표지에는 랑그바드 작가의 친필 덴마크어 제목이 담겼다. 김정연 기자

책 안쪽 표지에는 랑그바드 작가의 친필 덴마크어 제목이 담겼다. 김정연 기자

1980년생인 작가는 어린 시절 덴마크로 입양됐고, 2006년 덴마크에서 작가로 데뷔했다. 2007~2010년 서울에 살면서 한국과 입양에 대해 조사했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 이름은 이춘복이다. 그는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입양 얘기만 할 정도로 절실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책을 통해 ‘선진국으로의 해외 입양’을 하나의 산업으로 분석하고 비판한다. “입양인으로 살면서 ‘입양되지 않았다면’을 가정하며 늘 감사할 것을 요구받았다”며 “서양에서 해외 입양에 대해 ‘윈윈’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그 시스템이 모두에게 이익만 남기는 건 아니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입양 간 이유도, 부모가 아들을 원했는데 또 태어난 여자애였기 때문”이라며 “‘그녀’라는 주어를 쓴 것도 입양의 성별 이슈를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입양은 페미니즘 이슈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2014년 덴마크에서 출간됐고, 2019년 출판사 난다 김민정 대표 눈에 띄어 국내 출간 작업을 시작했다. 덴마크 출간 당시 작가에게 증오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을 만큼 도발적인 주제였다. 하지만 이후 해외 입양에 대해 막연한 시혜적 시각이 아닌, 비판적 논의가 확산됐다고 한다.

작가는 “2014년 한국이라면 이 책이 출간되지도 못할 정도로 도발적인 주제였을 거라고 들었다”며 “이제 한국도 다양한 목소리가 출간될 수 있게 길이 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대표는 “번역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펴내겠다며 시작했는데, 덴마크어 번역이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며 “손화수 번역가의 번역, 덴마크 현지 교차 검증, 시적 언어 재확인 등을 거쳐 완성된 번역”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덴마크에서 책이 나왔을 때부터 한국에서 독자를 만나는 게 꿈이었는데 이뤄졌다”며 “이 순간이 내게는 굉장히 중요하고, 하나의 시기를 끝맺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책은 입양인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던 책”이라며 “모든 입양인의 집단적 증언과 같은 기록이기 때문에 영어로도 출간되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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